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01. 예술은 왜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가: 법적 근거와 구조
예술, 그리고 더 넓게는 인간의 창작과 표현을 ‘법률로써’ 논하고자 할 때, 우리는 우선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문화적 가치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흔히 ‘문화국가주의’라 불리는 이러한 헌법적 원리는 헌법 조문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설시에서도 확인된다.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 평화애호의 전통”을 강조하며, 제9조에서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제31조 제5항은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며, 제69조에서는 대통령에게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할 것”을 선서하도록 요구한다.
이처럼 헌법은 문화의 발전을 국가의 중요한 책무로 제시하며, 문화국가 원리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헌법상 문화국가 원리가 국가의 문화개입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화에 대한 정책적 접근은 어디까지나 예술의 자유가 독립된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민족문화의 창달”은 ‘대한민국 국민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의 총체를 고양’하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 황승흠 교수는 “문화국가 원리는 국가가 직접 개입해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고 창작 환경을 조성할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는 개념”이라 설명한 바 있다.*
여기서 '국가'와 '문화예술' 간 관계를 발견하게 된다.
문화 기본법은 2013년 12월 30일 공포되어, 2014년 3월 31일부터 시행 중인 법률로써, 문화에 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정하고 문화정책의 방향과 그 추진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문화의 가치와 위상을 높여 문화가 삶의 질을 향상하고 국가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제1조)으로 한다.
제3조는 문화를 “문화예술, 생활양식, 공동체적 삶의 방식, 가치 체계, 전통 및 신념 등을 포함하는 사회나 사회구성원의 고유한 정신적·물질적·지적·감성적 특성의 총체”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학문적으로 거론되는 대부분의 문화 개념을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국가는 문화예술뿐 아니라 국민의 삶의 방식과 가치 체계까지 아우르는 문화풍토를 조성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1980년 처음 도입된 헌법 제9조의 이러한 규정은 지금까지도 문화국가 원리를 지탱하는 조항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렇기에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은 단지 국가 홍보를 위한 구호가 아닌, 헌법적으로 보장된 문화적 권리와 창작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 기반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여러 사람이 모여 살아갈 때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법은 이런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구성원 간의 관계를 규율하기 위한 강제규범으로서 기능한다. 도덕과 유사한 면이 있으나, 법은 그 자체로 위반 시 강제력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우리나라의 법체계는 성문법 중심이며, 최상위 규범은 헌법이고, 그 아래 국회에서 제정하는 법률, 그리고 대통령령·총리령·부령 등 명령과 조례, 규칙 등이 위계를 이루며 구조화되어 있다.
이러한 법의 피라미드 구조 속에서 ‘예술’과 관련된 법률은 헌법적 가치로서의 문화·예술 보호에서 출발해, 문화기본법·저작권법·예술인복지법·디자인보호법 등 다양한 하위 법령들로 이어지는 구조가 미술과 법 간 관계라 하겠으나... 정확히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 그렇게 문화로 이어지는 부분으로 설명하는 게 옳은 설명이다.
참고로, 구체적이게 '미술'에 관해서는 저작권법에서 거론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예술(우리는 미술을 집중적으로...)과 법을 논하지만, 사실 그 보다 중요한 건 "예술인"과 법인 측면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술을 법으로써 이해하려 한다는 것은 예술을 사회적 활동으로 보는 것이며, 그 사회적 활동을 실질적으로 행하는 구성원인 '예술인' 역시 사회 구성원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기에 예술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행하는 '예술인' 그리고 때론, 직업적 관점에서의 예술인에 관한 법적 관계가 더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이러한 중요성을 미리 언급해 볼 뿐, 차차 다루기로 하고... 본 장에서는 우선 예술에 관한 법적 근거를 더 알아보자...
