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어떻게 대물림되는가? 이 질문에 일본만큼 명확한 답을 보여주는 나라는 없다. 800여 년 전 가마쿠라 막부의 호조씨(北条氏,ほうじょうし)로부터 시작된 권력의 세습 고리는 오늘날 아베 신조, 기시다 후미오, 고이즈미 신지로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정치 왕조의 사슬을 만들어냈다. 2025년 현재 일본 국회의원의 23.4%가 세습 정치인이고, 자민당으로 범위를 좁히면 그 비율은 40%에 육박한다. 1991년 이후 총리를 지낸 11명 중 9명이 정치 가문 출신이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일본 정치 시스템 자체가 세습을 위해 설계된 결과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세습 정치가 예외적 현상이라면, 일본에서는 그것이 규칙이다. 영국 하원의 세습률이 7.2%, 프랑스 하원이 4.8%인 것과 비교하면 일본의 현실은 충격적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세습 정치가 민주화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는 점이다. 메이지 시대의 번벌 정치, 전전 시대의 원로 정치를 거쳐 전후 민주주의 시대에 오히려 세습 정치가 제도화되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새로운 형태의 과두제가 탄생한 것이다.
일본 정치 세습의 원형은 가마쿠라 막부 시대 호조씨의 싯켄(執權) 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 1,203년부터 1,333년까지 130년간 16대에 걸쳐 싯켄(執權)을 세습한 호조씨는 명목상의 권력자인 쇼군 뒤에서 실질적 권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쇼군이라는 타이틀을 직접 갖지 않으면서도 모든 정치적 결정을 좌우했다. 이는 현대 일본 정치에서 '총재'나 '당수'라는 직책을 통해 실권을 행사하는 세습 정치인들의 행태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호조씨의 권력 장악 과정을 보면 현대 일본 정치 세습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 호조 도키마사는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장인이라는 혈연 관계를 바탕으로 막부 내에서 발언권을 확보했다. 요리토모 사후에는 딸 마사코(政子)가 '아마 쇼군(尼将軍)'이라 불리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아들 요시토키가 제2대 싯켄이 되어 권력을 공고히 했다. 이후 호조씨는 혼인 정책을 통해 다른 유력 가문들과 연합하고, 라이벌 가문들을 제거하며 권력을 독점해나갔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호조씨가 '조큐의 난(1221)'을 통해 조정의 도전을 물리치며 무사 정권의 우위를 확정했다는 것이다. 고토바 상황이 막부를 타도하려 했을 때, 호조 요시토키는 "조정이라도 부당한 명령은 따를 수 없다"며 무력으로 대응했다. 이는 현대 일본에서 세습 정치인들이 관료제와 사법부에 대해 갖는 우월적 지위와 유사하다. 그들은 '선출직'이라는 민주적 정당성을 무기로 다른 권력 기관들을 압도한다.
호조씨의 몰락 과정도 의미심장하다. 14세기 초 몽골 침입(元寇)의 여파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고, 고케닌(御家人) 계층의 불만이 누적되면서 호조씨에 대한 저항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때도 권력은 아시카가씨라는 또 다른 무사 가문으로 이전되었을 뿐, 세습 정치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았다. 이후 무로마치 막부의 아시카가씨, 에도 막부의 도쿠가와씨로 이어지는 세습 권력의 연쇄가 시작되었다. 권력의 주체는 바뀌었지만, 세습이라는 권력 승계 방식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치에는 새로운 형태의 세습 구조가 등장했다. 사쓰마, 조슈, 토사, 히젠 등 유신에 공헌한 번벌 출신들이 '원훈(元勲)'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권력을 독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노우에 가오루, 기도 다카요시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서구식 근대 국가를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집중시켰고, 그 권력을 자신들의 후손에게 물려주었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 가문의 사례는 흥미롭다. 이토는 4차례 총리를 역임하며 메이지 헌법 제정을 주도했지만, 정작 자신의 후손들을 위한 정치적 기반 마련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의 양아들 이토 분키치는 외무차관과 추밀원 의장을 역임했고, 손자 이토 히로부미(동명이인)는 전전 시대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비록 전후 민주화 과정에서 이토 가문은 몰락했지만, 그들이 만든 정치 시스템과 인맥은 다른 형태로 계승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구축한 '야마가타 계보'다. 야마가타는 단순히 개인적 권력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군부와 관료제를 통해 장기적인 지배 체제를 구축했다. 그가 육성한 인재들인 가쓰라 다로, 데라우치 마사타케, 다나카 기이치 등은 모두 총리를 역임했다. 이들은 야마가타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며 각자의 정치 가문을 형성해나갔다. 현재까지도 일본 정치에서 '군부 출신' 또는 '관료 출신' 정치인들이 보이는 보수적 성향과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은 야마가타 계보의 DNA가 남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원훈 가문들의 또 다른 특징은 재벌과의 밀착이었다.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토모 등 대재벌들은 정치 후원을 통해 특혜를 받았고, 정치인들은 재벌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권력 기반을 구축했다. 이런 정재계 유착 구조는 전후 시대에도 이어져 현재의 '정치자금 파티' 문화로 발전했다. 세습 정치인들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런 역사적 연원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세습 정치는 민주화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 1955년 보수 합동으로 탄생한 자민당은 '55년 체제'라는 장기 집권 구조를 만들어냈고, 이 과정에서 세습 정치가 제도화되었다. 전전 시대의 정치인들이 공직추방에서 풀려나면서 복권되었고, 이들이 구축한 지역 기반과 인맥을 자녀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 시기 가장 중요한 변화는 '중선거구제'의 도입이었다. 한 선거구에서 3-5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이 제도는 같은 정당 후보들 간의 경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정책보다는 개인적 인지도와 조직력이 당선의 핵심 요소가 되었고, 이는 세습 정치인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간판'을 물려받은 후보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것이다.
