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민폐냐, 방관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일본 사회 속, 관계의 거리에서 벌어진 사건에 성찰의 거울을 비추다

by NAHDAN

방관적 합리주의의 덫


2024년 7월, 도쿄발에서 아오모리 방면으로 향하던 장거리 열차 안에서 한 중년 남성이 객차 좌석에 쓰러진 채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 순간 객차에 타고 있던 수십 명의 승객들은 마치 연극 무대의 방청객처럼 무심했다.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 확인하지 않았고, 경악의 소리조차 없었다. 대부분은 그가 단순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줄로만 여겼다.


그렇게 그의 죽음은 650킬로미터 이상, 열차가 도호쿠 지역까지 내달린 뒤에야, 무려 12시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확인되었다. 공적 공간 한복판에서 생명이 꺼져 갔지만, 그 시간 동안 열차 안은 침묵 속의 일상으로 매끄럽게 이어졌다.


2024년 7월, Japan Today



또 다른 장면은 사이버 공간에서 전해진다. 미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의 한 이용자는 일본 체류 중 경험한 일을 이렇게 기록했다. “쓰러진 이를 바로 눈앞에 두고도,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며 시선을 외면했다.” 이 회상 속에는 현실의 긴급성이 곧바로 무효화되는 장면이 담겨 있다. 타인의 돌발적 위기는 곧장 개인의 심리적 부담으로 전환되고, 그 부담은 시선을 돌리거나 기계적 화면 몰입으로 상쇄된다. 응급 상황은 공동의 과제가 아니라 각자 피해야 할 불편으로만 처리되는 것이다.



이 두 장면은 일본 사회에 깊숙이 스며든 ‘무반응의 일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개인적 냉담함을 넘어선 구조적 습속이다. 공적 공간의 위기가 사적 사건으로 축소되고, 사회적 책임은 무관심의 층위 속으로 은폐된다. 위기에 직면했음에도 행동보다는 침묵을 선택하는 이 태도, 곧 ‘방관적 합리주의’는 일본 사회가 오랜 시간 길러온 집단적 습관이다. 생명마저도 질서의 표면을 흔들지 않도록 조용히 흡수하는 문화적 기제, 그것이야말로 ‘방관적 합리주의의 덫’이 보여주는 냉혹한 실체라 할 수 있다.


메이와쿠2.jpg 민폐가 싫어서 방관의 민폐에 빠지는 메이와쿠의 역설


이것이 바로 오늘날, 타인의 문제에 반응하는 일본 사회의 민낯이다. '메이와쿠(迷惑)', 즉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미명 하에 모든 것을 방관하는 사회. 누군가 위기에 처해도, 사회에 문제가 발생해도, 국가적 재앙이 닥쳐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며 시선을 돌리는 사회. 이것이 바로 내가 이 책에서 해부하고자 하는 '방관적 합리주의'의 실체다.




방관적 합리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개입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믿는 사고방식이다.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기는 태도다.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처세술이다. 표면적으로는 '분별 있는' 태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책임을 회피하고 현상유지에 안주하려는 소극적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이런 방관적 합리주의는 일본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파벌의 이익만 추구한다. 언론은 '공정보도'를 표방하면서도 권력에 대한 비판을 회피한다. 기업은 '혁신'을 외치면서도 기존 관행을 고수한다. 국민들은 '평화'를 원한다면서도 평화를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른 누군가의 몫이고, 자신은 그저 방관자로 남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방관적 합리주의야말로 현재 일본이 빠져있는 '잃어버린 30년'의 근본 원인이다. 1991년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진 것도, 정치가 만성적 무기력에 시달리는 것도, 사회 전반이 활력을 잃고 있는 것도 모두 이 방관적 합리주의 때문이다. 변화를 거부하고, 혁신을 두려워하며, 현상유지에만 매달린 결과가 바로 오늘의 일본인 것이다.




방관과 순응의 기원


그렇다면 이런 방관적 합리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그 뿌리는 깊다. 천년 이상 지속된 순응의 문화, 에도시대 250년간 완성된 신분제적 질서, 메이지 이후 위로부터의 근대화, 전후 민주주의의 피상적 이식까지. 일본인들은 줄곧 '위에서 내려오는 것에 순응하는' 것이 최선의 생존 전략이라고 학습해왔다. 스스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런 방관적 합리주의가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이중적 소통 구조와 결합하면서 더욱 교묘하고 은밀한 형태로 진화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사회를 위한다', '국민을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내 알 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이중성. 이런 이중성이 일상화되면서 일본 사회는 점점 더 불투명하고 책임감 없는 사회로 변해갔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2025년 현재, 일본의 방관적 합리주의는 단순히 일본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역사 문제에 대한 회피, 군사 대국화에 대한 묵인, 극우 세력의 부상에 대한 방관이 모두 이 방관적 합리주의의 산물이다. 일본인들이 '정치는 정치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이, 일본은 점점 더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일본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비슷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자조 속에 숨어 있는 체념과 무기력,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미래에 대한 절망, '갓수저'와 '흙수저'로 고착화되는 계급의식 등은 모두 방관적 합리주의의 한국적 변형이다. 일본의 현재가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찰의 거울 ㅣ 한ㆍ일 사회를 함께 바라보자


이 책은 일본에 대한 혐오나 상대적 우월감에 시작된 책이 아니다. 세부 내용의 선별과 견해의 전달 과정에서 이 점은 각별히 유의하고자 했다. 다만 분명한 목적은 인접 문화권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일본과 한국의 독자들에게 성찰의 거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관적 합리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정한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만들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을 동시에 추구하는 길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함께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러 측면에서 일본의 과거를 닮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 역시 빠르게 개인화되어 가고 있다. 불편한 일상이나 다툼, 서로 간에 이슈가 될 만한 문제들을 굳이 꺼내거나 공유하지 않으려 하고, 대신 ‘불편하지 않은 편안’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 편안함이야말로 공동체의 신경을 마비시키는 달콤한 진통제일 수 있다. 갈등을 두려워해 대화를 미루고, 불편을 피하려다 결국 공적 책임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일본이 보여준 ‘방관적 합리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이 점에서 일본 사회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도 불편한 거울이 된다.


앞으로 펼쳐질 30개의 장을 통해 우리는 일본 사회의 심층 구조를 해부하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아프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성숙한 시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로, 구경꾼이 아닌 주역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방관의 섬에서 벗어나는 길, 그 길을 향해 함께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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