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을 갖은 지 10여년 정도 됐다. 매주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계층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과 만남 속에 더러는 상처도 입기도 하고 더러는 정말 호구(?) 같은 사람들도 보게 된다. 참 저렇게도 살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사는 이들도 있다. 필자가 속한 교회 공동체에 별난 호구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집사라는 세상이 주는 타이들이 아니라 신앙 공동체가 주는 타이틀을 단 이들이다. 타이틀 이름처럼 집사처럼 행동을 한다. 말하자면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한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이타적인 행동엔 늘 감사와 감동이 묻어 난다.
이들은 남을 의식하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 미더 봉사> 를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좋아서 하는 것 같다. 이들이 하는 행동이 뭐 거창한 것은 아니다. 가령 모임을 마치면 의자 등 집기를 치우고 화이트보드를 지우고 자리를 빠르게 정리해놓는다. 음료 등을 먹고 나서 나오는 쓰레기 등도 깔끔히 치운다. 그 수준은 생황의 달인에 버금갈 정도다. 물론 싫은 내색이나 모습은 없다. 이들에게선 이타적인 향기가 그윽하게 풍긴다. 말만 번지르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럴 때마다 “과연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자문자답을 해보곤 한다. 사실 동아리 등 단체 활동을 할 때면 그렇게 나서서 하지 않다고 된다. 즉 묻어가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한 성직자가 한 말이다. “뛰는 놈 위엔 나는 놈이 있다. 그런데 나는 놈 위엔 붙어사는 놈이 있다!” 요즘 세태를 잘 반영하는 메시지다. 그렇다 묻어가거나 붙어가고 별 탈이 없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짓(?)을 짱구들의 짓이라고 칭한다.
독일 심리학자 링겔 만이란 사람이 재미있는 실험을 해봤다. 집단 속 개인의 공헌도를 측정하기 위해 줄다리기 실험을 했다. 1대1 게임에서 1명이 내는 힘을 1백으로 할 때 참가자수가 늘면 개인이 어느 정도의 힘을 쏟는지를 측정했다. 2명이 참가하면 93으로, 3명이 할 때는 85로 줄었고 8명이 함께 할 때 한 사람은 49의 힘, 즉 혼자 경기할 때에 비해 절반밖에 내지 않았다.
<2-6-2 법칙> 이란 게 있다. 어느 생태학자가 개미의 일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개미가 모두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들을 나름대로 구분해보니까 〈열심히 일하는 계층〉이 20%정도,〈중간〉이 60%정도, 그리고〈게으름을 피우는 계층〉이 20%정도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는 계층>을 따로 떼어놓아 보았다. 열심히 일하는 계층>도 〈아주 열심히〉가 20%,〈중간 열심히〉가 60%,〈덜 열심 히〉가 20%가 되더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 세상에게도 적용된다.
참가하는 사람이 늘수록 1인당 공헌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이런 집단적 심리현상을 '링겔 만 효과‘ 라고 부른다. 자신에게 모든 책임과 권한이 주어져 있는 1대1 게임과는 달리 '여러 명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할 때는 사람은 전력투구하지 않는다. 익명성이라는 환경에 개인은 숨는 것이다. 말하자면 <묻어>가거나 <붙어>가는 셈이다. 아마 인간이라면 다 이런 속셈 일 것이다.
이쯤해서 필자 곁의 호구 한 사람을 소개한다. 나는 이 사람을 S집사라고 부른다. 올해로 50대 중반이고 대기업에 다닌다. 키도 작아서 인지 척 보면 착한(?) 내음이 많이 풍긴다. 말하자면 인간의 향기가 절로 묻어 나온다. 단적으로 말해 순도 100% 호구다. 무슨 일이나 모임 있은 후엔 후사는 이 사람이 도모한다. 몸을 아끼지 않고 후사를 챙긴다. 그러고도 지칠질 않는다. 군대로 말하자면 신병처럼 빠르게 알아서 뛴다.
이런 S집사를 볼 때면 늘 미안한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론 “왜 저러지” “혼자만 천국 가려고 하나” “아니면 호구(?)인가” 이런 문장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필자는 이런 사람을 인플루엔서(Influencer)라고 한다. 이들은 어떤 의도를 갖고 호구처럼 사는 게 아니라 이들의 행동이 주변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친다.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서서히 이들의 행동이 스며드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모른다. 필자도 이들의 행동에 물이 들어가고 있다. 바로 앞서지는 못하지만 S집사 곁에서 붙어서 따라잡이를 하고 있다. 처음엔 좀 창피하기도 하고 어색했지만 어느새 호구들의 행동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그래서 속으론 이런 생각도 해봤다. “나도 호구처럼 살아야지” 100% 호구는 안 되어도 반쪽짜리 호구라도 되어보자고. 세간이 이런 말이 있다. < 학사보다 높은 게 석사. 석사보다 높은 게 박사, 박사 보다 높은 건 밥사 > 그렇다면 밥사보다 높은 건? 바로 <봉사>다. 이 세상 가장 취득하기 어려운 타이틀일 것이다. 앞서 소개한 S집사는 학위가 바로 <봉사>다.
<利他自利>란 말이 있다. 남을 이롭게 하면 자신에게도 이로운 일이다.라는 의미다. 인플 루엔서들은 영향력을 주려고 일을 도모하는 건 아니다. 이들은 자리보다 이타를 우선순위에 놓고 사는 이들이다. 우리나라 개성상인들에게 내려오는 격언이 하나 있다. “다 퍼주어 손해 보는 장사는 없다” 혹시 이 세상의 호구들이 살아가는 키워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아니다. 이들은 계산적이지 않은 이들이다. 그저 호구처럼 좋아서 한 다. 아마 이들은 진짜 <호구>가 아니라 세상을 <구호> 하는 이들일 것이다.
혹시 행복해지고 싶으신지요. 그럼 호구처럼 살아보세요. 당신이 호구처럼 살면 세상이 환하게 웃을 겁니다. 이런 게 진짜 행복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