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화를 하다가 한 지인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두 마리 개를 키운다!” 이 말을 듣고 다소 의아해 했다. 두 마리 개라면 도대체 어떤 종류의 개를 말하는가? 어렸을 때 집에서 개를 키운 적이 있던 터라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 지인은 “두 마리 개란 무엇일까요?” 하고 맞춰보라고 했다.
그래서 필자는 “혹시 진돗개 아니면 풍산개가 아닐까요?” 라고 답을 했다. 물론 동석했던 여러 지인들도 나름 개 종류를 대었다. 한참 뒤 그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마음속에 두 마리 개를 키우는데 이 두 마리 때문에 소통이 잘 안됩니다. 그래서 이 두 마리 개를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아주 무 슨 개인데 버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두 마리 개는 그 지인이 말을 이어 갔다. “바로 선입견과 편견을 말합니다.” 즉 이 두 마리 개가 서로 소통하는 데 있어서 특히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기발한 생각이었다.
그때 한 지인이 해준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 한 장님이 캄캄한 밤에 등잔불을 들고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장님에게는 등잔이 필요 없었지만 혹시 지나가던 행인이 자신과 부딪칠까봐 미리 대책을 세운 것이다. 장님은 한참 가다가 그만 지나가던 행인과 정면 충돌을 해서 넘어지고 말았다. 장님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당신은 도대체 눈을 뜨고 무얼 보고 다니는 거요? 이 등잔불이 당신 눈에는 안 보이시오?� 그랬더니 그 행인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당신의 등잔불은 이미 바람에 꺼진지 오래 되었소� 그때서야 장님은 불 꺼진 등잔을 켜진 것으로 착각하고 들고 다닌 자신의 실수를 사과하고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
필자는 사람을 만나면 우선 하는 행동이 있다. “고향이 어디세요?” “하시는 일은 무엇인지요?” “어디 사세요?” “전공은 무엇인지요?” “어느 회사에 다니세요?” 등등 현상적인 질문을 해댄다. 이런 나를 주변에선 <호구(?) 조사>를 한다고 핀잔을 더러 준다. 습관처럼 이런 조사를 한다. 왜 그럴까?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 나름 공통관심사 즉 소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함이다. 그러나 더러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질문을 받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날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남들과 대화를 할 때 나는 어떤 선입견과 편견을 갖고 있을까? 혹시 직업이나 겉으로 보여 지는 것을 보고 대충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나만이 갖고 있는 편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 많은 반성을 한 적이 있다.
당신이 진정한 소통 전문가(?)가 되려면 우선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내 맘속에 자리 하고 있는 두 마리 개를 버리는 일이다. 무엇이든지 비워야 채워지는 법이다. 비우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다.
암튼 마음속에 두 마리 개는 키우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