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Les gros poissons mangent les petits).
라틴어 유래(Piscem vorat maior minorem)를 가진 위 문장은 매우 오랫동안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렸다. 아마도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세계를 빗댄 속담 중 이보다 간결하고 뚜렷한 비유는 없을 것이다. 17세기 철학자 스피노자도 자연권을 이야기하면서 이 속담을 인용했고,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17세기 셰익스피어의 희곡 <페리클레스>에도 한 구절 등장한다.
둘째 어부 : 어르신, 바닷속에서 물고기들은 어찌 사는지 궁금합니다. 첫째 어부 : 뭐겠나, 사람들이 뭍에서 살듯 산다네. 큰 놈이 작은 놈을 잡아먹는 게지.
- 셰익스피어, <페리클레스> 중
한편, 16세기를 대표하는 플랑드르 화가 피터르 브뤼헐 아우더(Pieter Bruegel)의 1557년 동판화는 우리에게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브뤼헐,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1556), 반데르헤이덴(Merica) 동판작업(1557).
브뤼헐의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다>는 한때 그로테스크의 거장 히에로니무스 보쉬의 그림으로 둔갑되어 팔렸을 정도로 기괴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귀엽다는 반응도 많다. 동판화의 아래쪽에는 "작은 물고기들은 큰 물고기의 먹이이다(Grandibus exigui sunt pisces piscibus esca)"라는 라틴어가 적혀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그림 속에서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서 있는 것은 제일 커다란 생선이 아니다. 기묘하게 입을 벌린 물고기 사이에서 파티라도 여는 듯, 인간들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생선을 발라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인류는 현재 지구상에 군림하는 매정한 강자이다.
생태학자 최재천 교수는 종족 다원성과 상부상조를 언급하면서 자연의 법칙은 약육강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생태계에서도 약한 동물과 강한 동물이 공생하는 것이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인간은약자를벼랑으로밀어떨어뜨리는일을정당화하려고이런속담을퍼뜨린게아닐까? 의심스럽기 그지없다. 예나 지금이나 약육강식을 자연의 법칙이랍시고 그럴 듯이 둘러대며 윤리를 저버리는 사람들은 발에 채일 정도로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