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감정의 온도)
몇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4월 초 학교에 폭력 사안 하나가 접수되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6학년 여학생 네 명이 5학년 여학생 한 명을 괴롭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6학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이야기의 주요 내용은 5학년 아이가 버릇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언니들에게 인사도 잘 안 하고, 잘난 체 해서 약간의 훈계를 했답니다. 5학년 아이나 부모도 문제가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그 사안은 마무리되었습니다. 다만 이 아이들의 말과 행동, 눈빛은 앞으로 많은 문제가 일어나겠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에 대하여 궁금했습니다. 필자는 당시 이 학교의 교감으로 발령을 받았고, 한 달이 조금 지났기 때문에 학교 실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오랫동안 근무하셨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들은 5학년 때부터 ‘문제아’로 불리고 있었으며, 친구들이 무서워하고, 선생님들은 이들 이야기에 인상을 찌푸렸습니다. 이들을 그대로 두면 나중에 큰 문제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나의 교육경력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교감실로 불렀습니다. 이번 사안을 그냥 넘어가는 대신에 한 가지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매주 금요일 중간놀이 시간에 교감을 방문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금요일 중간놀이 시간에 교감실을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음료와 과자를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이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꾸중을 예상하고 들어왔는데, 과자를 먹으라는 나의 이야기에 “정말 먹어도 되나요.”라고 의아하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래. 너희들에게 교감 선생님이 주는 선물이란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과자와 음료를 모두 먹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중간놀이 시간에 과자와 음료를 준비하면 항상 놀러 오겠니?” 아이들에게 “네”라는 대답을 듣고 돌려보냈습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약간의 훈계를 하려고 했는데, 과자를 먹는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 아이들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다시 과자와 음료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아이들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습니다. 특별히 교감 선생님이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아이들에게 교감 선생님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개구리 뒷다리를 구워 먹었던 일, 감나무에 올라가 떨어졌던 일, 하루 종일 냇가에서 놀았던 일, 학교를 다녀오면 가방을 던져놓고 놀기만 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너희들은 공부를 많이 해서, 놀 공간이 없어서, 놀 시간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이 모두가 어른들의 잘못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날 이후 이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금요일 중간놀이 시간은 그 친구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출장이 있는 날이면 요일을 바꾸어 만남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들과 정이 들기 시작했고, 다른 아이들의 소식도 듣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다른 아이들에게 고자질하는 아이들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는데, 비밀들을 몰래 하나, 둘 알려주었습니다. 덕분에 그해에는 학교폭력 전담기구가 회의가 한 번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아이들과 그렇게 보내던 11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일찍 출근을 했는데, 아이 한 명이 교감실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네 명의 아이 중 한 명이었습니다. 놀라서 다가온 나에게 “어제 엄마 아빠가 이혼했어요. 교감 선생님께는 이 말을 하고 싶었어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제 교직 생활에서 가장 가슴 아픈 순간 중 하나입니다.
이 아이들과 1년을 보내면서 아이들의 마음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시작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담임 시절에는 눈앞의 아이들을 감당하느라 고민할 시간이 사실은 적었습니다. 한발 물러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니 그들의 외로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나 혼자 살아가는 인생 시스템입니다. 아이가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캄캄한 거실이 맞이합니다. 아이는 불을 켜고 혼자 밥을 차려 먹습니다. 형제가 있다 해도 학원 시간이 달라 집에 오면 혼자 지냅니다. 대부분 시간을 게임을 하거나 TV를 봅니다. 부모의 이혼, 맞벌이 가정, 핵가족 사회에서 가장 외로운 건 부모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의 마음은 외로운데, 엄마, 아빠는 늦게 집에 오십니다. 엄마가 집에 오면 아이에게 묻습니다. “숙제 다 했냐? 안 했냐?”
어쩌면 외로움에 대한 돌봄을 가정도, 학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외로움의 양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외로움은 무기력이라는 감정으로 얼굴을 바꾸어 나타납니다. 아이들은 선생님도, 숙제도, 공부도, 학원도 모두 싫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외로움이 무기력이 되어 아이들 행동의 방향성을 결정합니다. 그중 하나가 친구와의 연대입니다.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친구를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그 친구가 설령 품행이 단정하지 못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면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집단을 형성하고, 비행 행동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공부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친구를 뺏어 버렸습니다. 집에 와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의 놀 공간도 점점 사라져갑니다. 풀밭도, 냇가도, 넓은 운동장도 없습니다. 이러다 보니 아이들은 아이들의 외로움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아이들의 감정 온도를 낮추려면 외로움을 달래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길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게 엄마이면 가장 좋겠지요. 세상에서 한사람만이라도 감정을 읽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아이들은 어긋나지 않습니다. 따뜻한 음료를 아이에게 건네면서 입은 닫고, 귀는 열고 행복한 미소를 보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