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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림 Jul 28. 2017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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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용기를 내야지!


 만수는 지쳐있었다. '복학하면 열심히 취업 준비해야지'라고 결심을 하긴 했으나 막상 부딪힌 취업전선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과제가 너무 많았고 과제 외의 것은 더욱 많았다. 도서관은 그냥 가는 곳이 아니라 사수해야 하는, 혹은 엄호해야 하는 초소 같은 곳이었다. 꾸역꾸역 필요하다는 것들을 해대고는 있지만 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그러한 때에 그녀를 발견한 것이다. 전쟁 중에도 사랑은 피어난다고 폐허 같은 만수의 마음에 불을 지핀 여인이 있었다. 우연히 도서관 구석자리, 한 무더기의 책 더미 속에 가려졌던 그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근해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공부를 하는 그녀. 분명 머리는 잘 감지 않는 듯했고, 옷은 추리닝 한 벌이 다인 것처럼 보이는 그녀. 하지만 만수는 보았다. 그녀가 안경을 벗고 질끈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쳐 얼굴에 흩뜨릴 때 빛나던 후광을-.

 도서관을 사수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생긴 만수는 오늘로써 한 달째 짝사랑 중이다. 무겁지 않게, 하지만 로맨틱한 방식으로 오늘은 고백을 하리라! 마음먹은 만수였다. 캔커피에 포스트잇! 이것이야말로 대학생 짝사랑 고백의 정석이자 로망 아니겠는가-. 편의점에 들어선 만수는 커피가 진열된 곳을 둘러보았다. 1+1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특별히 돈을 아끼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1+1이라는 그 표식이 마치 만수와 그녀를 이어줄 징표로 다가왔던 것이다. 만수는 거침없이 행사 중인 캔 커피 두 개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중 하나를 들고, 포스트 잇을 채우기 위한 펜을 들었다.


#

외롭다!


 정연이 도서관을 일찍부터 나오는 이유는 물론, 취업 준비라는 대의명분도 있겠으나 실은, 외로워서다. 외롭다. 집에 혼자 있기 너무 외롭다. 씻는 거 귀찮다. 도서관은 그래도 된다. 옷 갈아입지 않아도. 좀 더러워도. 고시생은 그것 역시 간지다. 하지만 역시나 최고의 간지는 나의 빈 옆구리를 채워줄 애인일 텐데.. 아아-외롭다!

 그래서 이 캔커피의 주인은 반드시 '나'여아만 하는 것이었다. 정연이 학식에서 맛없는 순두부찌개를 흡입하고서 도서관에 돌아와 자신의 자리에 다다랐을 때, 책 더미 위에 우뚝 놓여진 이토록 설레는 바로 이 캔커피 말이다. 캔에 붙어있는 노오란 포스트잇이 교정에 핀 개나리보다도 예뻐 보였다. 애써 담담한 척, 이런 일 흔한 거 아니냐는 듯, 실은 그녀를 보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에도 한껏 표정연기를 하며 정연은 포스트 잇을 살피기 시작했다.  


「벌써 한 달 째 당신을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면 같이 커피 한 잔 하고 싶습니다.

오늘처럼 다른 테이블이 아닌,

같은 테이블에서요:)」


아아-이토록 앙증맞은 메시지라니. 하며 감격에 빠질뻔한 정연은 순간 움찔한다. 다른 테이블이 아닌?!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열람실에 있다는 것 아닌가?! 지금 자신을 보고 있는 건가?! 당황한 정연. 하지만 역시나 이런 일쯤은 흔하다는 듯 정연은 무심히 캔커피의 뚜껑을 따고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저 목운동을 하는 척 눈동자를 회전시키며 열람실을 슥 훑어보았다.

 엇! 저 사람?! 같은 캔커피를 마시는 남자가 보인다. 아니, 저 사람?! 같은 캔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보인다. 응?! 저 사람도?! 같은 캔커피를 마시고 있는 남자가 너무 많이 보인다.

 참 나!! 어이가 없어진 정연, 자리를 박차고 열람실을 나가고, 엉거주춤한 한 남자. 그 뒤를 따라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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