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를 먹으려면 껍질을 깨야 한다 (Il faut casser le noyau pour avoir l'amande).
아몬드의 껍질을 본 적이 있는가?
필자는 프랑스에서 실수로 껍질째인 아몬드를 산 적이 있는데, 장도리로 깨느라 고생한 기억이 있다.
딱딱한 껍질을 깨는 노력이 있어야 결실을 얻는다는 뜻의 이 문장은 로마의 극작가 플라우투스의 희곡 <쿠르쿨리오>에 등장하는 대사 "Qui e nuce nucleum esse vult, frangat nucem(씨앗을 먹으려는 자는 그 껍질을 깨야 한다)"에서 유래된 듯하다.
껍질을 깨지 않은 아몬드. 출처 : pixabay
아멍디에(Amandiers), 즉 아몬드나무는 남부 유럽에서 흔히 자라는 나무였으나, 프랑스인들이 아몬드 씨를 먹기 시작한 건 중세부터였다고 전해진다. 물론 기원전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에게 바치는 빵 속에 넣었다고도 하고, 스위스에는 11세기에 이미 아라비아에서 넘어온 아몬드 쿠키가 있었다.
아몬드 식문화는 남부 유럽에서 프랑스로 수입되었다. 16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카트린 드 메디시스(카테리나 데 메디치 : Catherine de Medicis)가 프랑스 부르봉 가의 앙리 2세에게 시집 올 때 이탈리안 마카롱(maccherone)을 가져온 일화는 유명하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유래된 나멍디에(Namandier)라는 프랑스 아몬드빵도 있다. '갸또 드 쌍자크(Gâteau de Saint-Jacques)'라고도 부르는데, '산티아고 순례길'로 유명한 성 야고보 축일인 7월 25일에 만들어 먹는다.
그 많은 아몬드 껍질은 누가 다 깠을까?
적어도 20세기 초반까지 남프랑스에는 'casserie', 혹은 'cassoir'라는 견과류 껍질 까는 공방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아몬드 까기 전문 일꾼들의 99%는 여자로, 카쇠즈(casseuse)라고 불리며 아몬드 씨를 보존하되 껍질만 정확하게 깨는 기술을 가지고 하루종일 아몬드를 분리해낸다. 아몬드 산지 중 하나인 남부 프랑스의 에갈리에르(Eygalières)라는 마을에는, 30명 이상의 아몬드 까기 일꾼들이 있을 정도로 큰 공장도 존재했다. 전통 방식의 아몬드 까기 기술은 돌을 이용하는 것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전수자가 사라져 자동 소멸되었다.
전문 아몬드 까기 일꾼들은 아침 8시에 시작하여 밤 10시에 일을 마치고 하루 일하면 20수우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20세기 초반에 빵 1kg 당 4수우였던 것을 생각하면 뭔가 익숙하면서도 눈물이 난다......
에갈리에르 지방의 아몬드 까기 일꾼들(1963). 출처 : Arts et traditions populaires.
우리는 혹시 아몬드에 껍질이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아몬드 씨만 쏙 빼 먹는 괘씸한 현대인은 아닐까? 아브락사스의 새 역시 껍질을 깨고 나오는 존재다. 날로 먹는 일은 아몬드 속처럼 달콤하지만, 누군가가 내 대신 껍질을 까는 수고를 했다는 사실은 꼭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