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일까? 지배일까?
사랑일까? 지배일까?
새해 운동장에 햇살이 가득 피었습니다. 사람들 마음에 새해를 그리는 풍경들은 모두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햇살의 아름다움은 공평한 것 같습니다. 새해의 햇살처럼 학교 교정에 따뜻함, 소중함, 사랑 같은 아름다운 단어들로 가득 채워가는 한해를 그려봅니다. 그 아름다운 단어들을 나와 이웃, 그리고 학교에서 매일 마시는 산소가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랑을 국어사전에서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끼는 마음,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가장 아낄까요? 바로 자신과 가족의 소중한 생명입니다. 인류가 진화해오면서 동물과의 서바이벌 게임에서 생존이 가장 중요했고, 그 생존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아끼는 감정입니다.
좀 더 멀리 원시사회를 상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수십만 년 전 인간은 10명 규모의 작은 가족공동체를 이루며 초원이나 밀림에서 수렵 채집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매일매일이 위협이었습니다. 무서운 생존 게임을 벌여야 했고, 예측할 수 없는 자연환경에 의해 생명이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가족 간의 협력이었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어서 가족에게 의지하게 되었으며, 서로 아끼는 마음이 강한 가족 공동체만이 살아남아 후손에 유전자를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부르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도 수렵 채집을 하던 사람들의 감정 유전자가 우리들에게 전해져서, 기쁨과 슬픔의 롤러코스터를 매일 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건 ‘사랑’이라는 감정은 타고난 유전자이며, 우리의 생명유지 현상입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사랑을 보다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랑을 보다 ‘잘’하는 것입니다. 운동을 잘하기 위해서는 이론 공부도 하고, 연습도 매일 반복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랑도 이론이 필요하며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합니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잘 사랑한다는 것도 이론과 기술이 필요하겠지요. 그 이론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의 유전자에는 ‘아끼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며, 방법이라는 것은 아끼는 마음을 보다 현명하게 아이들에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아이들의 마음을 잘 살펴서 엄마의 ‘아끼는 마음’이 적용이 될 때 우리 아이들의 성장은 바람직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엄마로서 아이를 현명하게 잘 사랑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엄마는 아이를 사랑한다고 느끼지만, 아이의 느낌이 다르다면 사랑이 아닙니다. 우선 아이 입장에서 엄마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아이가 힘들었을 때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배고플 때 맛있는 밥을 주어야 하고, 어려움에 쳐했을 때 엄마가 항상 나를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사랑이란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엄마가 믿어주는 것을 아이가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목적 지향적 인간입니다. 어떤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달리는 존재이지요. 그래서 오늘의 문명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실험도 해보고, 꿈도 자주 바뀌게 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발견하게 되고, 목적 지향적 인간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이 선택해보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선택을 했을 때 엄마가 믿어주고 기다려주면 잠재력이 조금씩 밖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나의 잠재력을 엄마가 믿어준다는 느낌이 들 때 아이들은 엄마가 나를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변질된 사랑입니다. 저는 변질된 사랑을 ‘지배’라는 용어가 가장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변질된 사랑의 핵심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넌 이렇게 해야 해’입니다. 엄마의 생각이 아이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살아갈 수 없고, 엄마의 강요된 가치에 의해서 지배당하는 아이들의 경우 엄마의 사랑을 느끼지 못합니다. 저학년에서는 엄마가 나의 생존에 중요하기 때문에 엄마의 강요된 가치를 잘 받아들이지만,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엄마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물론 모든 면에서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작년보다는 올해, 어제보다는 오늘 조금 더 우리 아이들에게 선택의 폭과 기회를 조금씩 넓혀주는 것이 자식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경험했듯이 선택하다 보면 책임감이 만들어집니다. 그 책임감이 커지면 자발성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기둥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 자발성은 아이들을 목적 지향적 인간으로 변하게 하며 눈빛이 살아있는 아이로 성장하게 됩니다.
2019년 새해에는 엄마의 생각이 아이를 지배하기보다는 아이들이 엄마가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천천히 걷는 자가 오래 걸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보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이리저리 고민도 하고 실험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천천히 걷게 되고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생명현상으로 작동하게 되어 더 오래 걸을 수 있고, 힘든 목적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원시인이 우리에게 물려준 아끼는 마음에 선택이라는 성장의 원리가 더해지면 진정한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