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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Nov 14. 2018

기억은 감정에 색칠된다

이전 글에서 감정은 기억과 신체 상태의 협연이라는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이번 주제에서는 감정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하여 기억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우리 뇌에서 기억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중요한 기억이 어떻게 감정이라는 여러 가지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지에 대한 탐구가 이 글의 주제입니다. 


우선 기억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기억이라는 것은 오감을 통하여 실시간 나의 뇌로 들어오는 여러 가지 정보입니다. 매 순간 눈을 통하여 들어오는 정보, 귀를 통하여 들어오는 정보 등 오감을 통하여 수많은 정보들이 나의 뇌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카페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의 시각만 하드래도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카페의 모습, 청소하는 아줌마, 눈앞에 보이는 탁자 등의 정보들이 실시간 나의 뇌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청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창밖으로 버스 지나가는 소리, 카페 안의 음악,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등 끊임없이 수많은 정보가 나의 뇌로 들어옵니다.


이렇게 오감으로 들어오는 실시간 수많은 자극들이 나의 뇌에 모두 기억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중에서 내가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자극만 뇌의 깊은 곳으로 전달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극은 순식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흔히 이런 것을 장기기억 또는 단기 기억이라 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내가 어떤 자극에는 주의를 기울여 나의 뇌 깊은 곳에 도달하여 오랫동안 저장이 되고, 어떤 자극은 그냥 사라질까요?


바로 여기서 감정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자극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만드는 힘이 몸 안의 어디엔가 있습니다. 얼마 전 아시아 문화전당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는 ‘상상된 경계’라는 주제로 광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작품 관람 중에 저의 발걸음을 오래 멈추게 한 곳은 북한 미술 전시회장이었습니다. 특히 ‘금강산’이라는 작품 앞에 섰을 때 한 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습니다. 작품에서 전해져 오는 힘이 저를 압도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제가 ‘금강산’이라는 작품 앞에서 발길을 떼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금강산’이라는 작품이 나의 감정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작품이 나의 눈으로 들어오는 순간 나의 뇌에서는 어떤 비밀에 의하여 나의 발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어떤 비밀이 바로 감정입니다. 


일상에서 실시간 들어오는 수많은 자극 중에 ‘금강산’이라는 북한 화가의 작품처럼 감정의 양이 많았던 자극은 나의 뇌 깊은 곳으로 들어가 저장이 되고 그렇지 않은 자극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다시 이야기해보면 들어오는 자극 중에 감정의 양이 얼마나 묻느냐에 따라 장기기억과 단기 기억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 감정이 긍정적 감정이든 부정적 감정이든지 상관없이 감정의 양이 많이 묻게 되면 오랜 기억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서 좀 더 감정의 양에 대하여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우리 뇌의 신경세포 연결 모습입니다. 세포와 세포를 연결하는 부분은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고 작은 강이 하나 놓여 있습니다. 이곳을 시냅스라고 하며, 자극이 들어오면 다음 세포로 자극을 전달해야 하는데 자극이 시냅스라는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자극이 시냅스라는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호르몬이라고 하는 화학물질이 이 강에 많이 뿌려져야 합니다. 좀 더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그 호르몬을 신경호르몬이라고 하며 도파민, 세로토닌, 아드레날린 등을 말합니다. 위의 그림 A에서는  호르몬의 양이 적게 뿌려져 있고, 그림 B에서는 호르몬의 양이 많이 뿌려져 있습니다. 제가 북한 화가가 그린 ‘금강산’이라는 미술작품을 접했을 때 위의 그림 중 어느 상황일까요? 아마 그림 B일거라고 예측해볼 수 있습니다. 나의 뇌에 있는 신경세포들 사이에 신경호르몬의 양이 많이 뿌려져서 나의 뇌 속 어딘가에 ‘금강산’이라는 작품이 선명하게 저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비엔날레에서 보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작품들은 세포 사이의 신경호르몬 양이 적었던 작품입니다.


결국 감정이 신경호르몬의 양을 조절해서 기억의 유무를 판가름합니다. 부정적 감정이든 긍정적 감정이든 감정의 양이 많으면 기억을 잘하게 되고, 감정의 양이 적으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단기 기억이 됩니다. 이 부분을 다시 이야기해보면 중요한 기억에는 감정이 묻어 있습니다. 감정은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더 집중해서 처리하고 잘 기억할 수 있도록 신경세포의 작동 방식을 조절합니다. 즉 생존에 중요한 정보에는 신경호르몬을 많이 방출시키고, 그렇지 않은 정보에는 신경호르몬을 적게 방출시킵니다. 내가 살아가면서 중요한 정보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중요시하는 대상이 다를 수 있지만 대개는 호기심을 크게 느낀 일, 기쁜 일, 슬픈 일, 두려웠던 일, 즐거웠던 경험 등입니다. 이런 일에 감정은 신경호르몬을 동원하여 내가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보다 잘 살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입니다.


비엔날레에서 나에게 크게 감동을 주었던 ‘금강산’이라는 작품을 기억과 감정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먼저 빈 도화지에 산의 모양을 스케치하고, 바위와 나무, 안개 등 나머지 세부적인 사항을 스케치할 것입니다. 스케치가 끝난 후 화가는 색칠을 하겠죠. 특히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이 잘 드러나도록 산의 모양이나 바위 등에는 더 예쁘고 화려하게 색칠을 할 것입니다. 산의 모양, 바위, 안개, 나무 등 개개의 사물이 기억이라면 여기에 작가의 생각을 드러낸 색칠이 바로 감정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매일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내가 기억하는 정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마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중요성이 낮아 감정이 색칠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억, 생존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억만 남아있고, 그렇지 않은 기억들은 모두 바람처럼 사라져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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