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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Nov 09. 2018

감정은 기억과 신체의 협연

엊그제 학교 운동장 주변에 유채 씨를 뿌렸습니다. 운동장 주변 빈 공터에 화단을 만들고 퇴비를 뿌렸습니다. 그 위에 예쁜 유채 씨를 뿌렸습니다. 아마 12월에는 예쁜 유채 어린잎들을 볼 수 있겠지요. 내년 봄에는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 이곳을 찾으시는 모든 분들의 감정 풍경에 노란 유채색으로 가득하리라 생각해봅니다. 이런 마음을 하늘도 알았는지 오늘은 늦은 가을비를 보내주셨습니다. 가을비가 유채 밭에 도랑을 만들고, 그 도랑이 작은 호수들을 만들어 예쁜 유채 씨와 함께 수영도 하는 늦은 가을날 소소한 행복들을 떠올려보는 오후입니다.   

 

이런 나의 마음에 그려지는 풍경들을 들여다보면서, 이 행복한 감정이 어디에서 왔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우선 유채꽃과 관련된 나의 경험들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올해 4월 초순 학교의 유채 꽃이 활짝 피면서 달라지는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코를 들이대고 유채 향을 맡는 아이들, 유채 밭을 걸으면서 도란도란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시는 선생님, 연신 카메라에 미소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는 학부모님, 이 모든 장면들이 다정스럽고, 넉넉한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들, 선생님, 학부모님 모두 행복이 활짝 핀 꽃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면서 저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어느 때 보다도 온몸이 편안해지고 얼굴엔 잔잔한 미소가 보였습니다.    


과거 과학계의 오랜 다툼 중의 하나가 ‘슬퍼서 울음이 날까?’ 아니면 ‘울어서 슬퍼질까?’입니다. 어떤 학자는 슬픔이 신체 상태에 영향을 미쳐서 울음이 나온다고 주장하고, 다른 학자는 울기 때문에 마음이 슬퍼진다고 주장합니다. 그 학자들의 이야기로 저의 마음 상태를 옮겨보면 어떻게 될까요? 행복해서 미소가 나오는 걸까요? 아니면 미소를 짓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까요? 하지만 행복해서 미소 짓는 것도 아니고, 미소를 짓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도 아님이 뇌 과학의 발달로 감정에 관련된 사실들이 점점 밝혀져 가고 있습니다.    


우선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요즘의 뇌 과학자들은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제 유채 씨를 뿌렸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와 같이 단편적인 하나하나의 사건을 떠올립니다. 이런 하나하나의 사실들이 모여 개념을 이룹니다. 예를 들어 어제 유채 씨를 뿌렸고, 금년 4월에 유채 꽃이 피었을 때 아름다움, 그 꽃들로 인해서 벌어졌던 일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게 됩니다. 이것을 학문적으로 개념 또는 범주화라고 합니다. 나의 뇌에도 유채꽃에 관련된 범주화가 이루어져 있고 이 글을 읽는 사람도 유채꽃과 관련된 범주화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범주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의 상태에 따라서 감정이 달라진다는 것이 최근 뇌 과학의 설명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 유채꽃과 관련된 좋은 경험이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이 유채꽃에서 꿀을 빨던 벌에 쏘였다면 유채꽃을 생각했을 때 감정은 서로 크게 다르겠지요.    


다음으로 뇌 과학자들은 감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련해서 신체 상태를 들고 있습니다. 저는 방금 전 점심을 먹었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메뉴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 맛있는 점심을 먹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의 신체 상태가 맛있는 음식으로 인해 아주 편안해졌고, 유채꽃과 관련된 생각을 하다 보니 행복감이 가득 밀려온 오후가 만들어졌습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행복한 감정은 유채 꽃과 관련된 기억과 신체상태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요즘 가을을 맞아 이곳저곳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중에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 국악과 관현악 등 한 연주자가 다른 연주자나 악단 등과 함께 악곡을 연주하는 것을 협연이라고 합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 피아니스트와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협연도 있어서 많은 음악인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체라는 악기와 기억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서로 만나서 만들어 내는 울림이 감정입니다. 부정적 기억이지만 신체 상태가 좋으면 좀 덜한 부정적 감정이 만들어지고, 긍정적 기억도 신체 상태가 좋지 않으면 덜 긍정적 감정이 만들어집니다. 긍정적 기억과 신체 상태가 좋을 때 행복한 감정과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정에 대해 생각해보니 좀 더 행복한 삶을 만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오늘 하루도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을 보고, 멋진 곳을 여행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내 주위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힘들지만 시간을 쪼개서 한 줄이라도 글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신체 상태가 나의 감정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면서 운동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길이 행복한 감정을 오래 유지하고 또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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