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혼마네와 다테마에, 이중적 소통의 미학과 폐해

by NAH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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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마네와 다테마에, 이중적 소통의 미학과 폐해







일본인과 대화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묘한 답답함이 있다. 분명히 "좋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거부하는 것이고, "괜찮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불만이 가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의 세계다. 혼네는 마음 깊은 곳의 진심을, 다테마에는 사회적 관계를 고려한 표면적 표현을 의미한다. 서구인들은 이를 단순히 "위선"이나 "거짓말"로 치부하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이것이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적 소통 메커니즘이다.


2025년 현재에도 일본 사회 곳곳에서 작동하는 이 이중적 소통 방식은 단순한 문화적 특성을 넘어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구조를 규정하는 근본적 힘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Z세대 사이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포착되고 있다. 전통적인 다테마에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늘어나고, 더 직접적이고 솔직한 소통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이 이중적 소통 구조는 여전히 공고하다. 혼네와 다테마에는 일본인들이 천년 넘게 갈고닦은 생존의 기술이자, 동시에 그들을 침묵과 순응의 늪으로 빠뜨린 족쇄이기도 하다.




에도시대의 유산, 층위화된 진실의 탄생


혼네와 다테마에의 뿌리는 에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50년간 지속된 철저한 신분제 사회에서 일본인들은 각각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를 구사해야 했다. 다이묘 앞에서의 말, 동료 사무라이들 사이에서의 말, 농민들을 대할 때의 말이 모두 달랐다. 이때 형성된 것이 바로 "상황에 맞는 적절한 표현"이라는 개념이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에도 막부의 '산킨코타이(参勤交代)' 제도였다. 각 번의 다이묘들이 1년씩 에도에 머무르면서 쇼군을 알현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복잡한 예법과 언어 체계가 발달했다. 다이묘들은 자신의 진심을 직접 드러낼 수 없었다. 막부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공경스럽게 받들겠다"고 말해야 했고, 재정적 어려움이 있어도 "충성을 다하겠다"고 표현해야 했다.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진심을 숨기고 적절한 표현을 찾는 기술"이 발달한 것이다.


산킨쿄타이.png 산킨코타이(参勤交代)는 에도 막부 시대 일본의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행된 독특한 제도로, 다이묘(大名)들이 교대로 에도(도쿄)에 거주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이었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에 형성된 "간접 표현의 미학"이다. 하이쿠나 노(能) 같은 전통 예술에서도 직접적인 감정 표현보다는 은유와 암시를 통한 우회적 표현이 최고의 경지로 여겨졌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는 미의식이 자리 잡았던 것이다. 이는 단순한 예술적 기법을 넘어서 일상적 소통 방식으로까지 확산되었다.


에도시대의 상인들 사이에서 발달한 '상도덕'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직접적인 이익 추구보다는 장기적 신뢰 관계를 중시하는 상거래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체면을 지킨다"는 사고방식이 뿌리내렸다. 오늘날 일본 기업 문화의 근간이 되는 "겉으로는 화합, 속으로는 경쟁"이라는 이중 구조도 이때 형성된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시기에 발달한 "공기 읽기(空気読み)" 문화다. 명시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분위기나 상황을 파악해서 적절히 대응하는 능력이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졌다. 이는 현대 일본 사회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사회적 기술로 간주되고 있다. 회의에서 누군가가 반대 의견을 제시하면, 다른 참석자들은 그 사람의 표정과 어조, 심지어 침묵의 길이까지 읽어내어 진짜 의도를 파악하려 한다.




메이지 근대화와 서구 문물의 충돌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혼네와 다테마에의 구조는 더욱 복잡해졌다. 표면적으로는 "문명개화"를 외치며 서구식 근대화를 추진했지만, 내면적으로는 전통적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고수했다. 이때 형성된 것이 바로 "서구적 다테마에, 일본적 혼네"라는 새로운 이중 구조였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메이지 헌법의 제정 과정이다. 겉으로는 독일 헌법을 모델로 한 근대적 입헌군주제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천황의 신성불가침성을 강화하는 전통적 권위주의를 강화했다. 이토 히로부미 같은 메이지 원훈들은 서구 시찰을 통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학습했지만, 이를 일본에 도입할 때는 철저히 일본적 맥락으로 변형시켰다. "민권(民權)"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지만 그 실질적 내용은 "신민의 충성"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교육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1872년 학제 공포로 서구식 근대 교육을 도입했지만, 1890년 교육칙어를 통해서는 유교적 충효 사상을 강조했다. 학생들은 서구의 과학기술과 지식을 배우면서도 동시에 "충군애국"의 정신을 체화해야 했다. 이는 지식의 다테마에와 정신의 혼네라는 새로운 분열을 만들어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에 형성된 "국제적 다테마에"와 "국내적 혼네"의 구조다. 서구 열강과의 외교에서는 "문명국" 일본의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불평등 조약 개정을 위해 서구식 사교 파티를 열고, 서구식 복장을 착용하고, 심지어 서구식 건축물까지 지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전통적 위계질서와 권위주의가 지배했다.