헌법 제9조에서의 문화에 대해 이해하자면, 우선 전통(tradition)과 민족(nation)이라는 두 가지 수식에 따른 계승·발전과 창달할 대상으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전통’은 관습이나 습관을 통해 형성되어 과거로부터의 전승을 의미하고 있다. 다만, ‘민족’이라는 의미는 일정한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공동생활을 하면서 언어와 문화상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 집단으로 국민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헌법에 표현된 민족이란 용어를 전문에서 살펴보자면,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와 제9조의 “민족문화의 창달”, 제69조에서 정하는 대통령 취임 선서에서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라고 한 것이 전부이다. 이 정도의 용례로 보면 우리 헌법이 민족이라는 용어에 어떤 특정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민족과 국민은 시대적 맥락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동의어로 볼 수 있다. ‘민족문화의 창달’에서 현재 이 나라를 구성하는 인적 주체인 국민의 문화로 이해할 수 있으며, 지금은 좀처럼 사용하지 않지만 1980년의 관용어로서 민족문화라는 단어를 받아들일 수 있다. 따라서 민족문화라는 현재라는 시점에서 이 나라를 구성하는 국민의 문화라고 이해할 수 있다.***
‘창달’의 사전적 의미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전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창달의 주체가 국가가 아니라 국민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국가가 문화를 창달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문화개입을 의미한다.
헌법 제9조가 말하는 국가의 문화 창달 의무는 국민의 문화 창달을 국가가 조력할 의무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헌법 제9조가 있어야만 헌법의 문화 지향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헌법 제9조의 문화 창달은 국가작용의 본질적인 요소이지 헌법에서 별도로 규정하여 끌고 가야 할 특정한 요소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
국민의 문화 창달을 조력할 국가의 의무인 것은 헌법 제9조,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ㆍ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에서 계승과 창달이라는 용어의 사용으로 보아 시간적 관점에서 전통문화와 민족문화를 대비시키고 있다.
전통의 계승이라는 측면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문화의 전승을 말하는 것이고 자유롭게 표현하고 전달한다는 의미의 ‘창달’의 대상이 되는 민족문화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문화의 발전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예술적 가치”의 여부를 떠나 ‘예술’ 그 자체의 용어적 해석만 놓고 본다면, 분명 사전적 정의에서도 문화의 한 부분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표현 예술 활동과 그 성과의 총칭이라 사전적 정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헌법은 1948년에 공표된 이례부터 문화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예술 등과 같은 창작 행위에 관해 법률로써 보호하고 있다.
이에 대해 헌법 제22조 “①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②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는 규정에 따라 예술의 자유 및 예술가의 권리 또한 보호하고 있다.
* 1987년 개정 헌법에서 “과학기술자”가 추가되었다.
* 참고로, 예술의 자유가 헌법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19년 독일 바이마르헌법에서부터이다. <한태연, 「헌법」, 법문사, 1970, 253면.>
따라서 예술가 등 창작 행위에 관한 보호의 법률에 대해 헌법적 기초를 구할 때 모든 국민의 학문과 예술의 자유로서의 제22조 제1항과 제2항에 따라 학문과 예술 등을 행하는 자에 관해 법률로써 보호한다.
* 제헌헌법에서 “저작자, 발명가와 예술가의 권리”에 특별한 보호 규정을 둔 것은 비교헌법적으로 볼 때 일차적으로는 바이마르헌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연원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합중국 헌법의 영향도 있다.
국가행정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취임식에 “민족문화의 창달(暢達)에 노력”할 것을 선서하며 그 책임자임을 분명히 한다. 그렇기에 문화 및 예술 행정의 책임자로서의 대통령은 예술 및 미술 행정에 관한 판단을 통해 한 나라의 문화에 기대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대표적인 예로,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대중문화개방”이나, 노무현 대통령의 “한국 영화의 스크린쿼터제”를 들 수 있다. 이러한 행정적 판단은 이후 각 분야의 문화예술계의 행정적 방향에 기초가 된다.
예술은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될 수 있다.
