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야쿠자와 관료, 음지와 양지의 공생구조

by NAH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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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와 관료, 음지와 양지의 공생구조




일본 사회를 이해하려면 표면 아래 숨겨진 이중구조를 보아야 한다. 양지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관료제가 질서정연하게 작동하고, 음지에서는 야쿠자라는 조직범죄가 준합법적 지위를 누리며 사회 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한다. 놀라운 것은 이 둘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은밀하고도 정교한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사실이다. 2024년 기준 야쿠자 조직원 수는 18,880명으로 1958년 통계 시작 이후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야마구치구미 6,900명, 스미요시카이 4,500명, 이나가와카이 3,400명으로 이루어진 3대 조직은 각각 하나의 기업집단에 버금가는 규모와 조직력을 자랑한다.


이들과 관료제의 관계는 단순한 범죄와 단속의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필요에 의한 상호부조, 위기 시의 협력, 그리고 이익 공유를 통한 공생의 관계다. 전후 일본 사회의 재건 과정에서 야쿠자는 "삼국인에 대항하는 조직"이라는 명분으로 경찰 및 지방정부와 협력했고, 1960년대 안보투쟁 시기에는 우익 세력의 폭력 조직 역할을 담당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는 아예 "합법화"까지 추진되었고,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건설 현장의 노숙자 동원이라는 현대적 형태의 협력이 이루어졌다. 이 모든 과정에서 관료들은 야쿠자를 단속의 대상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때로는 사회 통제의 도구이자 비공식 행정의 파트너로 활용해왔다.




전후 혼란기, 치안의 공백을 메운 사설 경찰


1945년 패전 이후 일본 사회는 완전한 무정부 상태에 빠져 있었다. 기존 치안 시스템은 붕괴되었고, 연합군 점령하에서 일본 경찰의 권한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 공백 상태에서 야쿠자 조직들은 급속히 세력을 확장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들은 단순한 범죄집단으로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지역사회의 "비공식 치안 담당자" 역할을 자처하며 나섰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1945-1950년 사이 벌어진 "삼국인 소동"에 대한 야쿠자들의 대응이었다.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 대만인들이 일으키는 각종 소요와 범죄에 대해 일본 경찰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자, 야쿠자 조직들이 나서서 이들과 대립했다. 이 과정에서 야쿠자들은 스스로를 "일본인을 보호하는 자경단"으로 포장했고, 지역 주민들과 심지어 경찰까지도 이들의 활동을 묵인하거나 심지어 은밀히 지원했다.


야마구치구미의 전신인 야마구치조가 고베 항만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항만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과 좌익 세력의 데모에 맞서 "반공 자경단" 역할을 한 것이다. 당시 고베 지역 경찰서장들은 야마구치조 간부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정보를 교환했고, 때로는 공식적인 감사장까지 전달했다. 이는 야쿠자와 관료제 간의 협력이 단순한 부패나 유착을 넘어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되었음을 보여준다.


Capture_2025_0920_233105.png 1980년, 야마구치구미 장례식에 참석하는 두목 다오카 카즈오(田岡一雄)와 간부들의 사진


스미요시카이의 경우는 더욱 노골적이었다. 도쿄 쓰키지 시장과 시부야, 신주쿠 일대에서 "시장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활동하면서 도쿄도청 관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특히 쓰키지 시장에서는 새벽 경매와 물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을 야쿠자들이 "중재"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도쿄도 공무원들은 이를 "민간 자율 조정"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야쿠자에게 위탁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나가와카이는 좀 더 정교한 방식을 택했다. 아타미와 하코네 같은 온천 관광지에서 "관광 질서 유지"를 담당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관광객들 사이의 분쟁, 여관업체들 간의 갈등, 택시 기사들의 영업권 다툼 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시즈오카현과 가나가와현의 관광 담당 공무원들은 이를 "지역 상생 모델"이라고 치켜세웠지만, 실상은 행정력의 한계를 야쿠자의 폭력으로 보완하는 시스템이었다.



코다마 요시오, 우익과 조직범죄의 결혼식 주례사


야쿠자와 관료제의 공생구조를 이해하려면 코다마 요시오(児玉誉士夫)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전후 일본 정치의 막후 실력자이자 야쿠자와 정치권을 연결하는 핵심 고리 역할을 했다. 전전 시대 중국 대륙에서 아편 밀매와 각종 공작 활동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코다마는 전후 A급 전범으로 수감되었다가 냉전 구조 속에서 석방되어 일본 정치계의 숨은 실력자로 부상했다.


