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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알 Feb 03. 2022

생활치료센터에서의 하루

내가 씨알에 들어온 이유

 코로나19에 확진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며 제 주변에서도 자신의 확진 소식을 알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지난 8월에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었는데요, 그 당시에는 확진이 되면 재택치료가 아닌 생활치료센터로 이송되었기에 저 역시 경기도 제 15호 생활치료센터에서 열흘을 보냈습니다. 증상이 심각해져 아프기도 하고 좀처럼 가지 않는 시간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제 양심을 콕콕 찌른 것은 바로 그 안에서 열흘 동안 사용한 플라스틱의 양이었습니다. 오늘은 생활치료센터에서 제가 보낸 하루를 복기하며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썼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침에는 확진자 건강관리 앱에 체온, 산소포화도, 증상 등의 건강 상태를 입력한 후, 방 밖에 비치되어 있는 아침식사를 가져가라는 안내 방송을 듣고 잠에서 깹니다. 코가 심하게 막히고 기침이 많이 나서 숨을 쉬기도 힘든데요. 도시락을 들고 들어와 다시 침대 위에 앉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도무지 입맛이 돌지 않네요. 먹지 않은 도시락이라도 제 손에 닿은 이상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먹고 싶지만, 아침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단 냉장고에 용기를 넣어놓고 다시 단잠에 빠져듭니다.     


 늦잠을 잔 후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갑니다. 커다란 샴푸와 바디워시가 눈에 띄네요. 통이 너무 커서 반의 반도 쓰지 못하고 생활치료센터에서 퇴소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샴푸와 바디워시를 사용해 샤워를 마친 후, 입이 텁텁해 칫솔에 치약을 짜 양치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칫솔과 치약 역시 비닐에 쌓인 채로 저에게 제공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사용했던 실내화, 종이컵, 손톱깎이 등의 다른 물건들처럼 말입니다. 그 물건들 역시 제가 사용하지 않아도, 이미 오염되었기에 폐기물 처리가 되어 버려지겠죠.     


 그 후에는 할 일이 없어 휴대폰으로 SNS를 하다가 TV를 켜 넷플릭스를 시청합니다. 생활치료센터 안에서만 벌써 3편의 영화를 보았는데요, 오늘은 영화 대신 제가 좋아하는 미드인 <프렌즈>를 보기로 했습니다. 드라마를 보다 보니 배가 고파져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어요! 아까 가져왔던 점심 도시락을 열어봅니다. 먹는 양이 적어 먹지 못하고 금방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그 후에는 노트북으로 할 일을 조금 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금세 저녁이 되었습니다.     


 이제 청소를 해볼까요? 먹지 않은 도시락을 냉장고에서 꺼내 주황색 비닐에 담고, 먹다 남은 도시락도 버립니다. 생활하면서 나온 일회용 젓가락 껍질, 물병 등의 쓰레기 역시 모두 비닐에 담습니다. 이 비닐은 폐기물통에 담아 밖에 두면, 제가 자는 사이 직원 분들께서 가져가십니다. 물론 이 폐기물통 역시 플라스틱입니다. 오늘은 음식을 먹지 않아 쓰레기의 양이 조금 많네요. 폐기물통이 닫히지 않으면 수거가 불가능하기에, 행정실에 전화하여 폐기물통을 하나 더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렇게 아홉 번을 반복한 마지막 날, 저는 제가 사용하지도 않은 모든 물건들을 폐기물통에 욱여넣고 뾰족한 죄책감에 고통받는 마음으로 생활치료센터에서 나왔습니다. 걸어다니는 쓰레기 크리에이터가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대처들이 틀린 것일까요? 코로나19의 전파력과 그에 따른 위험성을 생각해 보면 이 모든 일은 행할 수밖에 없는 일들일 것입니다. 제가 쓰지 않았다고 해서 그 다음에 그 자리를 쓰는 환자가 제게 노출되었던 물건을 써서는 안 될 테니까요. 저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 먹지 않은 도시락들과 사용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폐기물통에 집어넣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 어딘가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완치 후 무취 후유증은 일주일밖에 지속되지 않았지만 환경에 대한 죄책감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는 완치 이후 야생 동물들의 터전을 파괴하여 살 곳이 없어진 그들이 인간들이 사는 곳으로 내려와 인수공통감염병이 증가했으며, 코로나19 역시 그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코로나19가 퍼지고 난 후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을 멈추면서 지구의 전체적인 환경이 나아지게 되었다는 것 역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방역의 이유로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사용량의 증가 역시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성 판정을 받기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는데, 기어코 감염되어 직접 느끼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관점을 약간만 달리 하여 바라본다면 코앞에 있는 이 커다란 문제를, 나는 왜 발견하지 못한 채 외면하고 있었을까요.   

   

 환경을 파괴한 것에 대한 대가로 얻은 전염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환경을 파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 날, 저는 그래서 환경 동아리에 가입하기로 했습니다. 평생 동안 내보인 환경에 대한 무감각함을 반성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 문제가 우리의 삶과 얼마나 직접적으로, 그리고 또 얼마나 가깝게 맞닿아있는 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환경 파괴가 우리의 일상이 된 지금이야말로,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복원을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서울청계생활치료센터의 도시락

여리모 Yeorimo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지구를 만들고 싶은 영문학도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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