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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Jun 08. 2022

예쁜 보리수 도둑들

호시탐탐 노리던 보리수

오늘 아이들과 수확했습니다.

먼저 허락을 구해야 했지만

교장 선생님이라면 흔쾌히 허락하시리라는 믿음으로 수확을 해버렸습니다.     

위의 글은 우리 학교 2학년 선생님이 저에게 보내준 메시지입니다. 그 반 아이들과 보리수를 수확했다고 합니다. 우리 학교 숲에는 보리수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약 6년 전 학교 숲을 만들면서 심은 나무로 키가 3 정도 됩니다. 올해는 가지가 휘어질 만큼 빨간 보리수가 가득 열렸습니다. 오늘 2학년 아이들이 농사꾼이 되어 그 보리수를 수확했다고 합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걱정이었습니다. 보리수가 탐스럽게 익었는데, 아이들, 선생님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빨간 보리수가 아이들의 입에 들어가는 장면을 보고 싶었는데, 아이들은 보리수 열매가 신기하지 않은가 봅니다. 물론 대부분 선생님 아이들은 보리수를 모릅니다. 보리수를 본 적도 먹어본 경험도 없을 것입니다.   

  

7년 전 우리 학교에 부임하였습니다. 커다란 운동장을 제외하고 낡고 오래된 건물입니다. 따뜻한 정서를 키우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학교였습니다. 화단은 비좁았고,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줄 꽃과 나무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아름다운 정서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의 날들에 한 줄의 희망이 보였습니다. 산림청에서 학교 숲을 조성해 준다는 내용입니다.    

산림청, 구청의 도움을 받아 학교 숲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숲은 운동장 한쪽에 만들어졌습니다. 다른 학교보다 2배 정도 큰 운동장 덕분입니다. 숲을 만들면서 어린 시절 저의 추억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앵두, 보리수, 산딸기의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맞다. 우리 아이들도 훗날 어른이 되어서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학교 숲에 아이들이 따 먹을 수 있는 보리수, 앵두, 대추나무 등 여러 종류의 과일나무를 심은 이유입니다.     


선생님이 보리수 수확 사진을 보내주셨습니다. 보리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모습도 보입니다. 조심조심 보리수나무 가지를 잡는 모습도 보입니다. 빨간 보리수를 손에 들고 자랑하는 친구도 보입니다. 모두가 활짝 웃고 있습니다. 훗날 그들에게 오늘의 경험이 추억이 될 것입니다. 힘들 때마다 꺼내 볼 수 있는 귀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오늘 먹은 빨간 보리수 맛이 사랑으로 태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보리수 향기가 감사로 태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보리수 색깔이 행복으로 태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보리수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어휴! 예쁜 보리수 도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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