이런 이중 구조는 일본의 "후발 근대화"라는 특수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서구 열강에 대해서는 "따라잡기"를 해야 했지만, 아시아 주변국들에 대해서는 "앞서가기"를 과시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소통 방식이 더욱 정교해졌다.


메이지 시대에 등장한 신문과 잡지 등 근대적 미디어도 이런 이중적 소통 구조를 강화했다. 공식적인 정부 발표와 실제 민심 사이의 간극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행간을 읽는" 능력을 더욱 발달시켜야 했다. 검열과 탄압이 심해질수록 우회적이고 암시적인 표현 방식이 발달했고, 이는 현대 일본의 소통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후 민주주의의 표면과 권위주의의 심층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이 경험한 민주화 과정에서 혼네와 다테마에의 구조는 또 다른 차원으로 진화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지만, 실제 사회 운영은 여전히 전통적 권위주의와 집단주의에 의존했다. 이때 형성된 것이 바로 "민주적 다테마에, 권위주의적 혼네"라는 전후 일본의 독특한 정치 문화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47년 평화헌법의 제정과 그 이후의 해석 변경 과정이다. 헌법 9조는 "전쟁 포기"와 "군대 불보유"를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위대라는 사실상의 군대를 창설하고 미일동맹을 통해 군사 대국화의 길을 걸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치인들은 "자위는 전쟁이 아니다",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다"라는 궤변을 통해 헌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워나갔다.


교육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47년 교육기본법은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국민 육성"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여전히 권위주의적 위계질서가 지배했다. 학생들은 표면적으로는 "개성 존중"과 "자유로운 사고"를 교육받았지만, 실제로는 "조화"와 "협조"라는 이름으로 획일성을 강요받았다.


정치 분야에서 가장 정교하게 발달한 것은 "합의적 다테마에"와 "파벌적 혼네"의 이중 구조였다. 자민당 내에서는 공식적으로 "당론 통일"과 "집단 지도체제"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각 파벌 간의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당대회에서는 만장일치로 총재를 선출하는 모습을 연출했지만, 그 이면에서는 금권과 인맥을 동원한 복잡한 거래가 이루어졌다.


경제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일본은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관료 주도의 계획경제적 성격이 강했다. 기업들은 표면적으로는 "자유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업계 단체와 관료들의 "행정지도"를 통해 조정된 질서 속에서 움직였다. 이른바 "일본주식회사"라고 불린 시스템의 핵심에는 바로 이런 이중적 소통 구조가 자리하고 있었다.




공기 읽기라는 강박, 침묵의 카르텔


현대 일본 사회에는 '쿠키오 요무(空気を読む)', 즉 '공기를 읽는다'는 독특한 표현이 있다.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나 상황을 파악해서 적절히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쿠키 요메나이(空気読めない)', 즉 '공기를 못 읽는다'는 것은 일본에서 가장 치명적인 비판 중 하나다. 이는 단순한 눈치 없음을 넘어서 사회적 배제의 근거가 된다.


이 '공기 읽기' 문화는 표면적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조화로운 관계 유지를 위한 것처럼 포장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의도를 관철시키면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교묘한 장치다. 명확한 지시나 요구를 하지 않고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고, 문제가 생기면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발뺄 수 있다.


직장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상사가 직접 "야근을 하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내일까지 이 일을 끝내야 하는데..."하고 중얼거리면 부하 직원은 당연히 밤새 일해야 한다고 이해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공기를 못 읽는' 문제적 직원으로 낙인찍힌다. 이런 방식으로 과로와 착취가 '자발적'인 것처럼 포장된다.


더욱 교묘한 것은 이런 '공기'가 집단적으로 조작된다는 점이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은밀하게 방향을 설정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 '분위기'를 읽어서 자동적으로 따라간다. 아무도 명시적으로 지시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침묵의 카르텔'이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특정 학생을 미워한다는 '공기'가 조성되면, 다른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그 학생을 따돌리기 시작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명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분위기'를 읽어서 행동한다. 그 결과 '이지메(いじめ)' 같은 집단 괴롭힘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한다.

이런 '공기 읽기' 문화는 개인의 자율성과 비판적 사고를 철저히 억압한다. 항상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다수의 분위기에 맞춰야 하니, 독립적인 판단이나 창의적 발상이 설 자리가 없다. 그 결과 일본 사회는 점점 더 획일화되고 경직된다.




