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람의 수염을 깎으며 면도하는 법을 익힌다 (A barbe de fou, on apprend à raser(raire))
라틴어(=A barba stulti discit tonsor)로 오랜 세월 전해내려온속담이다.
속담을 처음 들으면 광인과 수염이 무슨 관계인가 싶지만, 다음과 같은 속설이 있다.
옛 로마의 이발사들은 면도 경험을 쌓고 싶어도 수염을 기른 사람을 수소문하여 연습하기가 힘들었는데, 어쩔 수 없이 동네의 광인들을 섭외하여 이발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즉 이 속담은 어느 한 분야에서 대가가 되려면 그만큼 노력과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아니 그럼 광인들의 인권은...).
플레시부레 성 당직실 천장화. 출처 : flickr Philippe_28
프랑스 맨에루아르(Maine-et-Loire) 지방에 위치한 15세기 성들 중 하나인 플레시부레 성(Château de Plessis-Bourré)을 방문한다면, 반갑게도 이 속담이 그려진 천장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연금술사이자 이 성의 주인이었던 장 부레(Jean Bourré)는 성 안의 당직실 천장 전체를 헤르메틱 상징화로 장식해 놓았다. 그 중 연금술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조언으로서 '시련'을 감내하라는 뜻으로 이 속담을 그려 놓았다. 그림 속 이발사가 광인 손님의 목 언저리에 칼을 대고 있어서, 속담을 몰랐다면 사람 죽이는 장면으로 오해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속담을 묘사한 그림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 신성로마제국에서 만들어진 놀이카드인 호펨터슈필(Hofämterspiel)덱에도 비슷한 모양의 카드 그림이 있다. 4번 카드인 '이발사(Der Barbier)'이다.
Hofämterspiel 4번 카드, 이발사(Der Barbier). 1455년 전후 제작. 출처 : 위키
칼 든 이발사를 바라보는 손님의 표정이 겁에 질린 것처럼 보이는 게 재미있다. 사실, 이 시절 프랑스 이발사들은 다른 사람을 칼로 찔러 피를 낼 수 있는 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었다.
제5조 : 일요일과 주요 공휴일 등에 사혈하거나 찌르는 행위 이외의 이발사 업무를 하면 아니 되며, 벌금형에 처한다(따라서 이발사는 피를 낼 권리가 있다고 인정된다). - 1371년 12월 샤를 5세 칙령
이발사들이 의사처럼 약을 팔고 수술을 집도했다는 얘기는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자르고 꿰매는 외과수술이 천한 것으로 간주되어 중세 대학의 귀족 의사들은 외과수술을 꺼렸고, 종교계도 그 유명한 "Ecclesia abhorret a sanguine(교회는 피를 혐오한다)" 금칙령으로 12세기부터 사제 의사들도 외과수술을 할 수 없게 되자 민간의 각종 수술은 칼 좀 다룰 줄 아는 이발사들의 몫이 되었다. 곧 다음 세기에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 형제회(Confrérie de Saint-Côme et de Saint-Damien)의 외과학교가 세워지는 등 이발외과의들은 점점 전문화되어 갔다. 근대 의술의 창시자앙브루와즈 파레(Ambroise Paré, 1510~1590) 또한 이발사의 견습생 신분에서 출발해 왕실 주치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18세기까지도 이발사들이 수술을 맡았었다니, 직업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하다.
참고자료 :
Marie Gatti. La querelle des barbiers, chirurgiens et médecins (XIIIe - XVIIIe siècles).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