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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Mar 26. 2022

감성이라는 집

작년 10월 초, 아이들이 텃밭 상자에 모였다. 그들 손에는 작고 가냘픈 배추 모종이 들려있었다. 그들은 30㎝ 간격으로 조그마한 배추 집을 만들었다. 이제 배추 모종이 들어갈 차례이다. 엄마가 아기에게 이불을 덮어주듯 조심조심 모종 주위를 흙으로 감싸준다.   

  

모종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의 조상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은 농부의 후예이다.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부모님의 표정을 그들에게서도 읽을 수 있었다. 모내기를 마친 후 아버님, 어머님의 흐뭇한 표정을 아이들에게서도 읽을 수 있었다.     


맞다. 우리는 농부의 후예이다. 몇 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우리가 농부의 후예임은 쉽게 증명된다. 그들의 유전자자 지금 내 몸에 흐르고 있고, 우리 아이들도 그렇다. 그 유전자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행복을 바라는가? 그럼 식물을 심고 가꾸어라.”  

   

배추 모종을 심은 다음 날, 새로운 활기가 학교에 펼쳐진다.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 아이들의 등교이다. 서로 먼저 물을 주겠다며 아침 일찍 학교에 온다. 미리 온 아이가 물을 주었는데, 조금 늦게 도착한 아이도 물을 주기 일쑤다. 보기에도 아까운 행복한 장면이다.  

   


담임 선생님 도움으로 관찰일지를 기록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의 손에는 자와 돋보기가 들려있다. 하루에 얼마만큼 자라는지, 색깔은 어떻게 변하는지, 영양 상태는 어떤지에 대한 기록이 빼곡히 적혀있다. 마치 의사의 진찰기록처럼 정성이 들어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점점 모종은 어른 배추 모습으로 성장해갔다. 유난히 심했던 겨울 가뭄, 지독한 한파를 이겨내고 모두 모두 잘 자랐다. 아이들을 비롯한 교육공동체 사랑의 힘으로 잘 견디어왔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배추가 사랑을 줄 차례이다. 지난 봄비로 꽃대가 쑥쑥 자라더니. 노란 4개의 꽃잎과 달콤한 향기가 교정을 누비기 시작한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디서 왔는지 꿀벌들도 신이 났다.  



배추꽃을 보면서 감성이라는 집을 생각해 본다. 감성은 이성과 감정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다. 그곳에서 감정의 완충 역할을 하게 된다. 날카로운 것을 부드럽게, 따뜻한 것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감성 집이 클수록 좋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란 말을 듣게 된다.     


오늘 핀 배추꽃은 아이들 감성 집으로 향할 것이다. 꽃잎이 감성이라는 집의 안방에 앉아있고, 향기가 거실을 오고 갈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 감성 집은 조금씩 커질 것이다. 화려해질 것이다. 나도 배추꽃으로 열심히 감성 집을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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