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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Apr 05. 2022

꽃이 꽃을 심다

오늘은 유치원 아이들이 봄꽃을 심는 날입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교실 뒤편 화단에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그들 손에서 팬지, 데이지, 백일홍 등이 보입니다. 아이들의 얼굴은 봄꽃을 닮았습니다. 아니 봄꽃이 아이들을 닮았습니다. 꽃이 꽃을 들고 있고, 꽃이 꽃을 심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조그마한 구덩이를 파고 있습니다. 그 속에 자기의 꽃을 밀어 넣습니다. 이제 흙으로 덮어주기 시작합니다. 아기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엄마의 모습입니다. 잠들어 있는 아기를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유치원 아이들이 꽃의 엄마이고 아빠입니다.     


꽃은 누구나 좋아합니다. 그중에 꽃을 유독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꽃샘추위에 꽃이 추울까 걱정이 됩니다. 그들에게 비닐 옷을 입혀줍니다. 꽃이 걱정되어서 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이른 새벽, 눈을 뜨자마자 그들에게 달려가 안부를 묻습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당신 주위에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들을 관찰해보면 몇 가지 단서가 있습니다. 공감 능력과 정이 많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나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이웃과 서로 나누는 사람입니다. 주위에서 마음이 곱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사람입니다.    

 

꽃을 사랑해서 마음이 고와지는지, 마음이 고와서 꽃을 사랑하는지 그 답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꽃을 심고 가꾸면 마음이 고와지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꽃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꽃을 심으면 자세가 달라집니다. 매일 물 주전자를 들고 꽃을 방문합니다. 따뜻하게 바라봅니다. 어느새 꽃을 사랑하는 아이가 되어있습니다.  

   

꽃을 사랑하게 되면 왜 마음이 고와질까요? 그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꽃이 사람을 만나면 가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감성입니다. 감성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적절한 비유는 ‘체’입니다. ‘체’란 가루를 곱게 치거나 액체를 걸러내는 도구입니다. 예를 든다면 모래와 자갈이 섞여진 혼합물에서 모래와 자갈을 따로 분리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우리 마음에도 모래와 자갈이 섞여져 있습니다. 기쁨, 평화, 평온 등의 감정이 고운 모래라면 분노, 불안, 두려움 등의 감정이 자갈입니다. 꽃은 감정의 ‘체’ 역할을 합니다. 거칠었던 감정이 꽃의 색깔이라는 ‘체’에 의해 그 모습이 작아지게 됩니다. 꽃의 향기라는 ‘체’에 의해 고운 감정, 기쁨, 평화, 평온 등의 모습이 크게 보이게 됩니다.     

꽃이라는 ‘체’는 오감의 문도 활짝 열어줍니다. 감각 문이 열리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햇살, 바람, 별 등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것들은 언어의 ‘체’ 역할을 시작합니다. 상처 주는 말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며, 메시지 하나에도 고운 감성이 담겨있습니다. 그것이 고운 지성입니다. 

     

오늘 유치원 아이들이 꽃을 심고 있습니다. 꽃이라는 ‘체’로 고운 감정을 심고 있습니다. 꽃이 꽃을 심고 있습니다. 이들의 마음에서 거친 감정이 작아지기를 소망합니다. 고운 감정만을 키우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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