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림 Jul 21. 2017

갈 곳 없는

# 여자가 몸조심해야지


다른 뜻은 없었다. 오늘은 은혜의 생일이었고, 대학생활에 한 번쯤은 클럽을 가보고 싶다고 은혜가 노래를 불렀고, 당연히 친구인 내가 동행해주기로 한 것뿐이었다. 홍대의 유명한 클럽을 검색해놓고 케이크도 하나 사고 나름 화려한 옷도 입고서 기분 좋게 은혜와의 클럽 동행길을 함께했다.


TV에서 이따금 보던 광경이었지만 처음인지라 꽤 떨렸다. 하지만 은혜는 클럽을 들어서자마자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스테이지 한가운데를 누볐고 또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에라 모르겠다-나도 정신줄을 놓기 위해 노력했다. 까짓 거, 춤추면 그만 아닌가! 스테이지는 좁았고, 혹은 사람들이 많았고 또 많은 사람들의 몸이 내 몸을 스쳐갔다. 스쳐가던 몸 중 어떤 몸이 나의 등 쪽 아래편에 머물렀다.


처음엔 그도 나처럼 춤에 취한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휙 하고 뒤를 돌았다. '뭐가 문제지?'라는 눈빛이었다. 그를 밀치고 밖으로 나왔다. 나오는 스테이지 언저리에서 '여자가 몸조심해야지'라며 내게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도 여자였다.



# 돈 없으면 나가야지


다른 뜻은 없었다. 부랄 두 쪽과 할머니에게서 배운 떡볶이 양념장 하나로 내 한 몸 건사하면 그만이었다. 운이 좋아 홍대 어귀에, 나름 맛집으로 소문난 떡볶이 집이 된 건 순전히 나의 성실한 땀방울 덕분이었다. 클럽에서 혼을 불사른 청춘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 나의 주머니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건물주님이 임대료를 두 배로 올리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이 곳에 몸 바친 세월이 얼마인가, 단 한 번도 건물세를 밀린 적 없지 않은가, 부디 살려달라고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돈 없으면 나가야지'라는 말 뿐이었다.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뜯지도 않은 어묵 봉지를 찢어 생 어묵을 씹어댔다. 목구멍으로 짠내가 넘어갔다.



# 정말이지-


만수는 흐릿한 눈빛으로 화려한 네온사인이 가득한 홍대 거리를 둘러보았다. 널브러진 청춘들의 허기진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이 버린 건지 세상을 버린 건지, 알 수 없는 풍경이었다. 반대편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말없이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담아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어깨를 툭 치고는 종이컵을 건넸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만수를 바라봤다. 어묵 국물이 가득 담긴 종이컵을 냉큼 뺐더니 만수의 얼굴에 부어 버렸다. 


'너나 조심해-'라고 중얼대는 듯했다. 

정말이지 갈 곳 없는 만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섬 집 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