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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림 Apr 22. 2016

카르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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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멘이 호세의 손에 죽은 이유


카르멘은 적어도 성적 매력에 있어서 만큼은, 그러니까 남자를 유혹하는 능력에 있어서 만큼은 완벽 그 자체였다.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의심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성공확률에 있어서도, 그 가치에 있어서도. 자신이 원하는 남자라면 누구든 꼬실 수 있었고 그의 부와 지위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었다. 살아있는 마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호세를 만나기 전까진.


카르멘이 실수한 것은 호세를 꼬셔버린 것, 그 자체에 있다. 그러니까 그저 자신의 몸을 가지려는 남자가 아닌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남자를 꼬셔버린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자신을 탐하려고 했던 여느 남자와는 다른 호세만의 순수함에 대한 호기심이 작용을 했을 테고 거기에 자신은 호세의 포승줄로부터 벗어나야 했기에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했다. 간단한 일이었다. 늘 자신의 불리한 상황은 힘 좀 있는 남자를 꼬셔서 해결해버리면 되는 일이었기에 그건 카르멘의 가장 정석적이면서도 유일한 삶의 원칙인 것이다. 카르멘은 몰랐을 것이다.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세계, 즉 몸으로 남자들을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는 지상낙원의 세계, 그 밖의 더 험난하고 처절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세계 말이다. 이 사랑이라는 세계를 지닌 호세와의 충돌, 이 것이 카르멘이 부딪혀 날아가버린 새로운 세계였던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카르멘은 단 한순간도 호세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사실 정확히는 카르멘은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조차 몰랐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입에 품고 달려든 남자들은 수도 없이 많았겠으나 그것은 그저 카르멘을 정복하려는 욕망의 다른 말이었을 뿐이고,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는 카르멘이기에 사랑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랑의 전차를 몰고 돌진하는 호세를 저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카르멘은 죽음을 선택하고 호세는 죽일 것을 선택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차지할 수 없음을 완벽히 인지한 호세는 카르멘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호세가 스스로를 죽이지 않고 카르멘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 카르멘은 죽을 것을 알고서도 호세의 칼을 받아들이기로 한 이유가 무엇일까. 죽음은 사랑이라는 초월적인 에너지가 동반된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불태우는 우리네 부모들의 모습이 그렇다. 그래서, 이 사랑이라는 감정이 호세에게만 있기에. 카르멘에게는 호세를 죽일 가치가 없고, 호세에게 카르멘은 죽일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혹은 죽음을 불사할 에너지가 사랑을 움켜쥐고 있는 호세에게만이 존재했던 것이다.  


사랑받길 간절히 원했으나 정작 사랑이 무엇인지 몰랐던 카르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랑을 줘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욕망을 사랑으로 변질시켜 달콤한 사탕발림을 해댔던 카르멘의 지난 남자들이 사실은 이미 카르멘을 죽음의 코너에 몰아넣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랑을 믿고 사랑을 쟁취하고자 살인도 서슴지 않았던 이 순수한 호세라는 청년을 만난 것이 죽음과 더불어 사랑의 강력한 무게까지를 카르멘에게 선사했는지도 모른다. 호세를 꼬신 것이 카르멘을 죽음에 다다르게 한 결정적 실수이지만 사실 사랑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족쇄가 더 강력했던 것 아닐까.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을 줘야 한다.

사랑받을 줄 모르면 사랑 줄 줄도 모른다.

난 어디에 서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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