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술과 법

1_미술과 법의 지난 이야기

1_04. 대중의 논란 속 예술은 법을 앞세울 수 있는가?

by 김두만

예술은 자유로운 표현이지만, 그것이 ‘공공’의 공간에 놓이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술과 감상자의 취향, 정치적 시선, 도시미관에 대한 관점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작품 자체보다 ‘그 자리에 그것이 놓였다는 사실’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공공미술과 대중과의 쟁점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로를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1981년)'의 공공미술 작품, "Tilted Arc(기울어진 아크)"는 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0003824975_002_20240329045401119.jpg 조각가 리처드 세라/ '기울어진 호(Tilted Arc)' /게티이미지


1981년 뉴욕 맨해튼의 연방 플라자에 설치되었던〈Tilted Arc〉(기울어진 아크)는 높이 약 3.6미터, 길이 36미터의 거대한 강철판을 약간 기울어진 형태로 플라자 중앙에 곡선으로 설치한 구조물로 광장을 물리적으로 가로지르며 시민들의 동선과 활동을 제한한다는 민원이 다수 제기되었다. 특히 인근 연방 건물 근무자들 사이에서 "위협적이다", "길을 막는다", "쓸모없고 불쾌하다"는 불만이 쏟아졌었다.
세라는 '그' 장소(플라자)를 위해 특별히 설계된 것이라 주장하며, 작품을 옮기면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라고 강조해 왔다. 따라서 작가의 의도와 창작권 vs. 시민의 공공공간 사용권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하며 작품 철거를 두고 예술계에서는 검열과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이 일었었다.

예술을 공공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강행할 수 있는가, 또는 공공의 반대에 의해 예술을 철거할 수 있는가의 철학적·법적 논쟁이 이어짐. 공공미술의 소유와 결정권 연방 정부가 예산으로 설치했기 때문에 시민의 의견을 반영할 책임이 있다는 주장과, 작품이 공공에 귀속되어도 창작자의 저작권이 유지된다는 입장 사이의 소유권 논의가 촉발됨

결국, “Tilted Arc 사건은 예술의 자유, 공공의 권리, 장소특정적 예술(site-specific art)의 본질, 그리고 공공미술의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둘러싼 논쟁의 상징적인 사례이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image06.png 서울로 7017’에 설치되었던 헌신짝 공공조형물 ‘슈즈트리’

우리나라의 경우 대표적인 예가‘서울로 7017’에 설치되었던 헌신짝 공공조형물‘슈즈트리’*과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선구자인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포스코 앞의 ‘아마벨**’ 등이 공공의 대상이 된 순간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image07.png 포스코 앞의 ‘아마벨’

“아마벨”과 같은 공공조형물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경우는 단지 작품 자체의 미학적 평가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논란은 예술이 공공의 공간에 놓일 때, 그것이 감상자의 정서, 가치관, 정치적 또는 문화적 맥락과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



이동기 작가는 ‘아토마우스’로 유명한 우리나라 1세대 팝아티스트로서, 아톰과 미키마우스의 합성한 캐릭터로 대중문화와 순수미술과의 낯선 장르를 융합하자는 의미의 작품으로 1993년에 탄생한 캐릭터이다. 캐릭터의 취지와 같이 일상에서 예술을 경험케 하도록 2000년 서울 지하철 3호선에 벽화로 그려졌다. 하지만, 일반적인 벽화와 다르다는 이유로 시민들에게 테러당한 후 결국 벽화는 철거되었다.

image08_.jpg <서브웨이 코믹 스트립(지하철만화띠)>, 해당 사건을 재현해 전시한 작품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이에 "두 작가의 서로 다른 시선 <이동기 VS. 강상우>"*** 전시에서 이를 다시 재현해 선보이기도 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표현이어야 하지만, 공공 공간에서는 그 표현이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되고, 때로는 거부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현재의 시선에서만이 아니다. 사실 에펠탑도 당시 지어질 때 대중에게서는 흉물로 인지되며 논란 속에 지어진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중이나 단체에서 가하는 저작자의 인격권 침해에 대해서는 아래의 예로 이해를 돕는다. 다만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어떠한 결론이나 지향점을 찾기는 어렵다는 것을 먼저 지적해 볼 뿐이다.


다만,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안하는 법리의 하나로 ‘보거나 듣지 않을 수 없는 사람(The Captive Audience)', 즉, 싫어도 들어야 하고 보아야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법리가 있다.


“보거나 듣지 않을 수 없는 사람(The Captive Audience)” 원칙은, "싫어도 시야 안에 든다면 보호받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비롯된 법리이다.
특히 공공장소에서 볼 수 없는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전시나 공연이 비자발적 수용자(captive audience) 에게 강제로 노출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미국 7차 연방항소법원(7th Cir.)의 Piarowski v. Illinois Community College District 515 (1985) 판결이 대표적 사례이다.

*사건내용: Prairie State College의 미술 교수 Piarowski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교내 복도에 설치했지만, 학교 측이 이를 이동시킬 것을 지시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표현 자체를 금한 것이 아니라, 전시 장소를 조정한 것으로 판단하여 학교의 조처를 합법으로 인정했다.****

*핵심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학교는 자신의 이미지와 시설 이용자(특히 불가피하게 보는 사람)의 이해·권리 보호를 위해 전시 장소를 제한할 수 있다.

2. 이는 **표현의 완전한 금지가 아니라, 시간·장소·방식(time, place, manner)**에 대한 합리적 조정일 뿐이다.*****

3. 법원은 공공의 “captive audience”에게 강제적 노출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


따라서, 예술 표현의 자유도 무한정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전시 위치나 방식이 사람들의 의도하지 않은 노출 상황을 만들 경우, 법적 보호는 한계를 갖는다.



“미술 작품은 무조건 보호되는가? Piarowski 판결은 ‘싫어도 보게 되는’ 상황에 대한 보호가 먼저라는 원칙을 상기시킨다.

이처럼 공공미술 논쟁 속에서는 예술 표현의 자유와 대중의 권리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핵심 이슈가 된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전시 공간”과 “공적인 외부공간”에 관한 논의, 반풍토적 범위에 대해 예술적 자유보다 우위에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사회 안정에 덜 위협적인가 하는 쟁점은 앞으로도 꾸준히 논할 가치가 있다.





* 노형석, “‘신발폭포’ 논란은 한국 공공미술 현주소다”,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95939.html

** ‘고철 흉물’ 논란 딛고 100억대 ‘복덩이로’, 국민일보, 2020.05.02.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35550&code=13160000&cp=nv

*** 두 작가의 서로 다른 시선<이동기 VS. 강상우>,

https://contents.premium.naver.com/whyart/media/contents/240130080640582qh

**** carli.illinois.edu+9studicata.com+9law.resource.org+9

***** nyulawreview.org+1nacua.or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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