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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Nov 01. 2019

11월

11월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건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 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11월 첫날 나태주 시인의 11월을 읽었습니다.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다는 시인의 이야기에 나의 시선은 한동안 운동장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그곳에는 초록의 싱싱함은 온데간데없고 붉은 노란색의 잎들로 단장한 나무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가 낯선 장소에 와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더운 여름날 이 나뭇잎들은 매우 바쁜 나날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들은 듬뿍 쏟아지는 햇빛을 모아서 당을 만들어 줄기에 살을 찌우고 뿌리를 길게 늘어뜨렸습니다. 자신의 몸에는 초록 빛깔의 그림을 그리고 우리 사람들에게 희망과 설렘이라는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고 햇빛이 줄어들면서 그들의 광합성도 줄어들었습니다. 광합성에 필요한 햇빛의 양이 적어지고 기온이 낮아져 광합성의 효율이 줄어들었고 당의 생산량도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나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줄기를 버리든 잎을 버리든 선택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드디어 나무는 결단을 합니다. 나무는 자신이 살기 위하여 나뭇잎을 버리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지금까지 광합성으로 에너지를 만들어주었던 나뭇잎과 결별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나무는 줄기와 잎이 연결된 부분에 하나의 벽을 만듭니다. 우리가 이층이라고 부르는 부분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나무줄기에서 영양분이 잎으로 건너가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나뭇잎에는 더 이상 수분이 공급되지 않게 됩니다. 참 슬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나뭇잎은 씩씩합니다. 수분이 끊겨도 이미 가지고 있는 에너지로 광합성을 계속하여 당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나무줄기와 잎에 벽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그 당분은 나무줄기로 건너갈 수가 없습니다.    


식물의 줄기로 당분이 전해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바로 잎에 저장이 됩니다. 이렇게 잎에 저장된 당분에서  ‘안토시아닌’이라는 붉은 색소가 만들어집니다. 그 색소가 나뭇잎을 붉은색, 노란색, 갈색 등으로 변하게 합니다. 하지만 잎에 저장된 수분이 바닥이 나면서 나뭇잎은 최후를 맞게 됩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줄기에서 떨어져 나와 땅바닥을 향하게 됩니다.   

 

나무의 생명 유지를 위해서 지난여름 나뭇잎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나무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추호의 변명도 없이 나뭇잎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낙엽을 보면 쓸쓸함이라는 단어가 마음 안쪽을 채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줄기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의 쓸쓸함, 배신이라는 감정이 숨어 있어서 가을이 되면 허전하고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쓸쓸함이라는 단어를 지우기 위해서는 나태주 시인님의 ‘더 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다’는 시어를 가슴 한쪽에 꼭 매달아 놓는 길입니다. 쓸쓸함이라는 단어의 반대는 사랑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대를'이라는 시어 대신에 나로 바꾸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혹시 더 여유가 있다면 '그대를'이라는 단어 대신에 우리 아이 이름, 가족, 친구의 이름을 넣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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