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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림 Jul 23. 2018

[영화 리뷰] 버닝

1. 버닝에 대한 여러 의혹들에 대해-

1. 여러 의혹에 대해

우선 난 이창동 감독이 의혹을 제기하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감독은 질문을 했을 뿐이다. 이 영화를 둘러싼 의혹들은 사실 언론이 부추겨놓았다. 관객이 영화를 보기도 전부터 과잉해석을 하도록 유도해놨다. 모호한 적 없었지만 모호해진 작금의 상황에, 나의 리뷰를 선명히 하기 위해 여러 의혹들부터 잠재우려 한다.


1) 벤은 해미를 죽였는가?

 NO. 벤이 해미를 죽였다는 단서는 대체 어디 있는가? 단서는 없고 오로지 종수의 의심만 존재한다. 종수가 의심하기에 우리도 의심을 한다. 사실 이것은 가벼운 트릭이다. 이 작품 어디에도 벤이 해미를 죽였다 혹은 해미는 죽었다는 단서가 없다. 설마 벤의 집 화장실에 있는 손목시계가 죽음을 뜻하는가? 과잉해석이다. 그곳에는 많은 여자들의 액세서리들이 놓여있었다. 벤은 여자를 데리고 노는 존재이지 죽이는 존재가 아니다. 여기까지가 팩트다. 그 이상은 필요 없는 상상이다. 사실은 단 하나, 해미는 사라졌다이다. 사라짐이 죽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해미를 만나러 비닐하우스에 왔다가 죽임을 당하는 벤의 존재 역시 해미를 벤이 죽인 것이 아님을 뜻한다. 벤이 해미를 죽여놓고 해미를 만나러 왔다? 그것도 무방비 상태로? 말이 안 된다. 다만 벤의 죽음은 종수의 소설 속 이야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능성이 아니라 사실 소설이다.


2) 종수가 벤을 죽인 것은 소설인가?

YES. 사건의 배치가 그러하다. 종수가 비로소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직 후에야 벤에게 칼을 휘두른다. 한 편의 소설도 쓰지 못하던 소설 지망생이 비로소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말도 안 될뿐더러 도무지 벤을 죽일 근거가 없다. 벤은 사실 종수의 유일한 도피처이기 때문이다.


3) 해미는 왜 사라졌는가?

종수 때문이다. 해미를 사라지게 한 것은 종수다. 이 영화는 그냥 감독이 순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순차적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해미가 연락이 되지 않기 시작한 것은 종수가 해미에게 '창녀 같다'라고 이야기 한 직후이다. 다시 말해 종수가 해미에게 '너 창녀 같아'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해미는 사라졌다. 벤은 종수에게 당신은 해미에게 특별한 존재예요 라고 이야기를 전했다. 종수를 잠자리로 꼬신 것은 해미다. 아니, 종수와의 관계에서 늘 주도적인 것은 해미였다. 해미는 종수에게 많은 것을 의지했지만 돌아온 것은 창녀라는 낙인이었다. 나 같아도 사라지겠다. 해미는 종수에게 창녀라는 말을 듣고는 종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벤의 차를 타고 떠난다.

종수는 이 사실, 자신이 해미에게 가한 심각한 폭력에 대해 알고 있고, 비겁하게도 자신의 방어기제로 벤을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벤이 사라지면 종수는 도피처가 사라진다. 벤이 죽인 것이어야만 한다!

사실 종수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해미를 찾아가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다.

 

2. 다음 리뷰를 위한 버닝의 선명한 메타포들에 대해

버닝은 메타포가 선명한 작품이다. 감독은 질문을 선명하게 던진다. 우리는 그 질문을 가지고 끙끙 앓을 순 있으나 의도를 가지고 앓을 필요는 없다. 분명한 메타포 몇 가지만 짚어놓고 다음에 정식 리뷰를 써야겠다.


1) 벤은 대한민국의 시스템을 상징한다.

벤은 기성사회, 대한민국, 자본주의 시스템 등 청년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그 자체이다. 이창동 감독이 '버닝'을 통해 하려는 말은 사실 '청년에게-'가 아니라 '청년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종수이지만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사실 벤에게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청년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그 세계를 대하는 두 청년, 종수와 해미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2) 리틀 헝거가 그레이트 헝거가 되기까지에 대하여

이 이야기의 로그 라인을 한 줄로 이야기하자면 '소설 지망생 종수가 그레이트 헝거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종수와 대비되는 인물로 해미가 그려져 있고 종수와 대치되는 인물로 벤이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종수가 그레이트 헝거가 되어가는 과정 그 자체, 그러니까 결과가 아닌 그 과정 자체에 대해 우리는 이창동 감독의 질문을 받는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그레이트 헝거가 될 수 있을까요? 라 질문을 받는다.

아아- 그것이 버겁습니다. 감독님! 그리고 감사합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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