'고엔카이(後援會)' 시스템도 세습 정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제도였다. 각 정치인들은 자신만의 후원회를 조직해 지역 유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 후원회는 선거 때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각종 행사와 모임을 통해 유권자들과 접촉했다. 문제는 이런 후원회를 새롭게 구축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점이었다. 반면 세습 후보들은 기존 후원회를 그대로 물려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출발선 우위를 갖게 되었다.
55년 체제 하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정치 왕조가 기시-아베 가문이다. 기시 노부스케는 전전 시대 상공차관과 만주국 실업부 차장을 역임한 관료 출신으로, 전후 A급 전범 혐의로 수감되었다가 냉전 구조 속에서 석방되어 총리까지 올랐다. 그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는 할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아베는 단순히 기시의 혈통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라, 그의 정치 철학과 인맥, 심지어 헌법 개정에 대한 집념까지 그대로 계승했다.
또 다른 사례는 하토야마 가문이다. 하토야마 이치로(초대 총리), 하토야마 위이치로(외무대신), 하토야마 유키오(총리)로 이어지는 4대 세습은 일본 정치사의 상징이 되었다. 이들은 단순한 정치 가문을 넘어서 브리지스톤 타이어 창업 가문과의 혼맥을 통해 정재계를 아우르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하토야마 유키오의 총리 재임 기간은 짧았지만, 가문의 정치적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2025년 현재 일본 정치는 몇 개의 거대한 정치 왕조들이 지배하고 있다. 자민당 의원의 40%가 세습 정치인이라는 통계는 이들 왕조의 위력을 보여준다. 특히 총리직을 놓고 벌이는 경쟁은 사실상 몇 개 가문들 간의 왕위 계승전과 다름없다.
고이즈미 가문의 부상은 세습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아버지 고이즈미 준야의 지반을 물려받아 총리가 되었고, 그의 아들 고이즈미 신지로는 '세습 3세'로서 차세대 총리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흥미롭게도 고이즈미 신지로는 '세습'에 대한 비판을 의식해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아버지가 구축한 정치적 자산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는 현대 세습 정치인들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겉으로는 개혁을 외치지만 본질적으로는 기존 시스템에 안주하는 것이다.
아소 다로 가문도 독특한 사례다. 아소는 시멘트 재벌 아소 그룹의 후계자로서 경제적 기반과 정치적 권력을 동시에 물려받았다. 그의 조부 아소 다키치는 전전 시대 총리를 역임했고, 아소 다로 자신도 총리와 부총리를 오가며 자민당 내에서 핵심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의 여동생 아소 노부코가 일왕가와 혼맥을 맺어 황족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정치, 경제, 황실을 아우르는 일본 지배층의 폐쇄적 네트워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 역시 3세 세습 정치인이다. 할아버지 기시다 마사타로가 중의원 의원이었고, 아버지 기시다 분베이도 통상산업성 관료 출신으로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시다는 "듣는 정치"를 표방하며 소프트한 이미지를 구축했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엘리트 세습 정치인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가 추진하는 정책들도 자민당의 기존 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들 정치 왕조의 공통점은 단순한 혈연 승계를 넘어서 정치적 DNA까지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보수적 가치관, 미일동맹 중시, 개헌 의지, 경제 우선주의 등은 세대를 거쳐 계승되는 가문의 정치 철학이다. 이는 정책의 연속성이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사회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일본의 세습 정치가 이토록 공고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선거 시스템, 정치 문화, 사회 구조가 모두 세습에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선거 제도를 보자. 1994년 소선거구제로 개편된 이후에도 세습 정치인들의 우위는 계속되고 있다. 오히려 소선거구제는 '승자 독식' 구조를 강화해 기존 정치인들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은 '3반(三バン)' 시스템이다. '간판(看板)', '지반(地盤)', '가방(カバン)'으로 불리는 이 시스템에서 세습 정치인들은 압도적 우위를 갖는다. '간판'은 정치적 브랜드와 인지도를 의미하는데, 세습 정치인들은 태생적으로 이를 물려받는다. 아베 신조가 처음 출마했을 때도 "기시 노부스케의 손자"라는 타이틀이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지반'은 지역 조직과 후원회 네트워크인데, 이 역시 그대로 상속된다. 수십 년간 구축된 인적 네트워크를 하루아침에 만들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가방', 즉 정치자금도 세습 정치인들이 유리하다. 일본에서는 정치자금 파티가 합법화되어 있어 거액의 후원금 모집이 가능하다. 세습 정치인들은 아버지 세대부터 구축된 후원 기업들과의 관계를 활용할 수 있다. 2022년 기준으로 아베 신조의 연간 정치자금은 약 3억 엔에 달했는데, 이 중 상당 부분이 세습된 후원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된 것이다.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본 언론은 정치인의 혈통과 가문사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명문 정치 가문의 후계자"라는 식으로 긍정적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고, 세습 자체를 문제 삼는 비판적 보도는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언론사들 역시 기성 정치인들과의 기득권 카르텔에 편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 시스템도 세습 정치를 뒷받침한다. 도쿄대, 게이오대, 와세다대 등 명문대학 출신들이 정치권을 독점하고 있는데, 이들 대학은 사실상 세습 엘리트들의 재생산 기관 역할을 한다. 정치인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최고의 교육 환경에서 자라며, 정치에 필요한 인맥과 교양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이는 일반 가정 출신들이 넘기 어려운 진입 장벽을 형성한다.
