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토와 불교, 종교적 혼재의 기회주의

by NAH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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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와 불교, 종교적 혼재의 기회주의






신들의 정치학


일본인들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일본 사회의 근본적 성격을 이해하는 열쇠다. 2022년 일본 문화청 통계에 따르면 신토 신자가 51.5%, 불교 신자가 43.4%로 집계된다. 놀라운 것은 이 두 수치를 합하면 거의 100%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즉, 대부분의 일본인이 동시에 신토와 불교를 믿는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런 종교적 '중복 가입'은 서구의 일신교 문화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기독교도가 동시에 이슬람교도일 수는 없듯이, 보통의 종교는 배타성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신년에 신사에 참배하고, 결혼식은 기독교식으로 치르며, 장례는 불교식으로 거행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런 '종교적 쇼핑'을 일본인들은 태연하게 해내며,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이런 종교적 무원칙이 단순한 관용이나 포용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철저히 계산된 기회주의의 산물이다. 필요에 따라 종교를 갈아타고, 상황에 맞춰 신을 바꿔가며, 그 순간에 가장 유리한 종교적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종교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이나 신앙심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종교적 기회주의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신토를 '국가신토'로 재편하여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종교적 근거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다양한 지역 신앙들의 느슨한 연합체에 불과했던 신토를 중앙집권적 국가 종교로 변모시킨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불교는 철저히 정치적으로 이용당했다. '신불분리령'을 통해 기존의 신불습합 전통을 파괴하면서도, 동시에 불교 교단을 국가신토 체제 하에 편입시켰다. 불교 승려들은 전쟁에 적극 협력했고,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했다. 자비와 불살생을 가르치는 종교가 살육과 정복의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습합이라는 기만


일본 종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신불습합(神仏習合)'이다. 6세기 불교가 전래된 이후 천 년 이상 지속된 이 현상은, 신토의 신들과 불교의 부처들이 서로 동일시되거나 융합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표면적으로는 종교 간 평화로운 공존과 창조적 융합의 사례로 여겨진다.


하지만 신불습합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그것은 평등한 융합이 아니라 위계적 통합이었다. 불교가 '본(本)'이고 신토가 '적(迹)'이라는 '본지수적설(本地垂迹說)'이 그 핵심이다. 즉, 신토의 신들은 불교 부처들이 일본에 현현(顯現)한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신토를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교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시킨 교묘한 논리였다.


이런 위계적 습합은 단순히 종교학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일본 사회 전반에 스며든 '포용의 가면을 쓴 지배'의 원형이다. 외래 문화나 사상을 받아들일 때 겉으로는 포용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기존 체제에 유리하도록 변형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서구 문물을 수용할 때도, 2차 대전 후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때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었다.


신불습합의 또 다른 문제는 그것이 종교적 진정성을 해체한다는 점이다. 신토든 불교든 고유한 교리와 수행법, 세계관을 가진 독립적 종교 체계다. 하지만 습합 과정에서 이런 고유성은 사라지고, 상황에 따라 조합 가능한 종교적 부품들로 해체된다. 그 결과 일본인들에게 종교는 진리 추구나 영적 성장의 수단이 아니라 현세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장례불교의 상업화


현대 일본 불교의 실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장례불교'다. 일본인의 90% 이상이 불교식 장례를 치르지만, 대부분은 평소에 불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직 죽음이라는 특별한 순간에만 불교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에도시대에 확립된 '단가제도(檀家制度)'가 있다. 모든 가구가 특정 불교 사찰에 소속되어 호적을 관리받던 이 제도는 메이지 유신 이후 공식적으로는 폐지되었지만, 장례 관행을 통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 제도가 순수한 종교적 동기가 아니라 행정적 편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의 불교 장례는 철저히 상업화된 산업이다. 평균 장례비용이 200만 엔(약 1800만 원)을 넘어서며, 이 중 상당 부분이 승려에게 지불하는 '보시(布施)'다. 승려들은 독경 시간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각각 다른 가격을 매긴다. 마치 택시 요금처럼 시간당 비용이 책정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계명(戒名)' 장사다. 죽은 자에게 부여하는 불교적 이름인 계명을 등급별로 나누어 판매한다. 가장 비싼 '원거사(院居士)'급은 100만 엔이 넘고, 가장 저렴한 '신사(信士)'급도 수십만 엔이다. 죽은 후에도 돈에 따라 차별받는 극도로 세속적인 시스템이다.


