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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Mar 31. 2022

산책길에서 만난 아이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아침 산책이다. 조금 일찍 출근하여 학교의 나무, 꽃과 만나는 시간이다. 산책 순서는 대개 일정하다. 교문에서 출발하여 학교 뒤편 화단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장미밭이 만들어져 있고, 지금은 여린 장미 새싹들이 서정의 시를 노래하고 있다.

     

그들에게 인사하고 들리는 곳은 명상 숲이다. 이곳은 원래 운동장이었다. 초등학교에서는 보기 드물게 컸던 운동장 일부를 명상 숲으로 조성했다. 산림청, 구청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수목, 꽃, 산책로 등 대부분을 내가 설계했다. 설계비를 아껴서 한 그루 나무라도 더 심고 싶었다.   

  

이곳은 아이들, 학부모의 따뜻한 손길도 묻어있다. 아이들, 학부모가 손을 잡고 풍차를 만들었다. 유럽에서나 볼 수 있는 빨간 풍차이다. 풍차는 아이들에게 추억을 소환시켜줄 것이다. 먼 훗날 여행을 하다가 풍차를 만나면 초등학교 시절이 그려질 것이다. 초등학교의 감성이 살아날 것이다.  

    

무슨 일일까? 이른 아침인데 명상 숲에 아이들이 모여있다. 쪼그리고 앉아서 무언가를 살피고 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급히 다가갔다. 아! 그들이 살피고 있는 것은 튤립이었다. 그들은 작년 11월 이곳에 튤립을 심었던 아이들이었다. 이곳의 주인들이었다.    

 

이곳에는 9개의 튤립밭이 있다. 3학년 4개 반, 4학년 5개 반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키가 큰 튤립밭도 있고, 키가 작은 반도 있다. 같은 학년이지만 아이의 키가 다르듯 튤립밭도 그렇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튤립을 심었지만, 키 자람이 모두 같지 않다.     

왜 그럴까? 사실 이 문제는 얼마 전부터 나의 고민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물을 많이 주어서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오늘 만난 아이들 반의 튤립 키는 작았다. “저쪽 반 튤립이 잘 자란 이유는 무엇일까?” 아이들도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한참을 망설이더니 한 아이가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많이 보아서 그래요.”   

  

아이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았다. 키가 큰 튤립밭은 유난히 아이들이 많이 찾았단다. 그 반 아이들이 수시로 찾아와주었단다. 그래! 이제야 이유가 분명해졌다. 그 반 튤립은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 고운 눈빛, 부드러운 손길을 많이 받았다. 튤립도 빨리 자라 아이들에게 건강한 예쁜 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 반 튤립은 잘 자라지 않아요?” 한 아이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이 아이는 분명 튤립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고 있는데.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좀 빨리 크지. 키 작은 튤립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먼저 피어도 예쁘고, 나중에 피어도 예쁘단다. 너희들도 그렇단다.”    

 

내 말을 이해 했을까? 아이들을 멀리하고 명상 숲을 떠났다. 이제 배추꽃과 인사할 시간이다. 모종을 심은 지 6개월이 되어서야 만난 꽃이다. 봄이라는 계절에 화려한 노란색 치마를 입고 있다. 오늘은 비가 온다는데 걱정이다. 봄비가 살살 내려주면 좋겠다. 여린 꽃잎이 봄비에 다치지 않아야 하는데. 봄이 배추꽃을 좀 더 오래 붙잡고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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