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술과 법

1_미술과 법의 지난 이야기

1_03. 표절의 논란과 그 속의 창작자

by 김두만


대구미술관이 유망한 신진 작가를 발굴, 지원하는 ‘Y아티스트 프로젝트’에 박 작가가 최종적으로 선정되어 2014년 3월부터 작품을 전시하게 됐다. ‘불편함’을 주제로 작업해 오던 박 작가는, 대구미술관에 두 개의 설치 작품을 전시했다. 하나는 육체적 불편함을, 다른 하나는 정신적 불편함을 표현했다.


손 작가는 SNS, 언론 등을 통해 고무줄을 이용한 대구미술관 전시 작품 ‘방해(disturbing)’에 대해 표절 문제를 제기했다. 전시장의 벽과 벽 사이를 일정 간격의 고무줄로 잇는 모양새 때문에 외형도 유사했고, 피고인보다 고무줄을 사용한 공간 점유형 설치 작업을 고소인이 먼저 시작한 점 때문인지 1심은 저작권 침해를 인정했다. 이후 ‘미술저작물 전시 금지 가처분 신청’ 등 소송을 제기했고 그로 인해 박 작가의 작품 ‘방해(disturbing)’는 전시 도중에 철거되는 미술계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7년 만에 판결이 내려졌다.


2021년 7월에 부산고등법원은 박 작가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는 판결을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와 피고 사이의 작품에서 ‘외관상’ 나타나는 표현형식은 유사한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원고(손몽주) 작품의 표현형식 중 저작권법으로 보호되지 않는 아이디어나 공유에 속하는 것을 제외한, 창작성 있는 표현만을 놓고 볼 때, 양자 모두 각자가 공간을 나름대로 독창적으로 해석한 다음,


각자의 해석을 형상화한 것으로써 관람객이 받게 되는 심미감에서 차이가 있다”라고 하면서 “작품별로 설치 공간을 해석한 방식에 차이가 있고 표현이 다르게 나타나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다”라고 판시했다.

image04.png (좌) 손몽주 작가 작품, (우) 박정현 작가 작품


저작권법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도하지 않은 독자적 중복이나 우연한 중복에 의한 것은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렇지만 복제 대상의 저작물이 공공영역에 속한다고 믿었다. 하더라도 고의적인 복제 행위에 대한 책임은 엄격하다.


우연한 중복이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저작자가 우연한 중복을 피하도록 저작권이 있는 많은 저작물을 사전 숙지하고 점검해야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사회적 개인적 비용이 요구될 것이다.


표절은 타인의 작품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따와 자신의 창작물처럼 공표할 때 발생한다.


저작권 침해와 유사해 보이지만, 그 개념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예컨대, 저작권 보호 대상이 아닌 ‘아이디어’를 차용한 경우나, 보호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을 활용한 경우는 법적 침해는 아닐 수 있지만, 여전히 도덕적·창작 윤리상 논란이 될 수 있다.


예술작품이 표현에서 작가의 의도와 맥락에 의한 조형적 모티프가 지극히 단순한 텍스트로 대체해 가는 예술 표현 현상에서 표절 논란은 외형의 유사성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될 수 있다.


유사해 보일 수 있지만 전혀 다른 작품에 대한 경솔한 표절 소동은 그 누명이 벗겨진 후에도 그 상처는 그대로 남게 되는 명예형이다. 반대로 논란이 종결된 후에도 표절당했다고 믿는 작가는 여전히 확증편향의 터널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등 아무런 교훈도 남기지 못하는 무의미한 상처만이 남게 된다.


또 하나의 사례로,

* 한국 대표 현대미술가로 꼽히는 최정화는 ‘꽃탱크’는 전투용 탱크 표면에 관객과 함께 수천 송이 꽃을 꽂거나 붙여 평화를 상징하는 설치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이용백의 설치작품 - 2012년 ‘디엠제트 국제다큐영화제’에 선보인 연작으로 ‘엔절 솔저’의 일부인 ‘플라워탱크’와 형식·내용 등에서 거의 유사하다는 이유로 표절 논란이 일고 있다. ‘플라워 탱크’는 이 작가의 대표작으로, 영화 소품이었던 탱크 표면 위에 조화(造花)를 붙여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은 설치 작품이다.


