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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May 18. 2020

어느 부부의 큰절


담임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1990년대 초 사라졌지만, 그 효과를 주장하는 일부 학교에서만 2000년대 초까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당시 사립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새 학년이 시작되면 모든 학생의 가정 방문이 이루어졌습니다. 선생님들 대부분은 가정 방문을 반대했지만, 교장 선생님은 “가정의 생활 모습을 보지 않고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가정 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자동차 브레이크에 닿은 발바닥의 감각이 무덤덤해진 것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그만큼 힘들었지만, 아이를 알게 되고, 부모님들로부터 귀중한 지혜를 얻기도 했습니다.    


가정 방문을 하다 보면 부모님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듣기 형’입니다. 자기 생각보다는 담임 선생님 말씀을 주로 듣는 유형의 학부모입니다. 필기도구를 미리 준비해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빠짐없이 기록하며, 질문의 횟수도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예리하고 정확합니다. 아이에 대하여 충분한 관찰이 없으면 답을 할 수 없습니다. 다음번 상담을 위해서 더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아이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유형의 학부모에게서 꼭 듣게 되는 말은 “우리 아이가 담임 선생님을 좋아합니다.”입니다.     


두 번째 유형은 ‘말하기 형’입니다. 담임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교육에 대한 소신을 들려주시는 학부모입니다. 자신의 교육철학이 분명한 학부모입니다. 이분들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쳐왔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의 잘하는 점과 부족한 점이 그림으로 그려집니다. 다만 이런 유형의 학부모 아이들은 잘 성장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행동이 바르지 않으면 매를 든다.”라는 학부모의 아이들은 성장 속도는 매우 느립니다.    


“가정의 생활 모습을 보지 않고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라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숲을 그리기 위해서는 숲으로 가야 합니다. 그 숲에 어떤 꽃과 나무들이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풀꽃들이 얼굴을 내미는지 보아야 합니다. 숲을 멀리서 보면 그림은 그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멀리서 보는 숲과 같습니다. 엄마, 아빠, 동생 등을 만나 보아야 하고, 그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야 합니다. 엄마와 아이가 원하는 것의 차이점도 알아야 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사이가 좋은 지도 알아야 합니다. 엄마, 아빠의 관계에서 아이는 상처를 받고 희망도 얻습니다. 한 아이를 이해하려면 이렇게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부모님과 상담을 자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가정 방문을 하면서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학부모가 있습니다. 그분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큰 건설사 회장님이셨습니다. 그분의 집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거실 한가운데에는 동그란 방석이 하나 놓여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를 그 방석에 앉으라고 권유하시고는 큰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신혼여행에 돌아온 신랑 신부가 부모님께 큰절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어서 아이도 부모님을 따라 큰절을 했습니다. 살아가면서 당황스러운 날이 종종 있는데, 그중의 하루가 이날입니다. 선생님으로 살아오면서 가장 당황스럽고 울림이 큰 날이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20대 후반이었고, 건설사 회장이셨던 ○○의 아빠는 40대 후반이었습니다. 아이가 방으로 들어간 후 아빠는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행동을 통해서 아이가 배우기 때문입니다.” 많은 의미가 담긴 한 문장이었습니다. 건설사 회장인 아빠가 담임 선생님을 큰절로 받든다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빠가 존경하는 사람이므로 아들도 당연히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 아이를 보면 항상 저를 좋아하는 눈빛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은 훌륭하게 성장해서 사회의 리더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부부의 큰절은 ‘교육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라는 가르침을 선물해주었습니다.    


가정 방문이라는 제도는 사라졌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을 통해서 마음이 건강하게 자랍니다. 우리 어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공자, 맹자처럼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청각을 울리지는 못합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립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답은 어른들의 이야기가 아이의 감정에 닿지 않아서입니다. 말로 하는 가르침은 감정에 닿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의사소통의 주인공은 행동입니다.     


감정을 의식이라는 것이 알아차리면 느낌이 만들어집니다. 그 느낌을 언어로 표현하면 생각이 됩니다. 달리 말하면 생각 이전에 느낌이 만들어지고, 느낌 이전에 감정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더운 여름날 시원한 음료가 먹고 싶습니다. 그 음료를 먹고 싶게 만든 주인공이 감정입니다. 그래서 감정은 나침반과도 가고, 자동차의 윤활유와 같습니다. 우리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힘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서는 감정을 움직여야 합니다. 아이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길은 유일하게 하나입니다. ○○의 아빠처럼 진실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행동은 향기가 되어 아이들의 감정으로 들어가고, 그 감정은 느낌과 생각이 되어 우리들의 삶이 방향을 결정합니다. 선생님, 부모님, 어른 노릇 하기가 어려운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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