이런 상업화된 불교를 보면서도 일본인들은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불교의 본래 정신과 부합하는가? 중생의 고통을 구제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불교가 돈에 따라 사후 세계마저 차별하는 것을 석가모니가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신년 참배의 허상


매년 신정 기간, 일본 전국의 신사에는 수천만 명의 참배객이 몰린다. '하츠모데(初詣)'라고 불리는 신년 참배는 일본의 대표적인 종교 행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장관 뒤에 숨겨진 진실은 참으로 씁쓸하다.


우선 하츠모데 자체가 전통이 아니다. 에도시대까지만 해도 신년에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우지가미(氏神) 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재와 같은 대규모 하츠모데는 메이지시대 철도 회사들이 승객 유치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상업적 이벤트다. 메이지 신궁, 가와사키 다이시 등 유명 신사들은 모두 철도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참배객들의 행태를 보면 더욱 가관이다. 대부분은 신사의 제신(祭神)이 누군지도 모르고, 신토의 기본 교리조차 모른다. 그저 "올해는 좋은 일이 있기를" 하는 막연한 소망으로 참배할 뿐이다. 이것은 종교적 행위라기보다는 일종의 미신적 행동이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참배 후의 행동이다. 신사에서 나온 참배객들은 곧바로 근처의 절에 가서 불교식 기원을 하거나, 점집에서 운세를 본다. 심지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한 사람이 하루 안에 여러 종교를 오가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일본인들은 "종교에 관대하다"거나 "다원주의적이다"라고 자평한다. 하지만 실상은 어떤 종교에도 진정으로 헌신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종교는 그들에게 삶의 근본적 의미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서비스업체에 불과하다.




기회주의의 DNA


일본의 종교적 기회주의는 단순히 현대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 문화의 깊숙한 곳에 뿌리박힌 사고방식이다. 6세기 불교 전래 당시부터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났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불교 수용 과정을 보면, 소가씨와 모노노베씨 간의 대립이 나온다. 하지만 이 대립의 본질은 종교적 신념의 차이가 아니라 정치적 헤게모니 다툼이었다. 소가씨는 불교를 통해 백제 및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 했고, 모노노베씨는 기존 신토 세력의 기득권을 지키려 했다. 결국 소가씨가 승리하면서 불교가 공인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신토가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이런 패턴은 그 후 일본사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새로운 종교나 사상이 들어올 때마다 일본인들은 그것을 기존 체제와 대립시키지 않고 적절히 조합한다. 갈등을 피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존 권력 구조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자원을 흡수하는 교묘한 전략이다.


메이지 유신 때 서구 문물을 수용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화혼양재(和魂洋才)", 즉 일본 정신에 서구 기술을 접목한다는 슬로건이 그것이다. 겉으로는 전통을 보존하면서 근대화를 추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통을 근대화에 유리하도록 재편하는 것이었다.


이런 기회주의적 사고는 종교 영역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일본인들에게 종교적 일관성이나 논리적 정합성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효과"다. 사업이 잘되려면 이나리 신사에 가고, 학업 성취를 위해서는 텐진 신사에 간다. 병이 낫기를 바라면 불교 사찰에서 기원하고, 교통안전을 위해서는 자동차에 교통안전 부적을 붙인다.




방관적 신앙의 뿌리


일본의 종교적 기회주의는 사회 전반의 방관주의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진정한 종교적 신앙은 개인의 주체적 선택과 헌신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종교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이다.


