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 후에(1)

Inspired by 사랑한 후에 오는 것들

by 여림


비행기 창가로 서울의 야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홍이의 눈가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뿌예진 창가 너머로 넘실거리던 불빛들은 이내 홍수에 잠기듯 홍이의 눈짓 한 번에 모조리 무너져버렸다. 후드득 떨어지는 물방울을 쓸어내릴 생각조차 않은 채 그렇게 눈을 감고 가만히 흐느낄 때 비로소 이 비행기는 곧 착륙할 거라는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제야 자기 옆자리의 어린 소녀가 슬픔에 잠겨있었음을 깨달은 한 이국의 노파는 급히 손수건을 홍이에게 건넸다. 물먹은 목소리로 '아리가또 고자이마쓰'를 되뇌던 홍이는 '아, 내가 왜 일본어로'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이내 손수건으로 쓱 눈가를 훔치고는 노파를 제대로 쳐다보지는 못한 채 다시 손수건을 건넸다. 노파는 아무 말 없이 홍이의 어깨를 토닥여주고는 자신의 짐을 챙겨 자리를 떠났고 왜인지 몸을 꿈쩍도 할 수 없는 홍이는 눈물 자국조차 그대로 남겨둔 채 자리를 지켰다. 모든 승객이 빠져나간 뒤 곧이어 객실을 정리하던 스튜어디스가 흠칫 놀라며 홍이에게 말을 걸려다 몸을 돌려 자신보다 직급이 높아 보이는 다른 스튜어디스에게 다가가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홍이는 이 모든 것을 느끼면서도 얼빠진 사람처럼 창가만 바라보다 이내 코를 한번 킁하고 들이키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가방을 챙겨 비행기를 빠져나온다. 꾸벅 인사를 하는 스튜어디스에게 자신도 꾸벅 인사를 하고는 또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아리가또', '아리가또'를 읊조리면서-





매거진의 이전글윤이(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