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술과 법

1_미술과 법의 지난 이야기

1_05. 또 하나, 예술과 법에 관한 예술가적 발칙한 사례

by 김두만

1963년, 미국의 미술가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1931)”는 건축가 “필립 존슨(Philip Johnson)”에게 상자에 열쇠 뭉치가 달린 작품인 <Litanies>를 판매하였다.


image09.png <Litanies>


그런데 얼마 후 모리스는 이 작품에 대해 돌연, “작가가 스스로 부여한 미적 가치를 철회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며, 자신 이 부여한 모든 미적 가치를 철회하겠다는 선언문을 작성해 존슨에게 보냈다.



image10.png 미적 가치를 철회하겠다는 선언문


이는 단순한 취소가 아니었다.


그는 "작품은 물질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고 철회하는 작가의 행위로 성립한다"라는 개념미술(conceptual art)을 과감히 실천한 것이다.



개념미술(conceptual art)

**개념미술(Conceptual Art)**은 예술가의 창의적 문제의식과 새로운 발상, 즉 아이디어 그 자체에 예술적 가치를 두는 흐름이다. 결과로 나타나는 형태보다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에 더 주목한다.

20세기 초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은 이 흐름의 출발점으로, 일상적인 소변기를 작품이라 선언하며 예술의 기준 자체에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미적 가치 철회’ 선언도 매우 신선했지만, 더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다.

필립 존슨은 이 철회 선언문 자체를 또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보고, 실제로 그 문서를 별도로 구매했다. 결국 <Litanies>는 ‘미적 가치를 철회당했지만’, 그 철회 행위 자체가 새로운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 결과를 낳게 하였다.


이처럼 예술가가 법의 언어를 ‘따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틀을 가지고 노는 발칙함을 통해 기존 질서를 전복하기도 한다. 따라서 “예술과 법”이 단순한 주종 관계로만 설명될 수 없다.



법적인 문서가 예술이 되고, 예술이 법의 체계를 비틀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은, 예술과 법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 자체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에드워드 키엔홀츠(Edward Kienholz 1927-1994)”의 작업도 들 수 있다.


그는 완성된 작품이 아닌 작품의 제안서(proposal)를 먼저 판매하였고, 구매자에게는 반드시 작가가 사전에 준비한 계약서 양식에 따라 계약을 체결해야 했다. 이 계약서는 단순한 거래 문서가 아니라, 작품이 일반적인 ‘물건’이 아님을 전제로 작가 중심의 해석과 권한을 명확히 규정하는 하나의 예술적 장치였다.

sum.jpg The Birthday 1968 ©에드워드 키엔홀츠


키엔홀츠는 이처럼 법의 언어를 능동적으로 차용함으로써,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더 분명히 드러내고자 했다.



위 사례가 예술가적 발칙한 사례라면, 이번엔 공적인 권리를 인증받은 사례도 살펴보겠다.

현대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1954)’는 '반사 조각'이나 '색의 깊이'를 다루는 실험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가 예술과 법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킨 결정적 사건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검은색, ‘벤트블랙(Vantablack)’에 대한 독점 권리 주장이다.


카푸어_무제,250x250x167.JPG 아니쉬 카푸어의 무제(250x250x167), 1990, ©리움


벤트블랙은 2014년 영국의 과학기술 기업 Surrey NanoSystems가 개발한 고흡광성 물질로, 빛의 99.965%를 흡수해 입체감을 거의 지워버리는 신소재였다. 아니쉬 카푸어는 이 소재를 예술작품에 처음 사용하고자 했고, 결국 해당 물질을 예술 분야에서 자신만 사용할 수 있도록 독점 권리를 확보했다.

이 결정은 예술계에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다른 예술가들은 “색을 소유할 수 있는가?”, “창작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고, 이에 맞서 영국 작가 스튜어트 셈플(Stuart Semple)은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핑크(Pinkest Pink)”를 출시하며 풍자적으로 대응했다.


단, 구매 조건은 “아니쉬 카푸어가 아니어야 함”이었다.





예술에서의 독점권이 표현의 자유와 충돌할 때, 우리는 그 기준과 정당성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된다. ‘색’이라는 재료조차 소유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예술은 누구 것인가?





또, 프랑스의 ‘예술가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은 자신만의 색, “국제 클랭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 IKB)”를 개발하고, 이를 통해 색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급진적 실험을 감행했다.


1957년, 클랭은 IKB를 단순히 색이 아니라 “정신의 공간”으로 정의하며 캔버스에 물감을 고르게 도포한 모노크롬 회화를 선보였다.


그림2_blue.jpg 이브클랭의 작품들

그는 이 색상을 독자적으로 제작했을 뿐 아니라, 이 색의 제작법과 조성 기술을 특허청에 등록했다. IKB는 단지 시각적 색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예술 행위라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클랭은 이 색의 법적 보호를 받되 상업적 독점권은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는 ‘예술이 법을 통해 개념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라는 점을 보여주었지만,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지는 않았다.


이는 이후 아니쉬 카푸어의 사례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법의 개입이 예술의 자유를 “확장하는가”, 아니면 “제한하는 거”라는 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같은 사례들처럼 예술가는 법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본인의 예술적 의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즉, 이 같은 "예술가적 발칙함"은 단순한 미학적 표현을 넘어서 법, 제도, 권리의 경계선을 질문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이런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작품이 꼭 캔버스 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예술은 언제나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었고, 때로는 상식을 뒤집고, 때로는 가장 사소한 것을 위대하게 만드는 마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는 문서 한 장, 계약 하나, 선언의 문장이 예술이 되었던 역사도 존재한다. 그렇게 예술은 현실을 건드리고, 제도를 비틀며 자신을 확장해 왔다.


지난 미술과 법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그 둘은 작가와 작가 즉, 작품과 작품 간의 관계, 그리고 작품이 대중과 만났을 떄 판단의 방향의 부분으로 정리해 볼 수 있었다. 뭐 물론, 작품은 거래의 대상이 되므로 후에는 판매상과의 관계 등도 거론하겠지만,


이 모든 관계 속엔 언제나, 예술가의 “그럴듯한 변명”이 있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렇게 예술가의 예술가적 변명을 떠올려 보며 1장을 마무리해 본다.


“이건 단지 복제가 아닙니다.”


“이건 기존의 질서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건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연습이에요.”



그러나 이런 예술가의 변명이, 2장에서는 법과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변명들이 어떻게 저작권이라는 법체계 속에서 경계를 흐려왔는지, 이제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 보자.






그리고 본 저자의 그림 몇 장 감상하며 마무리해 보겠다.

본 작업 형식도 나름 나만의 특별한 방법으로의 작업이긴 헌데....

캔버스 뒷면에 잉크 스포이드와 먹, 분무기를 이용해 번지기 효과를 낸 드로잉이다.

dw_04.jpg
dw_01.jpg
dw_03.jpg
dw_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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