이 세상 어느 곳을 도원으로 꿈꾸었나 (世間何處夢桃園)
은자들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野服山冠尙宛然)
그림으로 그려놓고 보니 참으로 좋구나 (著畵看來定好事)
천년을 이대로 전하여 봄 직하지 않은가! (自多千載擬相傳)
- 안평대군作 <몽유도원도 칠언절구>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박팽년과 함께 무릉도원을 거니는 꿈을 화가 안견을 시켜 그림으로 완성한 것이다. 그리고 위 시는 안평대군이 그 그림을 찬사 하면서 쓴 칠언절구(한 구가 일곱 개의 구성된 절구. 모두 4 구로 이루어진 구조의 한시(漢詩)의 형식)다.
왼편의 현실 세계와 오른편의 도원 세계가 대조를 이루고, 몇 개의 경관이 따로 독립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큰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 왼편의 현실 세계는 정면에서 보고 그렸으나 오른편의 도원 세계는 부감법을 구사한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다.
그렇듯, 위 그림은 나를 매료시킨 작품 중 하나였다.
하지만 역사는 안평대군을 저 도원으로 인도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저 그림 속과 비슷한 정자를 지었는 데 그 정자가 모반의 근거지로 역모의 증거로 활용되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더욱이 현재 저 그림은 일본 텐리대에 소장돼 있다. 아마 임진왜란 때 유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다.
무릉도원을 누리고자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현재 먼 타국에서 그림으로밖에 남지 못한 저 그림.
미술과 법의 구조를 얘기하는 데 위 작업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인간 본연의 새로움 혹은 아름다움 등을 추구하려는 무의식에서의 욕구와 그것을 표현하여 시각화 혹은 현실화하려 한 욕망과 그에 따른 표현의 과정..., 그리고 그 흔적인 타인(우리)에게 전달되며 전이되는 그 어떤 사상과 감정들에 관한 과정들...
그것이 예술의 이유이며, 예술의 의미임에 위 그림과 사례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 황승흠(2017), 예술가의 권리보호를 위한 법체계 – 헌법 제22조 제2항의 예술가의 권리에 대한 해석론- , 법학총론. 제24권 제2호, 6면의 내용 참조 인용.
** 황승흠(2017), 앞의 논문, 8면에서는 “우리 헌법이 민족이라는 용어에 어떤 특정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문의 ‘민족의 단결’은 1948년 제헌헌법에서부터 규정되었다. 국권을 빼앗긴 일제강점기에는 국민이라는 용어 자체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일본인과 구별되는 우리는 언어․혈연․문화 공동체로서 민족이라는 용어가 즐겨 사용되었으리라. 헌법 전문의 ‘민족의 단결’은 일본인과 구별되는 의미에서 광복의 주체로서 민족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 “국가가 문화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경우에도 일정한 문화 활동 영역에서 그 역량이 취약하여 다양성과 자율성을 확보할 수 없는 상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 국가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거나 육성하는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문화 영역에서 취약한 이러한 부분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은 경제성장이나 경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이나 육성과 같이 국가의 본질적인 기능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헌법에서 문화국가를 선언하여야 가능하고 이를 선언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정종섭, 헌법학원론(제9판) , 박영사, 2014, 245-246면).”
**** 바이마르 헌법(영어: Weimar Constitution, 독어: Weimarer Verfassung)은 1918년 11월 7일에 발생한 독일 11월 혁명 이후 독일 제국이 붕괴하는데 혁명 이후 이듬해 8월에 만들어진 헌법이다. 이 헌법을 바탕으로 의회민주주의적인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했다. 바이마르 헌법의 몇몇 조항은 현재의 독일 헌법에 그대로 남아 있다. 바이마르 헌법은 근대헌법상 처음으로 소유권의 의무성(사회성)을 강조하고 인간다운 생존(생존권)을 보장하는 등 20세기 현대 헌법의 전형이 되어 많은 민주주의 국가 헌법에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