19460326_kodama_yoshio.png 고다마 요시오( 児玉 誉士夫, 1911~ 1984) 1월 17일)는 일본의 극우 운동가이자 야쿠자 조직의 주요한 인물 중 하나이다.


코다마의 진짜 위력은 그가 구축한 네트워크에 있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같은 자민당 실력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야마구치구미, 스미요시카이, 이나가와카이 등 주요 야쿠자 조직들을 자신의 영향권 아래 두었다. 더 나아가 그는 경찰청, 법무성, 외무성 등 핵심 관료 조직에도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1960년 안보투쟁 당시 코다마의 역할은 상징적이다. 기시 노부스케 정권이 안보조약 개정을 둘러싼 격렬한 시위에 직면했을 때, 코다마는 "국가 비상사태"라는 명분으로 전국의 야쿠자 조직들을 동원해 "반공 자경단"을 조직했다. 이들은 학생 시위대와 노조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경찰은 이를 묵인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야쿠자들이 경찰서에서 곤봉과 헬멧을 지급받아 "민간 보조 치안대"로 활동하기도 했다.


코다마의 또 다른 걸작품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추진한 "야쿠자 합법화" 프로젝트였다. 그는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한 일본 정부가 야쿠자 조직을 "사회 불안 요소"로 간주하자, 오히려 이들을 "준합법적 사회단체"로 전환시키는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야쿠자 조직들을 "친목회", "상조회", "경비업체" 등의 형태로 등록하게 하고, 대신 정부의 "비공식 협력 파트너"로 활용하자는 것이었다.


이 계획은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실제로 많은 야쿠자 조직들이 올림픽을 전후해 표면적으로는 합법적 사업체로 전환했고, 정부는 이들을 "사회 질서 유지 협력 단체"로 인정했다. 1970년대까지 이어진 이 시스템은 야쿠자들에게는 "사회적 지위"를, 관료들에게는 "비공식 행정력"을 제공하는 윈윈 구조였다. 코다마는 이 과정에서 정치권과 관료제, 야쿠자 사이를 오가는 "번역자" 역할을 했고, 그 대가로 막대한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1980년대 버블 경제, 돈세탁의 황금기


198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는 야쿠자와 관료제의 공생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부동산 투기와 주식 조작이 횡행하는 가운데 야쿠자들은 "지하 금융업"의 주역으로 부상했고, 관료들은 이를 통제하기보다는 활용하는 쪽을 택했다. 특히 건설성(현 국토교통성)과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들은 야쿠자 조직들과 복잡한 이해관계를 형성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상계(地上屋)" 시스템이었다. 재개발 사업에서 기존 거주자들을 내쫓는 일을 야쿠자 조직들이 대행하는 것이다. 건설사들이 직접 나서면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야쿠자들이 "협상"을 통해 해결하면 모든 것이 깔끔해졌다. 건설성 관료들은 이를 "민간 갈등 조정 서비스"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공권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폭력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대장성과 야쿠자의 "돈세탁 협력" 구조였다. 1980년대 일본으로 유입된 막대한 외국 자본 중 상당 부분이 출처 불명의 검은돈이었지만, 대장성은 이를 묵인했다. 오히려 야쿠자 조직들을 통해 이런 자금을 "깨끗한 돈"으로 만드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야쿠자들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고, 수익을 세탁해서 다시 시장에 공급했다. 대장성 관료들은 이 과정에서 세수 증대와 경기 부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이 시기 야쿠자와 관료의 유착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조직적 차원으로 발전했다. 주요 야쿠자 보스들은 건설성, 대장성, 경찰청 등의 고위 관료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고, 서로의 자녀들을 고위직에 추천해주는 "인사 교류"까지 이루어졌다. 특히 경찰청 조직범죄과의 경우 야쿠자들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 대가로 단속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 공공연한 관례가 되었다.


