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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Apr 15. 2022

오솔길 학교

(감성이 실력이다.)

아이들의 입과 행동이 거칠다고 한다. ‘거칠다’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나무나 살결 따위가 결이 곱지 않고 험하다’로 정의되어 있다. 아이들이 거칠다는 것은 마음의 결이 험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언제부터인가 학교라는 단어 뒤에는 왕따, 폭력이라는 낱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학생이라는 단어 옆에는 ‘힘듦’이라는 낱말이 고개를 들고 있다.

      

공사장에 가보면 ‘채’가 있다. 강 하류의 모래는 트럭에 운반되어 공사장에 도착한다. 거친 모래이다. 이 거친 모래는 ‘채’에 던지면 고운 모래와 자갈로 구분이 된다. 고운 모래는 시멘트와 섞여서 벽돌의 재료가 된다. 그 벽돌이 쌓여서 예쁜 담도 되고 집도 된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다. 아이들이 고운 모래가 되어 행복한 가정의 벽돌이 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사회의 벽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친 생각과 감정을 ‘채’로 걸러주어야 한다. 그 ‘채’ 이름은 학교이다. ‘학교’라는 ‘채’를 통과하면 고운 감정을 지닌 아이들, 멋진 생각을 해내는 아이들로 자라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학교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 필자는 ‘오솔길 학교’를 제안한다. 오솔길을 걸어가 보자. 신체가 이완되기 시작한다. 딱딱하게 굳었던 어깨가 부드러워진다. 날카로워졌던 생각에 여유라는 틈이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이라는 강에서 내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들에게 미소를 던지기 시작한다.  

   

오솔길에는 무엇이 있어서 이런 마술을 부리는 것일까? 오솔길을 천천히 들여다보자. 예쁜 꽃이 보인다. 꽃 옆에는 풀들이 숨을 쉬고 있다. 그 위로 나비가 날아다닌다. 키가 큰 나무들은 이들의 보호자이다.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고, 차가운 겨울바람을 든든하게 막아준다.  

    

이제 ‘오솔길 학교’의 정체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꽃을 매일 볼 수 있어야 한다. 꽃을 따라 나비가 날아다녀야 한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야 한다. 그곳에 새들이 찾아와 매일 합창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곳에서 선생님과 공부하고 뛰놀아야 한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어야 한다.   

  

주말에 인근 초등학교, 중학교를 돌아보았다. 화단을 살펴보고 운동장을 걸어보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을 차는 아이들이 보인다. 운동장 트랙을 따라 걷기에 열심인 어른들도 보인다. 화단에 꽃들이 별로 없다. 당연히 나비를 볼 수가 없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나무 그늘도 사라져버렸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 나무가 가득했다. 교장 선생님은 매일 화단의 꽃들을 가꾸셨다. 교실 창문으로는 화분이 줄지어 놓여있었다. 그곳에는 꽃, 감자, 고구마 등을 심었다. 우리는 매일 관찰 일지를 기록하며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에게 “사랑해”라고 말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히 들려온다. 

    

그렇다. 학교에 꽃과 나무가 사라지면서 우리 아이들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교실에 화분이 사라지면서 아이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꽃과 나무를 아이들에게 다시 돌려주어야 한다. 그들이 감성을 키울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첫걸음이다. 오솔길 학교를 만들어 우리 아이들의 감성을 키워보자. 감성이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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