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상자 텃밭에 새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줄기에 가느다란 솜털이 송송 보이는 아가 채소들이다. 그들의 이름은 수박, 참외, 방울토마토, 가지, 고추 등이다. 아이들이 옥신각신 토론을 벌여 자기 반 채소 모종을 정했다고 한다. 특별히 올해는 수박을 기르는 학급이 많아졌다. 아마 작년의 추억 때문일 것이다. 어느 학급에서 수박을 키웠는데, 탐스럽게 잘 자라서 다른 반 아이들이 무척 부러워했다.
등굣길, 아이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도 상자 텃밭이다. 노랑, 분홍, 빨강의 장미꽃이 한창 피고 있어도, 큼지막한 꽃봉오리를 만들기 위해 수국이 수고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영혼에는 채소만 담겨있다. 릴레이 하듯 아이들은 물을 주고 또 준다. 그 많은 물을 먹은 채소가 잘 자랄지 걱정이 된다. 그렇지만 채소는 아이들의 정성을 알 것이다. 튼튼하고 건강한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채소밭을 관찰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다가 닮은 꼴 풍경이 떠올랐다. 그것은 필자의 어린 시절 아버지 모습이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는데, 어느 가을날의 아버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아버지께서는 둑에 앉아 누렇게 익은 우리 집 논을 바라보고 계셨다. 그날 아버지 얼굴에 나타난 미소를 보았는데, 정말 행복해 보였다. 틀림없는 모나리자 미소였다. 그것을 오늘 우리 아이들에게서 발견했다.
아이들이 텃밭 상자 앞에서 재잘거리고 있다. 아! 그렇구나. 우리는 농군의 후손이구나. 우리 조상들은 오랫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여러 가지 작물과 나무, 꽃 등의 품에서 수만 년을 살아왔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의 유전자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채소 키우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아버지의 모나리자 미소도 어쩌면 그 유전자가 보내준 선물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1943년 매슬로우는 인간 욕구 5단계라는 학설을 제안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다섯 가지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그것이다. 다만 이들 욕구에는 우선순위가 있어서 단계가 구분된다고 주장하였다. 예를 들어 생리적 욕구를 만족하면 안전의 욕구가 나타나고, 안전의 욕구가 만족 되면 사랑과 소속의 욕구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나머지 욕구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이 채소 키우기를 좋아하는 욕구는 어디에 속할까? 우리가 꽃, 나무를 키우고 싶은 욕구는 어디에 속할까? 비단 안개가 쌓여있는 바다에 가고 싶은 욕구는 어디에 속할까? 특별히 위의 이론과 관련시키기는 어렵다. 매슬로우가 다시 태어난다면 인간의 다섯 가지 욕구에 하나를 더 넣지 않을까? 그것의 이름은 ‘자연의 욕구’이다. 작물, 동물을 키우며 산, 들, 바람, 별, 꽃, 나무들과 살고 싶은 욕구이다.
요즘 학생들이 정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ADHD, 우울증, 화병에 걸린 학생들이 학급에서 몇 명씩 된다고 한다. 정서가 불안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랑의 욕구 만족도 중요하겠지만 자연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조건도 필요하다. 작물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꽃, 나무들과 사시사철 교감할 수 있는 가정, 학교가 만들어져야 한다.
교육감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교육감 후보들은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혁신, 미래, 복지 등에 관련된 공약들이 봇물이 되어 넘치고 있다. 다만 아이들의 정서에 대한 성찰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정서가 안정되어야 감정이 달라지며, 감정이 달라지면 성장, 배움이 달라진다. 자연의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교육환경에 대해 절실히 고민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