버블이 붕괴된 1990년대 이후에도 이런 관계는 계속되었다. 오히려 불황으로 일반 기업들이 어려워지자 야쿠자들의 "지하 경제"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부실채권 정리, 기업 정리해고, 노조 무력화 등의 "더러운 일"들을 야쿠자들이 대행했고, 관료들은 이를 "시장 효율성 제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현대의 세련된 공생, 2020 도쿄 올림픽의 그림자


야쿠자와 관료제의 공생관계가 과거의 유물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은 이 관계가 어떻게 현대적 형태로 진화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8년 10월 일본 야쿠자가 올림픽 관련 건설 현장에서 노숙자들을 동원하고 임금을 착취한 사실이 국제적으로 폭로되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의 구조를 보면 야쿠자와 관료제의 현대적 공생 모델을 이해할 수 있다.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와 국토교통성은 건설 일정을 맞추기 위해 "비공식 노동력"이 필요했지만, 직접 나서서 불법 고용을 할 수는 없었다. 대신 하청업체들을 통해 야쿠자 조직과 연결되는 복잡한 구조를 만들었다. 야쿠자들은 도시 곳곳의 노숙자들을 "모집"해서 건설 현장에 공급했고, 이 과정에서 임금의 상당 부분을 수수료 명목으로 가져갔다.


관료들의 역할은 더욱 교묘했다. 후생노동성은 이런 불법 고용 관행을 알고 있었지만 "단속 인력 부족"을 이유로 방치했다. 법무성은 야쿠자들이 운영하는 "숙박업소"에 대한 허가를 느슨하게 처리했다. 경찰청은 노숙자들의 실종 신고에 대해 "자발적 이주"로 처리하며 수사를 기피했다. 각 부처가 자신의 담당 영역에서 "모르는 척"함으로써 전체적으로는 불법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 시스템의 세련된 점은 "직접적 접촉"을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처럼 관료와 야쿠자가 직접 만나서 거래하는 대신, 수많은 중간 단계를 거쳐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척"하면서도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건설사-하청업체-인력업체-야쿠자조직으로 이어지는 긴 사슬을 통해 책임을 분산시키고, 각 단계에서는 "합법적" 계약만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시스템이 올림픽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발견되었다. 임시 의료시설 건설, 격리시설 운영, 백신 접종소 관리 등에서 야쿠자 조직들이 "비공식 협력자"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후생노동성과 내각관방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시설 운영업체들과 야쿠자 조직 간의 연결고리는 계속 드러나고 있다.




시스템화된 부패, 제도 속으로 스며든 범죄


야쿠자와 관료제의 공생관계가 이토록 공고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개인적 부패를 넘어서 하나의 "시스템"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이 관계를 통해 얻는 이익이 명확하고, 따라서 이를 유지하려는 강력한 유인이 존재한다.


관료제 입장에서 야쿠자는 매우 유용한 "비공식 도구"다. 법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주고, 정치적 부담 없이 사회 통제를 가능하게 해준다. 특히 일본의 관료제는 "책임 회피"와 "완벽주의"를 특징으로 하는데, 야쿠자를 활용하면 실패했을 때의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민간이 알아서 해결한 일"이라고 주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야쿠자 입장에서 관료제와의 관계는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다. 단순한 범죄집단이 아니라 "사회 질서 유지에 협력하는 단체"라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이는 조직 운영에 엄청난 도움이 된다. 또한 관료들로부터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사업 확장에 유리하다.


Capture_2025_0920_233750.png 日 최대 폭력조직 야마구치파 분열…(출처 : 2015.09.22 한국일보 기사)


이 시스템의 가장 교묘한 점은 "상호 견제"를 통한 안정성 확보다. 야쿠자는 관료들의 비리 정보를 갖고 있고, 관료들은 야쿠자의 범죄 증거를 쥐고 있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배신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이는 마치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들 간의 "상호확증파괴(MAD)" 전략과 유사하다.


또한 이 시스템은 "세대 교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된다. 관료 사회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현실적 처세술"의 일환으로 야쿠자와의 관계 맺는 법을 전수한다. 야쿠자 조직에서도 젊은 조직원들에게 "관료들과의 협력"이 조직 발전의 핵심이라고 교육한다. 이렇게 해서 개인이 바뀌어도 시스템은 유지되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 야쿠자 조직원 수가 18,880명으로 감소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야쿠자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기보다는, 조직이 더욱 "효율화"되고 "전문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과거처럼 많은 인원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소수 정예로 조직을 운영하면서 관료제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음지와 양지가 만나는 곳, 그 경계선에서 일본의 진짜 권력이 탄생한다. 야쿠자와 관료의 공생구조는 일본 사회가 표면적 질서 아래 숨기고 있는 어둠의 진실이다. 이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일본은 진정한 의미의 법치국가도, 투명한 민주주의도 이룰 수 없다. 방관의 섬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바로 이들 음지의 권력자들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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