현대 정치와 기업 문화의 이중성


2025년 현재 일본 정치에서 혼네와 다테마에의 구조는 더욱 정교하고 복잡한 형태로 진화했다. 정치인들은 공개석상에서는 "국민을 위한 정치",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파벌의 이익과 개인적 야망을 추구한다. 이런 이중성은 단순한 위선을 넘어서 하나의 정교한 시스템이 되었다.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의 "듣는 정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취임 이후 줄곧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여전히 자민당 내 보수 세력과 관료들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방위비 증액, 원전 정책, 헌법 개정 등 핵심 의제들에서 보여준 그의 행보는 선거 공약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치자금 문제를 다루는 방식이다. 2023년 자민당 파벌의 정치자금 파티 수입 과소 기재 문제가 불거졌을 때, 정치인들은 "투명성 제고"와 "정치 개혁"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데 급급했다. "몰랐다", "비서가 했다", "관례를 따랐을 뿐"이라는 다테마에 뒤에는 "어차피 국민들은 곧 잊어버릴 것"이라는 혼네가 숨어 있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사례는 더욱 극명하다. 그는 공개적으로는 "아름다운 나라 일본"과 "전후 체제 탈각"을 외쳤지만, 실제로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중국과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평화헌법 수호"를 다테마에로 내세우면서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안보법제를 통과시켰다. 이런 이중성은 그의 정치적 DNA에 깊숙이 새겨진 기시 가문의 정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국회 운영에서도 혼네와 다테마에의 구조는 여실히 드러난다. 야당은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다. 여당은 야당의 질의에 성실히 답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핵심을 피해가며 시간을 끈다. 이런 의례적 대립은 국민들에게는 "민주적 토론"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보호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2002270842101020_w.jpg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2020.02)


일본 기업 문화에서도 마찬가지다. 회의에서는 공식적인 토론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네마와시(根回し)"라고 불리는 사전 조율 과정을 통해 주요 참석자들의 동의를 미리 확보한 후, 회의에서는 그것을 공식화하는 의례를 거친다. 회의 참석자들은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정해진 시나리오를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


"혼가케 다메(本格的にはダメ)"라는 표현도 흥미롭다. 직장 상사가 부하에게 "이 일을 맡아보겠나?"라고 물으면, 부하는 겉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답한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는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정말로 할 수 없다면 "검토해보겠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이런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읽어내는 것이 일본 직장에서 생존하는 핵심 기술이다.


승진과 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사는 부하에게 "자네는 능력이 뛰어나니까 더 큰 책임을 맡아주게"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실패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다. 부하는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답하지만, 속으로는 "이번에도 험한 일을 떠맡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책임 회피의 완벽한 시스템


혼네와 다테마에의 분리는 일본 사회에 완벽한 책임 회피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모든 것이 암시와 분위기로 이루어지다 보니 구체적인 책임 소재를 찾기가 어렵다. 문제가 발생해도 "그런 뜻이 아니었다", "오해였다"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전쟁 결정 과정이 대표적인 예다. 천황도, 내각도, 군부도 아무도 명확하게 전쟁을 결정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분위기'와 '흐름'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 결과 패전 후에도 구체적인 전쟁 책임자를 찾을 수 없었고, 진정한 반성이나 사과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나 각종 기업 스캔들이 터져도 구체적인 책임자를 찾기 어렵다. 모든 결정이 집단적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합의'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소수의 권력자들이 '공기'를 조성하고 나머지는 그것을 '읽어서' 따라간 것에 불과하다.


이런 책임 회피 문화는 사회 전체의 발전을 저해한다. 실패에서 배우고 개선하려면 구체적인 원인 분석과 책임 규명이 필요한데, 모든 것을 '분위기' 탓으로 돌려버리면 진전이 없다. 같은 실수가 반복될 뿐이다.


특히 정치 영역에서 이런 현상은 심각하다. 정치인들은 항상 애매한 표현을 쓰고, 구체적인 공약이나 정책을 명시하기를 피한다. 선거 때는 듣기 좋은 말만 하다가 당선 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거나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발뺀다. 유권자들도 이런 패턴에 익숙해져서 정치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면무도회가 된 일상, 진정성의 상실


