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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알 Feb 14. 2023

대한민국 온실가스 배출 1위 기업의 입장이 되어보았다

기후위기 시대, 철강기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은 어디일까? 정답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철강기업인 포스코*이다. 전력그룹사인 한국전력을 제외하면 2위도 철강기업인 현대제철이다. 두 기업만 합쳐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1억 톤이다. 이는 인구가 1억 7천만 명인 방글라데시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에 맞먹는다.

왜 하필 철강기업일까? 그 답을 알려면 “제철공정”의 화학반응식을 봐야 한다. 철광석은 철(Fe)에 산소(O)가 결합한 산화철로 이루어져 있다. 철강을 만들려면 여기서 산소를 떼어내야 하는데, 현재 대부분의 제철소에서 산소를 떼어내 “환원”시키기 위해 석탄(C)을 이용하고 있다. 그럼 탄소(C)와 산소(O)가 결합해 이산화탄소(CO₂)가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전체 공정의 배출량 40~60%***를 차지한다. 석탄을 대체할 환원제가 없는 이상 철강기업은 “기후 악당”의 악명을 벗을 수 없다.

현재 석탄을 대체할 것으로 가장 유망한 것이 바로 수소다. “수소환원제철” 공정에서는 수소(H)와 산소(O)가 결합해 이산화탄소가 아닌 물(H₂O)이 발생하므로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수소의 가격이 석탄에 비해 비싸고, 100% 수소만으로 철강을 생산하는 기술이 상용화된 바는 전세계적으로 없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이미 진행 중이다.


기후위기의 시대에서 우리나라의 철강기업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다양한 시선에서 고민해보고자, 간단한 역할극을 진행해보았다. 우리는 자율적인 스터디를 구성해 국내 최대 철강기업인 포스코와 관련된 환경 이슈에 대해 조사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몇 이해관계자를 만들어 세부 설정을 부여했다. 그리고 실제 7~8명에게 역할을 나눠주고 극을 진행해보았다. 한 번에 20분씩, 역할을 바꾸어 두 번의 자유로운 상황극이 진행되었다. 오갔던 대화 중 인상 깊은 것들을 몇 개 적어보았다.



(그림 1 설명)포스코의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을 추리고, 각자에게 적당한 인물 설정을 부여해주었다. 실존 인물과는 전부 무관하다.


(그림 2 설명)실제 참여자들에게 배부된 카드. 


#1. 삼척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둘러싼 대립


대통령이 먼저 입장을 발표했다.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은 전 대통령이 승인한 것이라 본인의 입장과는 무관하며, 건설 중단을 주장하는 환경 단체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화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자 2명이 소리 높여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삼척 친환경발전기획팀장은 정부의 무책임을 비판하였다. 투자자 역시 자신이 투자한 돈을 잃을 수 없다며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포스코의 ESG 팀장과 현장 노동자 역시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포항시민과 서울시민은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여러 사람의 비판에 기가 죽은 대통령은 다시 주장을 돌렸다. 지난 정부의 결정이니 자신이 어찌할 수 없으며, 앞선 발언을 취소하겠다고 하였다.

대통령을 비판하던 모두가 안도했지만, 환경 단체는 실망해 맹렬히 반대하기 시작했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지어지면 온실가스 배출량이 연간 1,300만 톤 늘어난다, 이는 연간 국가 배출량의 약 1.8%다, 이는 곧 탄소중립으로 나아가려는 정부의 목표를 역행하는 행위다…

하지만 환경 단체를 대변하는 인물이 1명이었기 때문에 금세 다른 이야기에 묻혔다.


#2. 포스코가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대통령이 물었다.

“포스코는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1위의 기업인데, 우리나라의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배출량을 어떻게 해서든 줄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포스코 ESG 팀장은 파이넥스(포스코의 기술로,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폭 줄임), 자원 재활용률을 무려 97%로 높이고 삼척에 숲을 조성하는 등 하고 있는 노력들을 강하게 어필했다. 그리고 철강 산업 자체가 탄소 집약적이라 특성상 타 산업에 비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요구하자, 포스코 ESG 팀장은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현재 갖는 한계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재 수소환원제철을 계속 개발 중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상용화가 불가능합니다. 청정수소와 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력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나라 인프라로는 역부족이에요. 기술보다는 인프라를 먼저 갖춘 다른 나라들이 우세합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인프라를 갖추어야, 기술이 비로소 빛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기술을 도입하려 해도, 국내의 수소와 재생에너지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포스코를 압박하려 했다 되려 얻어맞은 격이 된 대통령이었다.


“당장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중단하는 것부터가 가장 빠른 대책일텐데…”

환경단체에서 넌지시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넘어갔다.


#3. 해외에 지으면 되지 않을까

대통령이 발언했다.
 “대한민국의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 1위가 포스코인 만큼, 국내 탄소배출량에 포스코가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포스코는 이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이에 포스코 팀장이 답변했다.
 “하지만 포스코는 대한민국의 철강 산업에, 나아가 제조업에 기여하는 바가 가장 큰 곳 중 하나입니다. 탄소배출량 하나로 인해 포스코 전체의 철강 생산량을 줄이거나 생산 효율을 감소시키는 등 극단적인 방식의 통제를 감행한다면, 포스코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국내 철강 산업의 경쟁력마저 잃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무분별한 탄소배출량 감축으로 인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잃는다면 이로 인한 단기적, 장기적 손실이 예상보다 클 것입니다.”

