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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Jul 19. 2021

초록이

“똑똑” 이른 아침부터 누군가 교장실 문을 두드린다. 그림자로 보아 아이들이 틀림없다. “네 들어오세요.” 남자아이 두 명이 활짝 웃으며 교장실 문을 들어선다. 그런데 그들 손에는 접시 하나가 들려있다. 접시 위에는 수박 세 조각이 줄을 맞추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 드시래요.” 아이들의 이야기로는 담임 선생님이 수박을 보내셨다고 한다. “텃밭 상자 수박 주인이 너희 반이니?” “네” 그랬구나. 이반 아이들은 텃밭 상자에 7∼8cm 크기의 수박 모종 4개를 심었다. 그 시기가 아마 4월 중순쯤이었을 것이다. 모종이 커가면서 아이들의 손도 머리도 바빠졌다. 한 손에는 관찰 일지. 다른 손에는 조리개가 들려있었다.    

 

어제 아침 텃밭 상자를 돌아보았다. 방울토마토, 가지, 고추 등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아! 그런데 수박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에 누군가 수박을 서리했을까?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실망했을까? 내년부터는 수박을 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 수박이 지금 내 눈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수박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한 분이 들어오셨다. 선생님께 수박에 관련된 사연을 말씀드렸다. 한 조각을 권해 보았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드셨단다. “저도 이전 학교에서 수박을 길러보았어요. 대부분 실패하는데, 처음으로 성공한 수박을 먹었답니다.”  

    

이 수박을 어떻게 할까? 먹기에는 너무 아깝고, 그런다고 냉동실에 보관해 둘 수도 없다. 수박을 먹기로 했다. 수박을 깨물어 입속에 넣고 몸에서 전해지는 감각을 살펴보았다. 하우스 수박과는 조금 다른 맛이었다. 하우스 수박을 카페라테라고 하면, 이 수박은 갓 볶은 원두에서 내린 아메리카노이다.   

  

지금 아이들은 수박을 맛있게 먹고 있겠지. 수확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겠지. 이 아이들의 오감을 상상해 본다. 솜털이 달린 수박 모종을 텃밭 상자에 심을 때 흙의 촉감에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잎과 줄기의 성장에서 생명의 신비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수확의 기쁨에서 농부의 수고를 알았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 담임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받았다. 이 수박의 이름은 ‘초록이’였단다. 이 반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매일 ‘초록이’를 방문했단다. 인사도 하고 편지도 썼단다. “초록이를 먹어요? 저는 못 먹겠어요.” 선생님께 항의했단다. 그래 초록이는 너희들의 마음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거야.

      

이제 초록이는 학교 화단에 존재하지 않는다. 초록이가 머무는 곳은 아이들 마음 결이다. 투명하면서 아름다운 이슬이 되어 아이들을 지켜줄 것이다. 아이들이 지치면 미소를 보내 토닥여 줄 것이다. 아이들이 사랑꾼으로 자라도록 따뜻한 느낌이 되어줄 것이다. 초록아! 애들아! 사랑한다. 담임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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