태어나면 자동으로 신토 신자가 되고, 죽으면 자동으로 불교도가 된다. 결혼할 때는 기독교 의식을 치르지만, 그것도 개인의 신앙적 결단이 아니라 사회적 유행에 따른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일본인들에게 종교적 주체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수동적 종교 태도가 사회적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종교가 개인의 깊은 신념이나 가치관과 연결되지 않으니, 사회적 문제에 대한 종교적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실제로 일본의 종교 단체들은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해 극도로 소극적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도,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일본의 주요 종교 단체들은 뚜렷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생명의 존엄성이나 사회 정의 같은 종교의 핵심 가치가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침묵을 지킨 것이다. 이는 일본 종교계가 얼마나 세속권력에 예속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신종교의 번성과 몰락


일본 근현대사에서 특이한 현상 중 하나는 신종교(新宗教)의 번성이다. 천리교, 금광교, 창가학회, 옴진리교 등 수많은 신종교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들의 흥망성쇠를 보면 일본인들의 종교관을 더욱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신종교들의 공통점은 기존 종교의 복잡한 교리나 수행법을 단순화하여 즉각적인 현세 이익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믿으면 병이 낫는다", "이 기도를 하면 돈이 번다", "이 부적을 가지면 시험에 합격한다" 같은 식이다. 종교가 아니라 일종의 마케팅 상품에 가깝다.


문제는 이런 신종교들이 일시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는 사실이다. 창가학회는 한때 일본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1000만 명의 신도를 확보했다. 옴진리교도 교육 수준이 높은 젊은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는 일본인들이 얼마나 종교적 판단력이 부족한지를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신종교들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을 때의 반응이다.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테러 사건이나 통일교의 대규모 사기 사건이 터졌을 때도, 일본 사회는 종교 일반에 대한 근본적 성찰보다는 해당 교단만을 문제 삼았다. 종교적 기회주의가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는 외면한 채 개별 사건으로만 처리한 것이다.




무종교라는 종교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일본에서 가장 확산되고 있는 것은 '무종교'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종교에 대한 무관심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서구적 의미의 합리적 무신론은 아니다. 그것은 종교적 기회주의의 극단적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무종교는 종교를 완전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만 이용하겠다는 태도다. 평소에는 종교와 무관하게 살지만,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특별한 순간에는 종교적 의식을 활용한다. 이는 종교에 대한 진정한 거부가 아니라 더욱 철저한 도구화다.


이런 '편의적 무종교'가 확산되는 배경에는 일본 사회의 개인주의화와 물질주의화가 있다. 종교가 제공하던 공동체적 유대나 정신적 위안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종교를 포기하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런 상황은 일본 종교계에도 심각한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신도 수 감소로 많은 사찰과 신사들이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방의 작은 사찰들은 승계자를 찾지 못해 폐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종교적 기회주의가 결국 종교 자체를 해체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방관의 온상


일본의 종교적 혼재와 기회주의는 결국 사회 전반의 방관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종교가 개인의 삶에 진정한 의미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니, 사람들은 더욱 수동적이고 무기력해진다.


종교의 본래 기능 중 하나는 사회적 가치와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종교는 그런 역할을 상실한 지 오래다. 대신 현세적 이익 추구나 심리적 위안 정도의 기능만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종교적 성찰이나 대안 제시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종교적 기회주의가 다른 영역으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정치에서도 이념이나 신념보다는 실용성과 편의성이 우선시된다. 경제에서도 장기적 비전보다는 단기적 이익에 매몰된다. 교육에서도 진리 탐구보다는 입시 성공이 목표가 된다.


일본 사회의 방관주의는 이런 전방위적 기회주의의 결과다. 어떤 영역에서도 진정한 가치나 원칙을 찾을 수 없으니, 사람들은 점점 더 수동적이고 냉소적이 된다. 종교적 혼재는 단순히 종교 문제가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의 정신적 공허함을 상징하는 현상인 것이다.


일본이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종교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종교를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적 의미를 탐구하는 장으로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천 년 이상 축적된 기회주의적 관성을 뒤집는 일이기에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방관의 섬에 갇힌 일본인들이 진정한 정신적 각성을 이룰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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