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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May 14. 2020

엄마의 주파수

풍경소리

카페 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카페에 가면 글도 쓸 수 있지만 소중한 보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소중한 보물이란 사람 사는 이야기입니다. 카페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다 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들이 숨어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엿듣는 사람이 바로 ‘필자’입니다. 특히 아줌마들의 수다에서 많은 보물이 발견되곤 합니다. 아줌마들의 대화 주제의 1순위는 자녀교육입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원, 친구, 학교의 이야기가 중심 소재를 이룹니다. 필자가 처음 카페에서 글을 쓸 때는 아줌마들의 수다에 자판이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요즘은 글이 안 써지면 아줌마들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워 봅니다. 교육에 대한 지혜가 잔뜩 들어있습니다.   

  

어느 카페에서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엄마. 오늘은 아들과 뭐하며 보냈어.” “응 밥 먹고 안마했지.”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엄마들의 대화였습니다. 자세히 들어보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있는데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주말에 집에 오는데, 엄마가 아들을 위해서 안마를 한답니다. 아들을 거실 매트리스에 눕혀놓고, 발로 밟아 아들의 뭉친 근육을 풀어준답니다. 몸이 약한 아들을 위해서 유치원 시절부터 손으로 마사지를 해주었고, 지금은 덩치가 커져서 손으로 주무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울림이란 본래의 뜻은 ‘소리가 무엇에 부딪혀 되울려 나오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아빠보다 훌쩍 키가 커버린 아들의 등에 올라가 근육을 풀어주는 엄마의 정성이 ‘사랑한다’라는 소리가 되어 아들의 심장을 거세게 울렸을 것입니다. 아들의 어깨에 짊어진 입시라는 무거운 짐이 이 순간만은 가벼워졌을 것입니다. 필자도 어린 시절에 엄마가 가끔 귀 청소를 해주었습니다. 나를 엄마의 무릎에 모로 눕히고는 내 귀를 살살 파주었습니다. 아프다고 엄살은 부렸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귀를 파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울림과 비슷한 단어로 ‘공명’이 있습니다. 공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동수를 알아야 합니다. 모든 물체는 진동하게 될 때 고유의 진동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주파수라고도 하며 단위 시간에 같은 상태가 몇 번이나 반복되는가에 대한 양입니다. 진동수가 2Hz이라면 초당 같은 상태가 2번 반복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공명이란 비슷한 진동수의 파동이 오면 진동이 강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공명 현상의 가장 쉬운 예로 학교에서 배웠던 소리굽쇠 실험을 들 수 있습니다. 진동수가 같은 소리굽쇠 두 개를 가까이 놓습니다. 한쪽 소리굽쇠를 나무망치로 치게 되면, 다른 쪽 소리굽쇠에서도 소리가 나게 됩니다. 한쪽 소리굽쇠의 진동이 공기를 통해서 전파되면서 다른 쪽 소리굽쇠를 진동시키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진동수가 서로 다르면 상대편의 소리굽쇠를 진동시키지 못합니다.    


공명 현상을 일상생활에서 찾아볼까요? 잘 돌아가던 세탁기의 탈수 상태가 어느 순간 갑자기 쿵쾅거리며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통이 빠르게 돌 때는 세탁기의 고유진동수와 달라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속도가 줄어들면서 어느 순간 세탁기의 고유진동수와 일치하게 되면 진동수가 강해져 세탁기가 쿵쾅거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계의 공명 현상이 인간에게도 존재할까요? 오랫동안 함께 있어도 마음이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났는데, 오래전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금방 친해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글, 경치를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그 울림이 다릅니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에게도 공명 현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사람도 고유의 주파수(진동수)를 가지고 있어서 주파수가 같은 사람끼리 만나면 금방 친해집니다. 책의 주파수와 나의 주파수가 일치하게 되면 감동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자식도 그렇습니다. 유난히 나와 잘 맞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습니다. 1학년 때 힘들던 아이가 2학년이 되어서는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 이유도 담임 선생님과 주파수가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면 너무 과장 되었을까요? 다만 자연계 현상과 사람의 차이점은 있습니다. 모든 물질에 있는 고유 주파수는 변할 수 없지만, 사람은 상대방의 주파수와 맞출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다가 스포츠를 보기 위해서는 TV 채널을 돌려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이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서는 아이와 주파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와 주파수를 맞추면 그때부터 바람직한 성장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아이와 주파수를 일치시켜 공명을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답은 동물들의 행동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동물들은 신체접촉을 통해서 공명이 이루어집니다. 예를 들면 강아지는 주인의 손등이나 입 주위를 핥는 행위를 들 수 있습니다. 주인을 향한 감사함, 복종 등의 의미가 담긴 최고의 애정표현입니다. 필자도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는데, 애정표현을 경험하고 나면 몸이 힘들어도 산책을 하게 됩니다. 나의 마음에 공명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람과 가장 비슷한 영장류 원숭이들은 2~3마리씩 짝지어 서로의 털을 골라줍니다. 상대방의 털에 붙은 노폐물, 먼지 등을 닦아주고 골라줍니다. 이것도 공명 현상입니다. 털 고르기를 하는 과정에서 신뢰가 발생하며, 그 신뢰는 서로 싸우지 않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의 힘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도 동물처럼 신체를 접촉하면 같은 주파수가 되어서 공명 현상이 일어납니다. 물론 동물들과 달리 언어를 통해서도 공명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엄마들이 아이를 나무라는 방식을 분류해보면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유형은 두 손을 꼭 잡고, 아이 눈을 바라보면서 나무라는 엄마가 있습니다. 아이 두 손을 잡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감정이 엄마에게 전달이 됩니다. 그 느낌은 엄마의 목소리를 부드럽게 해주며, 학부모 연수회에서 받았던 방법으로 “숙제 다 하고 놀아야지?”라고 나무라게 됩니다. 두 번째 유형은 아이 손을 잡지 않고 나무라는 경우입니다. 이미 엄마는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서 신체가 많이 흥분되어 있습니다. “너 숙제했어? 안 했어?” 자신도 모르게 앙칼진 목소리로 아이의 행동을 나무라게 되며, 아이와 관계가 멀어져 갑니다. 물론 아이 행동도 수정되지 않습니다.    


아이 두 손을 꼭 잡아주면 긴장했던 아이의 신체가 부드럽게 이완이 됩니다.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보고 흥분을 했지만, 아이 두 손을 잡으면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그 이유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 때문입니다. 옥시토신은 사랑의 호르몬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두 손 잡기, 안아주기, 귀 청소, 근육 풀어주기 등은 옥시토신 호르몬 분비를 촉진합니다. 엄마와 아이의 옥시토신 호르몬의 양이 많아지면 엄마의 이야기를 아이가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엄마의 이야기가 소리굽쇠처럼 아이의 감정을 진동시키고, 그 진동의 힘은 사랑이라는 식량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랑의 식량은 평소에는 열정으로, 지치고 힘들 때는 토닥거림으로 나타납니다. 아이의 손을 더 잡아주고, 더 안아주는 것이 아이가 바른 성장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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