2012년 당시 영화제가 열린 경기도 파주에서 연예인과 시민들이 탱크를 따라가는 퍼레이드와 다양한 퍼포먼스를 벌였으며 서울 광화문 도심을 돌며 평화를 기원하는 동영상도 찍은 바 있다.


image05.jpg (좌) 최정화 작가의 ‘그린커넥션’과 (우) 이용백 작가의 ‘엔젤 솔저’


관련 입장/논평**

“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 와 이득을 취하는 범죄니만큼, 표절은 '논란'이 됐다는 점만으로도 해당 미술가를 거대한 공분 앞에 세운다. 확정이 아닌 '논란'만으로도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는 게 표절 논란이다.”

- 반이정 미술평론가 -




대부분 표절 논란에 오른 두 작품을 비교하면 너무 똑같다고 느끼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외형의 유사성과 표절은 전혀 다른 세계다.


앞서 열거한 표절 논란 작품들은 예외 없이 조형적 모티프가 지극히 단순한 것들이었다. 단순한 조형적 모티프일수록 같은 상상력이 다른 누군가의 머리에서 떠오를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는 얘기가 된다.


그에 더해 작품의 세부와 제작의 맥락까지 비교하면 유사한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작품이기 쉽다.



경솔하게 확산하는 표절 소동을 지켜보면서, 어쩔 수 없이 늘 똑같은 충고만 무의미하게 반복하게 된다.


"박정현-손몽주 논란"에서는 고무줄을 사용한 유사한 설치 작품의 사례가 국내외에 이미 여럿 있을 뿐 아니라, 두 작품 사이의 유사한 외관도 고무줄이라는 재료가 만드는 필연적인 결과이므로 고무줄 사용은 ‘창작성이 없는 표현’이라고 평했다.


또한 구성에도 차이가 있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감정했다.



미술작품 표절 논란은 문제를 제기한 쪽과 표절로 의심받는 쪽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지만, 논란에 가담하고 사태를 크게 부풀린 불특정 다수와 언론은 상처 뒤로 사라져 버린다.


표절 작가로 지목된 이는 누명이 벗겨진 후에도 크게 위축돼 지내고 지난 시절의 피해를 환급받기도 어렵다.


표절 논란은 그래서 명예형이다.


반대로 논란이 종결된 후에도 표절당했다고 믿는 작가는 여전히 확증편향의 터널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무런 공익도 교훈도 남기지 못하는 이 같은 표절 논란은 앞으로도 더 많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 보면서, 표절 논란은 선악의 드라마를 지닌 소비시장이다.


악을 응징한다는 다수의 신념이 시장의 소비자다. 진실은 신념을 이기기 어렵다. 오해에서 비롯됐을 표절 논란에서 두 당사자 사이의 싸움을 부추기고, 구경하고, 전파하던 무수한 구경꾼과 언론은 일상으로 돌아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잘 지내는 중이다. 이것이 표절 논란의 부조리한 이면이다.


이러한 유사성과 차별성의 경계는, 특히 조형적 표현이 간결해지고 텍스트화되는 현대 예술에서는 더욱 흐릿해진다. 결국 법은 형태의 ‘표면’뿐 아니라 맥락, 과정, 의도를 함께 따져야만 진실에 다가설 수 있다.




결국 예술에서 법을 이해하려면 단지 그 표현 형태의 ‘표면’만이 아니라, 그 맥락과 과정, 의도까지 함께 살펴야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술가의 자유로운 상상과 표현을 지키면서도,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그에 앞서, 논란이 일어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대중과 어떻게 공감하고 소통할 것인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음 글에서는 ‘대중의 논란 속 예술은 법을 앞세울 수 있는가?’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 참조: “스타작가 최정화 신작, 이용백 '꽃탱크' 표절 논란”,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010088713Y>

** 반이정, “미술품 표절 논란의 부조리한 이면”, 2021.07.29., 시사저널,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21164>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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