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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Oct 31. 2021

어느 위생사 선생님의 가르침

가르침의 본질

“참 잘하셨어요.” 위생사 선생님으로부터 양치질을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양치질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좋아하다니. 사연은 이렇다. 어느 날부터 오른쪽 잇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치아가 튼튼하다고 했는데, 무슨 일일까? 급히 치과병원을 찾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양치질이 잘못됐다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날부터 바른 양치질 습관을 만들기 위해, 위생사 선생님과 구강 예방프로그램을 실시해야만 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양치질을 다시 배우고 있다. 양치질에 관해서는 유치원 학생인 셈이다. 예방프로그램 첫날 칫솔을 들고 평소처럼 이를 닦아보라고 하셨다. 앞쪽과 어금니의 양치질을 잘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고, 위생사 선생님은 전문가용 칫솔을 들고 내 이를 닦아주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이 내 양치질을 해준 순간이다. 아! 어머님은 해주셨겠구나.  

   

숙제도 내주셨다. 일주일 동안 선생님이 가르쳐준 방법대로 열심히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주일 후에 물감을 사용하여 양치질이 잘못된 부분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숙제가 잘 되었을까? 일주일 후 물감을 사용하여 사진을 찍고, 양치질이 잘된 부분과 덜된 부분을 알려주셨다. 숙제를 잘못한 것이다. 선생님은 양치질이 덜 된 부분을 닦아주셨고, 어떻게 하면 그곳을 잘 닦을 수 있는지 방법도 알려주셨다.   

  

그렇게 몇 주를 반복했다. 드디어 오늘 위생사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양치질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잇몸이 좋아지고 있다고. 선생님의 칭찬을 들으면서 ‘가르침’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이전에 다녔던 병원에서도 양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 나는 왜 양치질을 잘하지 못했을까? 내가 잘 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병원에서는 연습의 성과를 점검하지 않은 것이다.     


가르침은 ‘무엇을 아는 것’과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구분된다. 양치질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을 아는 것’이다. 아마 양치질 방법에 대해서 시험을 보았다면 나는 100점을 맞았을 것이다. 방법을 이해하고, 부단히 연습하여 양치질을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을 아는 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쉽게 전환되기는 어렵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뇌 구조의 특성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 뇌에서 ‘무엇을 아는 것’과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의 저장되는 위치는 다르다. 뇌 과학자들에 의하면 ‘무엇을 아는 것’은 대뇌피질의 ‘감각 연합영역’에 저장이 된다고 한다. ‘감각 연합영역’이란 오감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들이 모이는 곳을 말한다. 위생사 선생님께 배운 양치질 방법은 이곳에 저장이 되어있는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의 기억되는 기관은 어디일까? 기저핵이다. 기저핵은 대뇌피질 아랫부분에 있는 뇌 기관을 말한다. 위생사 선생님으로부터 양치질에 대한 올바른 방법을 수없이 연습하다 보면 이곳에 저장이 된다. 스키, 자전거, 축구, 오른쪽으로 걷기, 잘 듣기, 잘 보기, 글쓰기 등 모든 영역이 그렇다. 감각 연합영역의 기억에 쉼 없는 노력이 더해지면 기저핵에 저장이 되는 것이다.     


요즘 교육을 생각해 본다. 심한 욕설을 하는 아이가 있다. “친구에게 욕을 해도 될까?”라고 물으면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복도에서 뛰는 아이가 있다. 이 아이도 대뇌피질에서는 뛰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기저핵에 저장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의 생활지도가 무너진 이유는 ‘무엇을 아는 것’에 머무른 가르침 때문이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전환되지 않아서 발생한 것들이다.  

   

구강 예방프로그램을 다니면서 위생사 선생님에게 가르침의 본질을 배울 수 있었다. 내 이를 닦아주는 위생사 선생님의 손놀림을 내 근육세포들은 기억했다. 물감을 사용하여 이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양치질 방법이 나의 기저핵에 자리 잡았다. 양치질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 나의 치아도, 잇몸도 좋아졌다. ‘무엇을 아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학교 교육의 목적이고 가르침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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