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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림 Aug 16. 2017

바람만이 아는 대답

1.

변한 게 있다면, 변하는 게 없다는 거겠지.

애초 바닷속이라는 곳은 바람의 영향이랄 게 없는 곳이니까.

파도 소리가 사라진 것이, 물고기와 고래와 바닷거북과 불가사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들에겐 스스로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싱싱한 지느러미와 팔과 다리 그리고 강인한 근육이 있는 걸-

내 곁에서 해수욕과 서핑과 선텐을 즐기던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그들은 그들의 일상을 또 보낼 테고 혹은 인공 바다 같은 곳에서 애써 파도를 만들며 다시금 해수욕과 서핑과 선텐을 즐길 테지. 결국 바람이 사라진 바다라는 것이 바다에게 무슨 소용이 있냐는 거야.

봐. 열심히 꼬리를 흔드는 물고기 떼들. 물고기 떼들이 일으킨 바람에 흔들리며 춤추는 산호초들. 그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그저 하루를 보낼 뿐인 거라고. 그러니 너도 너의 자리에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될 뿐인 거지.

바람을 그리워할 필요는 없어.


어느 선체에서 떨어져 나온 무겁디 무거워 제 한 몸 가눌 수도 없는 갑판 한 조각에게 바다는 말했다. 바람을 그리워하지 말라고. 하지만, 사실은 바다도 바람이 그리웠다. 크나큰 파도소리와 그 파도의 힘으로 표류하던 모든 것들을 뭍 바깥으로 밀어내던 자신의 혈기 왕성함이. 또 자신을 환호하며 맞아 주던 누군가의 첨벙거림 까지도. 자신의 쓸모없음을 감추려 바다는 거짓 연기를 한 것이었다.

바람이 그리운 갑판에게-



2.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흰 갈매기는 사막에서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이 머리 위를 날아야

포탄은 지상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이 알고 있지

바람만이 알고 있지-



3.

바람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더 이상 무언가를 바라지 않았다.

혹은,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살아갈 의지가 사라진 사람들은,

모두 바닷속으로 몸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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