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ired by 사랑한 후에 오는 것들
서울의 야경이 눈에 들어오자 준고는 펼쳐놨던 책을 덮은 채, 눈은 게슴츠레 그러면서 고개는 보다 창가로 향한 채 마치 그러면 무엇인가가 더 보이기라도 할 듯 비행기의 창가 밖을 바라본다. 밀폐된 기내 이건만, 그래서 누군가 쩝쩝 거려 놓은 컵라면 냄새만 진동하건만 그 어떤 냄새를 추억하듯 눈을 감고는 코로 깊은숨을 들이켜 보는 것이었다. 늘 배고플 것 같은 덩치 큰 이국의 노인은 먹고 있던 식전 빵, 그것도 여러 번 추가를 했던, 그 빵을 슬며시 들고는 처음으로 몸을 움직인 옆자리의 아시아인에게 툭 하고 건네 보이는데 이 청년은 그저 눈을 감은 채 양팔을 벌리며 큰 숨만 쉬고 있다. 도착지에 거의 다다라서야 비좁은 좌석의 불편함을 느낀 노인이지만 실은 자신의 덩치가 작지 않음을 이내 인정하고는 남은 식전 빵과 커피를 서둘러 마시기 시작했다. 곧이어 서울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노인은 짐을 꺼내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데, 준고의 팔에 자신의 배가 꽤 묵직이 닿자 '익스큐즈미' 라며 씽긋 웃어 보이고 준고는 역시 씽긋 웃으며 '나이 죠브 데쓰' 라 답한다. 노인이 떠나고 준고도 이어 짐을 챙기려 복도로 나오는데 승객들의 짐칸을 열어주며 지나치고 있던 한 스튜어디스와 부딪혀 쥐고 있던 책을 떨어뜨리고 만다. 스튜어디스는 죄송합니다 하며 책을 주워주고 준고는 또 '나이 죠브 데쓰' 하며 웃어 보인다. 아, 한국인이 아니었구나 라고 깨닫자마자 다시금 그의 책으로 눈이 가는 스튜어디스. 그의 책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이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