일본의 세습 정치가 낳는 가장 치명적인 결과는 능력주의의 완전한 파괴다. 혈통이 실력을 압도하는 사회에서 무능력한 정치인들이 국가의 중요한 결정권을 쥐게 되는 것은 필연적 귀결이다. 대부분의 2세, 3세 정치인들을 보라.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아버지의 비서실로 들어가 정치 수업을 받는다. 일반 사회에서의 경험, 현실과의 치열한 부딪힘, 서민들과의 진정한 교감 같은 것들은 애초에 그들의 인생 설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온실 속 화초들에게 국민의 삶을 책임지라고 맡기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이들의 정책적 경직성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세습 정치인들은 마치 유전자에 새겨진 것처럼 가문의 정치적 DNA를 그대로 계승한다. 아베 신조가 보여준 헌법 개정에 대한 거의 종교적 집념은 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로부터 물려받은 숙원이었고, 하토야마 유키오의 친중 성향 역시 가문 대대로 이어진 정치적 유산이었다. 문제는 이런 고착화된 사고가 급변하는 시대적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디지털 혁명, 기후 위기, 젠더 혁명 같은 21세기의 새로운 의제들 앞에서 그들이 보이는 당황스러운 모습은 바로 이 때문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부패마저 대물림된다는 사실이다. 정치자금 파티라는 이름의 합법적 매수, 건설업체와의 유착, 관료들과의 은밀한 거래 등은 마치 가업처럼 아버지에서 아들로, 아들에서 손자로 전수된다. 아베 신조를 둘러싼 '모리토모', '가케이', '사쿠라를 보는 모임' 등 일련의 스캔들들은 그 개인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기시 가문 3대에 걸쳐 축적된 정경유착의 결정체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부패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자란 이들에게 청렴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귀결되는 지점은 정치 혁신의 완전한 차단이다. 세습 정치인들에게 기존 시스템은 파괴의 대상이 아니라 보존해야 할 유산이다. 그들은 그 시스템 덕분에 권력을 얻었고, 그 시스템을 통해 자신들의 후손에게 권력을 물려줄 계획을 세우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진정한 의미의 정치 개혁을 추진할 리 만무하다. 오히려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을 막고, 참신한 정치 신인들의 진입을 차단하는 것이 그들의 본능적 이해관계다. 이렇게 해서 일본 정치는 점점 더 경직되고, 역동성을 잃어가며, 국민들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세습 정치는 민주주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국민이 대표를 선택하는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만, 실질적으로는 몇 개 가문들 간의 세력 다툼에 불과한 상황이 되었다. 이를 '선거 왕정제'라고 부르는 학자들도 있다. 왕권은 세습되지만, 그 정당성을 선거를 통해 확인받는 시스템이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다. 누구를 뽑든 결국 세습 정치인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일 뿐, 근본적인 정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는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무관심과 체념을 낳고 있다. 2021년 중의원 선거 투표율이 55.93%에 그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세습 정치의 또 다른 문제는 사회 이동성의 차단이다. 정치는 사회적 신분 상승의 주요 경로 중 하나인데, 이것이 특정 가문들에 의해 독점되면서 일반인들에게는 사실상 문이 닫혀 있다. 이는 일본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능력 있는 인재들이 정치보다는 경제계나 학계로 빠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세습 정치인들이 만드는 '내부자 카르텔'이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정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계층의 이익을 공유한다. 자민당과 입헌민주당의 세습 정치인들도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세습 정치 시스템 자체를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경쟁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800여 년 전 가마쿠라의 호조씨가 보여준 권력 세습의 원형은 오늘날까지도 일본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21세기 민주주의 시대에도 혈통이 능력보다 우선시되고, 가문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보다 앞서는 현실. 이것이야말로 일본이 진정한 의미의 시민사회로 발전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다. 권력의 세습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한, 일본은 영원히 '방관의 섬'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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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쿠자와 관료, 음지와 양지의 공생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