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튤립이야.
나는 작년에 하율이가 심었지.
하율이가 집에 가면 나는 심심해
그래도 다른 친구들이 돌봐줘서 다행이야.
물론 새벽에는 아무도 없어.
그래서 난 아침을 기다려
하율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
위의 글은 ‘튤립에게 주고픈 말’입니다. 하율이라는 친구가 학교 숲에 있는 자신의 튤립에게 보내는 동시입니다. ‘하율이가 집에 가면 나는 심심해’라는 표현에서 교정에 홀로 남겨진 튤립을 염려하는 아이의 마음이 보입니다. ‘난 아침을 기다려’라는 표현에서 이 아이의 튤립 사랑의 정도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작년 11월, 학교 숲에 튤립밭을 만들었습니다. 작고 아담한 9개의 튤립밭을 만들었습니다. 그 튤립밭의 주인공은 3학년 4개 반, 4학년 5개 반입니다. 아이들은 자기 반의 꽃밭에 튤립 씨앗을 심었습니다. 당시 튤립 씨앗은 껍질을 벗겨 심었는데, 양파처럼 하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튤립 씨앗에 주인의 이름표도 붙여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등교와 동시에 튤립밭을 보러 갑니다. 언제 싹이 날까? 물이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관심이 부족해서일까? 지난 몇 달 동안 튤립 씨앗은 아이들의 마음을 애태웠습니다. 고운 싹을 보기 위해 찾아온 아이들의 시선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튤립밭에서 푸릇푸릇한 새싹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꽃봉오리가 올라오더니 어느새 활짝 핀 튤립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튤립이 꽃 중의 꽃일까요? 왕관 모양의 꽃잎에서 그들의 화려함이 드러납니다. 꽃의 빛깔이 어쩌면 이리 고울까요? 아이들의 기다림, 바라봄을 튤립은 알고 있었나 봅니다. 아이들의 고운 마음의 빛깔을 꽃잎의 색깔로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이 꽃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튤립에게 주고픈 말’을 시나 편지로 적어오기를 부탁했습니다. 유혹 아닌 유혹도 했습니다. ‘선물을 주겠노라고’ 아이들이 교장실을 들락거립니다. 오늘 하루 만에 100여 명이 이상이 왔다 갑니다. 종이로 접은 튤립을 예쁜 봉투에 편지와 함께 담아 보내는 1학년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앗!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이들의 글이 살아 움직입니다. 아이들의 생각이 꿈틀거립니다. 단어에서 감성이 피어오릅니다. 문장에서 창의성이 한 아름 들어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감성과 창의성은 별것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꽃을 심고, 가꾸고, 주고픈 말이었습니다. 튤립을 심고, 가꾸고, 표현하는 것이 배움이고 가르침이었습니다.
아이들의 감성을 저만 간직하기엔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의 글을 책으로 엮어보겠습니다. 튤립꽃 엽서 카드도 만들어 보겠습니다. 엽서에는 부모님과 친구에게 보내는 사랑 글이 담겨있겠지요. 그런 작은 이벤트로 우리 아이들을 사랑꾼으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아마 6월에나 책과 엽서의 얼굴을 볼 수 있겠지요.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