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림 Aug 27. 2017

[영화 리뷰] 더테이블

진짜라는 게 뭘까요,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진짜라는 게 뭘까요,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_영화 '최악의 하루' 中


사실 김종관 감독의 전작이자 김종관 감독을 대중들에게 인식시켜준 '최악의 하루'를 보고 난 뒤라 이번 작품이 크게 기대가 되지는 않았다. '최악의 하루'가 나빴다는 것이 아니라, 이 감독에게 아직도 할 이야기가 남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진짜와 진심 사이를 오가는 감독의 고뇌를 '최악의 하루'에서 충분히 맛볼 수 있었기에 그랬다. 그새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싶은 작은 호기심을 가지고 영화를 관람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가 '최악의 하루'보다도 재밌었다. 그리고 더테이블을 보는 내내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문장은 전작 '최악의 하루'의 한예리의 대사였다. "진짜라는 게 뭘까요,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라고 말하며 무려 3명의 자를 오가는 솔직하다 못해 뻔뻔한 그녀의 대사. 아, 김종관 감독은 진짜와 진심 사이에 생각보다도 훨씬 깊은 고뇌를 가진 감독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비슷한 고민을 보다 더 업그레이드시켜 가져온 영화가 내심 반갑고 또 좋았다. 4개의 이야기를 병렬 배치한 듯한 영화이지만 오히려 긴 장편으로 가져왔던 '최악의 하루'보다도 리드미컬한 드라마가 있었고, 오히려 캐릭터들의 대화와 표정에 집중된 장면들이 보다 더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한 장소, 한 테이블이라는 단조로운 포맷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와 재미를 만들어냈다는 것은 최근년 간의 한국영화를 둘러봤을 때 분명 유의미한 실험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또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사실 요즘 한국영화는 누가 어디에 출연한 건지, 감독이 누구인지 모조리 헷갈린다. 그 영화가 그 영화 같다. 하품 난다-)


오전 열한 시, 에스프레소와 맥주_"너에 대한 소문 다 진짜야?"


선글라스에 마스크를 쓰고 등장한 유명 여배우 정유미, 그녀의 앞에는 에스프레소가 놓여있고 그녀의 전 남친이자 회사원인 남자의 앞에는 맥주가 놓여있다. 에스프레소는 진짜에 가깝고 맥주는 진짜를 흔든다. 소위 찌라시에서 돌아다니는 여배우에 관한 소문의 진실을 캐묻는 남자. 그는 자신이 실제 여배우와 사귀었다는 진실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오랜만에 만난 전 여친과 셀카를 찍고 회사 동료들을 불러 모아 진실이 진심임을 입증하기 위해 애를 쓴다. 진실은 이토록 찌질하기 그지없다.


  

오후 두 시 반, 두 잔의 커피와 초콜릿 무스케이크_'나 사실 당신 좋아해요'


'나 사실 당신 좋아해요'라는 진심과 진실 위를 표류하는 두 남녀의 어긋난 대화들. 초콜릿 무스케이크를 감싸는 여자의 대사처럼 언어는 진실 위를 떠다니고, 급기야 남자의 진심을 확인할 길 없는 여자는 테이블을 박차고 나가려 한다. 하지만 남자가 꽁꽁 싸매서 들고 온 가방 속 진심이 그녀의 발길을 붙잡고 또 마음을 열게 한다. 좋은 것을 볼 때마다 당신 생각이 났다며 주섬주섬 가방에서 꺼내는 남자의 진심에 여자는 비로소 미소를 띤다. 진심과 진실 사이가 이토록 멀지만 결국, 진심이 진실을 완성한다.


정연채라는 배우가 이토록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나- 클로즈업된 그녀의 얼굴 속에서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던 에피소드.   



 오후 다섯 시, 두 잔의 따뜻한 라떼_"이번엔 진짜예요"


가짜 결혼을 일삼던 사기'꾼'들이 진짜 사랑을 만나버렸다. 이번엔 진짜라는 한예리는 라떼에 각설탕을 넣지 않는다. 라떼 위 하트 모양의 거품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그녀의 진심을 확인 한 가짜 엄마 역의 김혜옥은 자신의 진실을 털어놓고는 한예리의 하루짜리지만, 진짜 엄마가 되어주고 싶어 한다. 가짜 사랑 속 진짜 사랑이 꽃 핀다. 진심이 가짜를 격파하는 가슴 시원한 에피소드.

     

전작 '최악의 하루'에서 세월만 보낸듯한 한예리의 캐릭터. 진실이 어떻게 진심을 이겨요라는 자신의 질문에 이제는 답할 수 있게 됐을지도-


 

 비 오는 저녁 아홉 시, 식어버린 커피와 남겨진 홍차_"블랙박스에 찍히면 안 돼"


여자를 기다리는 카페 테이블 앞의 남자, 차창 밖에서 여자는 등을 돌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 남자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괜찮을 터였다. 지금의 남자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 테고. 블랙박스에 찍히면 안 되는 관계. 한 때 뜨겁게 사랑했고, 지금도 서로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게 돼버린. 남겨진 홍차처럼 여전히 남자에 대한 사랑이 뜨거운 여자는 당신만 원하면 남편 몰래 만나자 하지만 남자는 식어버린 커피에 손이 가지 않듯, 그녀의 손을 잡지 못한다. 좋아하지만 만날 수 없는, 한 때 어긋난 진심은 오늘의 사랑도 완성시켜주지 못한다. 어디서 부터였을까. 우리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


존재만으로 풍성해지는 임수정이라는 배우의 힘. 쿨한 듯, 질척이는 듯 거침없이 내뱉는 임수정의 대사를 들으며 나라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녀와 몰래 하는 사랑은 어떨까 하는 상상을 잠시 했더랬다.



요란 법석한 한국영화에 지친 분들께 추천해주고픈 영화.

표정과 대사만으로도 훌륭한 연기와 영화가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픈 영화.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군가의 손을 꼬옥 잡고 싶어 지는, 그런 영화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옥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