혼네와 다테마에의 분리는 일본인들의 일상을 거대한 가면무도회로 만들어놓았다. 모든 사람이 상황에 따라 다른 가면을 쓰고, 진짜 모습은 철저히 숨긴다. 직장에서는 열성적인 직원, 가정에서는 모범적인 가장, 친구들 앞에서는 유쾌한 동료의 가면을 쓰지만, 그 어느 것도 진짜 자신은 아니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런 현상은 극에 달한다. 회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찬성하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그 결정에 확신을 갖지 못한다. '이의 없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진심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시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일본인들은 점차 자신의 진짜 감정이나 생각이 무엇인지 모르게 된다. 너무 오랫동안 가면을 쓰고 살다 보니 가면과 진짜 얼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체성 혼란'이 사회 전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연애나 결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인들은 연인이나 배우자에게조차 진심을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한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같은 감정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담스럽다. 그 결과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도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진정성의 상실은 창의성과 혁신능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진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이 형식적이고 관례적으로 처리되다 보니 새로운 시도나 도전이 사라진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 동안 혁신에서 뒤처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통 단절이 만든 방관 사회


혼네와 다테마에의 분리가 만들어낸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진정한 소통의 단절이다. 모든 사람이 가면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는 진솔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표면적으로는 대화를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따로 놀고 있다.


이런 소통 단절은 사회적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서로 진심을 나누지 못하니 공감이나 결속도 어렵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 사회와는 다른 의미에서 일본은 극도로 개인화된 사회가 되었다. 겉으로는 집단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각자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사회 문제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진정한 소통이 없으니 문제 의식을 공유하거나 해결책을 모색하기 어렵다. 모든 사람이 "다른 누군가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방관한다. 그 결과 심각한 사회 문제들이 방치되거나 악화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일본 사회의 반응이 대표적인 예다. 체르노빌에 버금가는 대참사였지만 일본인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조용했다. 정부와 도쿄전력의 발표를 그대로 믿고 순응할 뿐, 진상 규명이나 책임 추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미약했다. 이는 평소 진정한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이 위기 상황에서도 수동적 태도를 보인 결과다.


정치 참여도 마찬가지다.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특히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 혐오가 아니라 진정한 소통 경험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솔한 대화나 토론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정치적 참여에 나설 리 없다.




Z세대의 반란과 변화의 조짐


그런데 최근 일본의 Z세대 사이에서는 전통적인 혼네와 다테마에 문화에 대한 반발이 나타나고 있다. 201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세계와 직접 소통하며 자라났고, 전통적인 일본식 소통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메이와쿠(迷惑) 거부"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일본 사회에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졌는데, 젊은 세대들은 이를 "자기 억압"이라고 비판한다. 그들은 "남을 배려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자신을 위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


유튜브나 틱톡 같은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소통 방식도 전통적인 일본 문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들은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표현을 주저하지 않으며,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제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힌다. 이는 기성세대에게는 "버릇없다"거나 "예의가 없다"고 비춰지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솔직하다"거나 "용감하다"고 평가받는다.


직장 문화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젊은 직장인들은 회식 자리에서 상사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술을 마시거나 시간을 보내는 것을 거부한다. "노미니케이션(飲みニケーション, 술을 마시며 하는 소통)"이라는 전통적인 직장 문화에 대해 "개인 시간 침해"라고 비판한다. 또한 무의미한 회의나 형식적인 보고서 작성에 대해서도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개선을 요구한다.


교육 현장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젊은 교사들은 전통적인 "선생님은 항상 옳다"는 권위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학생들과 더 평등한 관계를 추구한다. 학생들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이해가 안 되면 솔직하게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일본 사회 전체를 바꾸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주류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혼네와 다테마에의 소통 방식이 지배적이고, 젊은 세대도 사회에 진출하면서 점차 기존 문화에 적응해가고 있다. 특히 대기업이나 관공서 같은 보수적 조직에서는 변화의 속도가 매우 느리다.


더욱이 Z세대의 반발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60년대 학생운동, 1980년대 신인류 문화, 2000년대 사토리 세대 등 매 세대마다 기성문화에 대한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시스템에 흡수되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천년을 이어온 이중적 소통의 미학은 일본인들에게 생존의 지혜이자 창조의 원천이었다. 에도시대의 예법에서 시작되어 메이지의 근대화, 전후의 민주화를 거치면서 더욱 정교해진 이 소통 방식은 일본 사회의 안정과 조화를 유지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작동해왔다. 하지만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것은 때로는 소통의 장애물이 되고, 혁신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이중적 소통 구조가 일본 사회에 가져다준 것은 표면적 조화와 안정이었지만, 동시에 진정한 소통의 단절과 책임 회피의 시스템이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가면무도회 같은 일상 속에서 진정성은 상실되고, 창의성은 억압되며, 사회적 연대감은 약화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침묵과 순응의 방관 사회가 되어버렸다.


방관의 섬에서 가장 발달한 것이 바로 "말하지 않고도 이해하는" 소통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얼마나 많은 진실이 묻혀버렸는지,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사라져버렸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Z세대의 반란이 이런 구조를 깨뜨릴 수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이중성으로 변화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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