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윤동주
편지
-윤동주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이제 부칠 수 없는 편지가 되어버린
모든 편린을 가슴에 태웁니다.
가장 무거운 재가 하늘을 날아
끝내 바다 가장 깊은 곳
바다 고래의 뱃속을 타고
끝없는 헤엄을 치기를
그러다 가닿은 곳 머나먼 타향
외딴 어부의 그물망에 걸려
숯향 나는 그릴 위에서
또다시 재가되어 끝없이 날아갈
그런 편지를 부치겠습니다.
그리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