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림 Aug 25. 2017

-때 써요

몸에 좋은 약이 입에도 쓰다고
청춘의 고통을 당연시하시던 어르신 어디 계신가요?
저희 엄마는 쓴 약을 먹이고는 꼭 달콤한 사탕을 쥐어주셨는데 말이죠.
사탕은 안 주고 쓰디쓴 약만 주니까 참다못해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어리광 부리는 게 아니라고요.

제 얘기 전할 길 없을 때 글을 써요.
누구든 흔적을 남기고 싶은 거잖아요.
이를테면 이 하얀 종이는 저의 대나무 숲이에요.
아무한테도 할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가슴에 차올랐을 때 글을 써요.

가장 아플 때는 마음을 다 쓰고도 그 사람이 떠나갈 때에요.
마음 구석구석을 찾아 모조리 끄집어내서 다 주고도
결국 '우린 안 맞는 거 같다'는 상투적인 한 문장만 돌려받죠.
사랑만 그런 게 아니에요. 취업만 그런 것도 아니고요.
그냥 친구도, 애인도, 회사도 다 한통속인걸요.

쓰디쓴 아메리카노와 빨간 뚜껑 소주가 쓰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을 거예요.
주사를 맞을 때 엉덩이를 찰싹 때려주던 간호사 언니의 손찌검처럼
더 큰 고통으로 덜 큰 고통을 잊으려 노력하죠.

아아- 고기는 너무 달콤해요. 
생마늘 없나요? 매운맛 강한 우리 토종 마늘로요!   


 지영은 혜원이 끄적여 놓은, 눈물인지 소주인지에 젖어버린 종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사실 몇몇 글자는 흔적만 남은 상태였다. 편지지인가 했더니 이력서의 뒷면이었다. 이미 갈가리 찢긴 이력서 종이들도 식탁 아래 한가득 이었다. 지영은 침대에 쓰러진 채 술 냄새 풀풀 풍기고 있는 혜원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가만히 허리를 숙여 혜원의 등을 감싸 안았다. 


"미안해. 내 딸. 사랑해. 내 딸"

지영은 조용히 혜원의 귓속에 말을 불어넣으며 혜원의 등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쓰담쓰담-

혜원의 옷깃을 스치는 지영의 손길만이 소리를 냈다. 

그 소리만이 가득한 밤이 지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만이 아는 대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