대통령은 국가의 탄소배출량을 줄일 의지가 있지만, 그에게는 국가 산업의 경쟁력을 포기하면서까지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처럼 보인다.
 탄소배출량 감축과 자국의 산업 경쟁력 확보, 2가지 토끼를 모두 잡는 방법은 없을까?

이에 한 시민이 해결책을 내놓았다.
 “포스코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게 되는 시설은 어떤 것입니까?”

“그야 제철을 담당하는 포항의 제철소이겠지요. 강철을 만드는 제선 공정과 제강 공정이 모두 이곳에서 발생하니까요.”

“그렇다면 제철소를 그냥 해외로 이전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초기에는 비용이 좀 들어도, 국내 탄소배출량은 크게 감축될 겁니다. 개발도상국에 건설하면 인건비도 훨씬 저렴해질 수 있고, 개발도상국도 경제적으로 꽤나 큰 이득이 될 텐데 마다할 이유는 없겠지요.
 수소환원제철같은 기술을 기대하기에 당장은 국내의 인프라 측면에서도, 기술력 측면에서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게 실현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기술에만 의존하느니 해외로 이전하는 것이 빠르지 않겠습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포스코 팀장이 이야기했다.

“현재로서는 국내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부분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측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조금 지원 정도가 되겠네요.”
 대통령이 말을 덧붙였다.

많은 이들이 시민의 말에 동의하면서,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자는 결론이 났다.


논의가 마무리된 듯 하나, 약간의 찜찜한 구석이 남아있다.
 이 방법이 과연,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일까?

이러한 현상을 ‘탄소누출(carbon leakage)’이라 부른다. 탄소배출량 관련 별도의 제약이 없는 국가로 온실가스 배출원을 이전시키면서, 자국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은 감축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국내의 탄소배출량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 지구적으로 보았을 때 이는 아무런 효과도, 의미도  없는 떠넘기기에 불과하다.

 논의의 결론이 그럴듯해 보이는 탄소누출로 이어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이 EU를 비롯한 기관에서 탄소누출을 제도적으로 막고자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는 이유인 듯 하다.


(그림 3 설명)역할극을 통해 오간 대화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이해관계와 책임소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으나, 모두가 기후위기의 아래에 있었다.


가상의 회담을 진행하며 느꼈던 가장 큰 부분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누군가의 탓을 하곤 하지만, 결국 모두에게 각자의 책임이 있다는 점은 명백했다. 그리고 그 책임과 인과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무엇인가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각 주체가 자신의 책임을 깨닫고,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 엉킨 관계를 하나씩 풀어갈 수 있어 보인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그 과정이 선순환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우리의 생존전략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소감

(현서): 철강 산업의 특성 상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지점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하게 눈 감아줄 수도 없고, 철강 생산을 무작정 줄이며 책임을 지라고 주장할 수도 없겠다. 결국 나도 포스코 덕에 그 혜택을 누리고 있는 한 사람일 테니까. 그나마 수소환원제철에 희망을 걸어볼 수 있겠으나, 이에 걸맞는 국내 재생에너지와 청정수소 공급망이 구축되는 것이 우선이겠다.
 결국 누구 하나에게만 책임을 물 수 없고, 모두가 함께,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야 하는 일 같다. 환경 문제는 그래서 늘 어려운 것 같다.


(대윤): 철강 산업이 우리나라의 경제와 환경에 동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주요 산업임은 확실하다. 그 사이를 외줄타기 하듯이 조율하는 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있고 나조차도 그 복잡한 관계 속 하나의 존재인 것 같다. 현재로서 가장 합리적인 해결방안은 파이넥스 공법, 수소 환원제철 등 기술 발전을 통한 방법으로 보이고 이를 통한 경제성과 환경보전의 동시 달성을 기대해보려 한다.


(예경): 포스코 같은 철강기업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없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임을 볼 수 있었다. 아무런 효력이 없는 역할극인 데도 어떤 안건이 나오면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가장 편한 선택은 문제를 방치하는 것, 이전 정부나 책임자가 결정한 대로 진행되도록 두면서 책임을 적당히 회피하는 것이었다. 또는 외국으로 제철소를 이전한다는 등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결국 모든 사람의 행동의 결과를 모두가 겪게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기주의로 인해 모두가 피해를 입는 결과는 없도록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열심히 알려야겠다.



* 전기신문


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09505

** KOSIS, 주석 참조(자료관리: 통계서비스정책관 통계서비스기획과), 2020, 2023.01.24, 온실가스 배출량 (2019년 기준)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2KAAF02&conn_path=I2

*** 기후솔루션(2021), "국내 철강산업 탄소중립 대응 동향과 이슈", 출처: Nippon Steel 2020

**** 에너지정책 소통센터, 재생에너지&수소 – 수소환원제철

https://www.e-policy.or.kr/info_2022/list.php?admin_mode=read&no=8765&make=&search=&prd_cate=2


(이 글은 2022년 2학기 씨알 스터디팀인 '스틸컷' 팀이 활동을 마무리하며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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