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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림 Jul 28. 2017

황만근은 그렇게 말했다

"밥 하는 아줌마가 별 거 아니라고?"


 나는 황만근 아저씨가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오늘 처음 화내는 것을 보았다. 좀처럼 말이 없는 아저씨는 툭허니 저 한마디를 내뱉더니 경운기에 쌀가마니를 싣기 시작하셨다. 꾸역꾸역 내 키의 두 배는 됨직한 높이로 쌓아 올리시더니 거친 손놀림으로 경운기에 시동을 거셨다. 오늘도 죙일 논에서 일만 하시던 양반이 어딜 가시려는 걸까? '어디 가시게요?'라고 떠나는 경운기 뒤통수에 소리를 질러 봤지만 묵묵 부답이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아저씨라 조금은 무서웠다. 아저씨가 떠난 집 툇마루엔 아저씨가 먹다 만 식은 밥과 뉴스의 끝을 알리는 TV소리만 나고 있었다.


 다음날도 아저씨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혹시나 하고 열어 본 아저씨의 방은 캄캄하기만 했다. 불을 켰다. 농사말고는 취미도, 특기도, 친구도 없는 분이라 휑하기만 했다. 슥 방을 둘러보는데 사진 한 장이 걸려있었다. 어느 할머니의 얼굴이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명백한 할머니. 이유도 모르게 서글퍼져 불을 끄고는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네 부엌으로 가 솥단지 바닥에 붙은 누룽지를 긁어 바가지에 담고는 툇마루에 앉아 TV를 켰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난 뉴스에 관심있을 나이가 아님에도 채널을 돌릴 수가 없었다. 익숙한 경운기, 익숙한 얼굴, 익숙한 목소리. 황만근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서울'이라고 쓰여진 톨게이트 한쪽편에서 경찰과 기자들에 둘러싸여 계셨다.


"우리 엄니는 평생을 나를 위해 밥을 지으셨고, 나는 또 평생을 쌀 농사를 지어왔소. 밥 짓는게 별 거 아닌지 한 번 이 쌀마지기 동 날때까지 밥 한 번 지어보쇼!"

 

 아저씨는 경찰들의 제지를 뚫고 경운기의 시동을 다시 걸려고 하셨지만 끝내 경찰들에게 끌려가 경운기가 아닌 경찰 차를 타시고 말았고, 아저씨가 지나간 뉴스 화면에선 어떤 아줌마가 파업하는 노동자는 나쁜 놈들이라고 하셨는데 왠지 그 아줌마가 더 나쁘게 느껴져 TV를 끄고 말았다. 문득 허기가 진 나는 다시 솥단지로 가 남은 누룽지를 박박 긁어 입 속에 꾸역꾸역 집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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