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난 당신에게서 참 많은 편지를 받았는데.. 난 통 쓰지를 않았네.
이렇게 쓰려고 보니 조금은 쑥스럽다:)
착한 당신은 오늘도 당신의 동굴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며, 또 내게 할 말을 그려보며 전전긍긍하고 있겠지? 나를 미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편지가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힘이 되길.
어제는 정말 미안했어.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어. 무언가, 간절히 쥐고 있던 그 무언가가 바스락하고 부서지는 느낌이었어. 어둡고 허름한, 그 좁디좁은 한 뼘 방이 그토록 애써야 얻을 수 있는 거라니. 당신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어. 아니, 나를 보여줄 수가 없었어. 누군가 던져놓은 짐짝이 되어버린 느낌이었어. 무엇을 바라 살아왔던 걸까 묻지 않을 수 없었어. 당신을 뒤로하고 무작정 거리를 걷는데 세상 모든 집이 번듯해 보였어. 나를 향해 하하 호호 웃는 것처럼 보였어. 번듯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번듯한 집들에 자꾸 눈길이 갔어. 어느 아파트의 베란다에서 당신이 우리 아이의 목말 태우고는 환한 미소를 짓는 게 보였어. 세상에 집이 이렇게 많은데 우리가 살 집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어. 비정규직이 흔한 세상이라는데 집은 왜 우리에게만 더 가혹한 건지 묻지 않을 수 없었어.
그런데 그렇게 자꾸 물을수록 당신 생각이 났어. 당신이 무척 보고 싶어 졌어. 당신과 함께 어디로든 가고 싶어 졌어. 당신과 함께 갔었던 저 남쪽 끝 바다가 그리워졌어. 번듯한 집들에 주눅 들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당신과 바다를 바라보며 당신의 어깨에 기대고 싶어 졌어. 그곳이 우리가 있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거기서는 미래의 우리 아이가 아무리 뛰어놀아도 조용히 하라고 소리칠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당신이 좋아하는 기타 연주와 밥 딜런의 노래도, 또 내가 좋아하는 순정만화도 키득거리며 실컷 즐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 생각을 하니 슬몃 미소가 지어졌어. 나 정말 바보 같지?
여보. 기억나? 당신이 프러포즈 때 했던 말. 나와 함께라면 지구 끝 어디라도 가겠다고 했던 그 흔하디 흔한 말. 그 흔한 말이 내게는 얼마나 소중한 말이었는지 몰라.
나도 당신 없이는 안되니까.
그래서, 그래서 말인데 여보. 우리 서울을 떠나자. 저 남쪽 끝 바다가 보이는 그곳으로 가자.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당신과 함께. 또 우리 아이와 함께. 흙 밟고 바다 냄새 맡으며 지내고 싶어.
그렇게.. 해줄 거지..?
이 편지를 받은 당신이 어서 내게 달려와주길 기다리며..
이만 줄일게. 빨리 와!
- 당신의 하나뿐인 예비신부로부터
추신) 한 번만 더 핸드폰 꺼놓으면 죽는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