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림 Jul 09. 2017

섬 집 아기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엄마와 단 둘이 독일이라는 나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대기업 입사한 오빠의 첫 선물이었다. 독일은 엄마의 엄마가 있을 거라 추정되는 나라였다. 엄마는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했고 난 그런 엄마가 부담스러웠다. 이름조차 모르는 엄마의 엄마를 찾는 계획은 세울 수도 없었다. 그저 엄마의 그리움 가득한 그 나라가 괜히 두려웠다.     


엄마는 공부 잘하는 오빠에게는 유독 관대했다. 공부 못하는 나는 피아노를 쳐야 했다. 체르니 40번을 칠 수 있을 때까지 수도 없이 손등을 회초리로 맞아야 했다. 체르니 40번을 칠 수 있게 된 날, 보란 듯이 엄마에게 보여주고는 난 피아노에서 손을 떼 버렸다. 더 이상 피아노를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는 피아노를 팔아버렸다. 그때 내 나이 11살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받지 못한 교육의 한을 나를 통해 풀려고 했다. 알아서 공부 잘하는 오빠는 자신의 한을 풀 통로가 되지 못했다. 피아노가 끝이 나자 이번에는 무용이었다. 우리 마을에는 적당한 교육기관이 없던 터라 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 근교 대도시 무용학원을 다녀야 했다.       


엄마에게는 엄마가 없었다. 엄마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남들이 학교를 가기 시작할 때 자신은 어느 집의 식모살이를 해야 했다고 했다.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누군가의 뒤를 밟아 교문이 보이는 곳에 멈춰 서서 남몰래 눈물을 삼킨 적도 많다고 했다. 이것이 엄마의 나에 대한 훈육의 근원이었다. 난 그것이 슬프면서도 싫었다.      


엄마에게서 도망가는 것이 내 존재의 이유였다. 공부도 피아노도 무용도 모두 다 뿌리치며 내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했다. 사실 찾지 못했다. 지금도 난 방황 중이다. 혹은 반항 중이다. 오빠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반항도 방황도 하지 않는 오빠가 부러우면서도 싫었다.     


엄마와 독일에 온 지 6일째 되는 날이다. 내일이면 돌아가야 한다. 물도 사 먹어야 하고 화장실도 돈을 내고 가야 하는 이곳이 무척 피곤했다. 아임 파인 땡큐가 전부인 나의 영어 실력으로 엄마를 모시기까지 해야 하는 내 처지가 무척 괴로웠다. 엄마는 그런 나에 비해 여전히 싱글벙글하였다.      


엄마와 걷다 보니 대학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엄마는 학교라면 무조건 좋아했다. 방학인 듯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독일은 비가 잦게 왔지만 그 날 오전은 무척 맑았으므로 우산을 챙기지 않았다. 그런데 비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맞을만한 비가 아니었다. 급히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건물 안을 둘러보는데 로비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괜히 피아노 앞에 앉아 보고도 싶었지만 엄마 앞에서는 싫었다. 그런데 엄마가 조심스레 그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엄마가 누르는 건반의 소리는 분명 ‘섬 집 아기’였다. 띄엄띄엄 누르는 계이름이 어느덧 엄마의 울음과도 같은 노래가 되어있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엄마가 나를 쳐다봤고 어느덧 엄마의 옆에 앉았다. 대체 어디서 피아노를 배운 거냐 묻지 못한 채, 엄마와 함께 ‘섬 집 아기’를 꾹꾹 눌러 연주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화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