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레쏭 Jun 27. 2024

슬랙:Slack

틈 만들기


스타트업 종족

20살 때 캐나다 밴쿠버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의 일이다. 당시 해리포터 시리즈가 대유행을 했었다. 물론 자막 없이 영화를 보는 게 어려운 나였지만 해리포터 개봉을 놓칠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어 친구들 몇 명과 다운타운 영화관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정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극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웃는 포인트가 인종마다 달랐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웃을 때는 다른 사람들은 입꼬리도 실룩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 극장 안에 다양한 민족들이 있었는데 그중 많았던 인도 아이들이 웃을 때는 나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구를 살아가는 민족마다 자신들의 언어가 다 따로 있다. 언어는 표면적으로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지만, 각 민족마다 언어가 다른 이유는 살아온 방식,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어는 같은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같은 걸 봐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스타트업도 대기업과 다른 언어를 쓴다. 살아가는 세상이 완전히 다르기에 거의 다른 종족과 같다. 

스타트업으로 이민을 오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언어들 때문에 당황하기도 하고 겁먹기도 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특히 대기업만 다니던 나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쓰는 언어,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알 길이 없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슬랙과 노션이다. 


스타트업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들고 처음 대표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의 일화다. 신나게 대화를 마치고 그 회사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자고 합의를 했다. 그러고 나서 한 대표가 나에게 말했다.


"크레쏭! 슬랙으로 초대할게요!"

"네? 아 네~"


'네~'라고 하는 0.5초간 나의 두뇌 회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슬랙이 뭘까? 초대한다는 거니까 어떤 장소인가? 일을 하는 거니까 사무실의 또 다른 이름인가? 모른다고 말하기에는 얼굴이 팔리고, 그렇다고 물어보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복잡한 마음이다. 이렇게 머리에 불이 날 정도로 굴리고 있는데 그 대표의 말 한마디가 사건을 종료했다.


"업무용 이메일 알려주세요. 채널 만들어서 싱글 게스트로 초대할게요." 

'와... 채널.. 싱글 게스트??? 그래! 일단 이메일을 주면 된다. ' 휴우 급한 불은 껐다. 


급하게 자리를 마무리하고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슬랙이 무엇인지부터 찾아봤다. 그런데 멘붕은 또 시작된다. 봐도 모르겠다. 아니 보면 볼수록 모르겠다. 해시태그도 많고 골뱅이도 있고 개발자들이 코딩을 위해 사용하는 건가? 이걸로 무슨 일을 한다는 거지? 



슬랙(Slack) 느슨하게

일단 슬랙이란 단어가 무슨 뜻인지 찾아봤다. 그런데 갑자기 그 의미가 마음에 쏙 들었다. 느슨하다는 말이 부정적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틈, 여유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참고)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협업 툴인 슬랙(Slack)은 이 말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모든 대화와 지식을 위한 검색 가능한 로그” (Searchable Log of All Conversation and Knowledge)


Slack : 틈


틈은 물체의 어느 부분, 또는 서로 거의 붙거나 이어져 있는 물체와 물체에 벌어져 있는 작은 공간. 사이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새로운 일을 더하려면 여유가 있어야 한다. 현재의 일로 나의 시간과 정신이 꽉꽉 채워져 있으면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래서 먼저 내 안의 작은 틈을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일 특히 이직 같이 인생에 중요한 일을 할 때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 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아주 작은 틈에서 시작하면 된다. 


그럼 그 여유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지금 30대가 지난 사람이라면 특히 현재 진행 중인 것들로 가득가득 차있다. 그게 개인의 삶에서의 일이든 커리어와 관련된 일이든 말이다. 만약, 결혼을 해서 챙겨야 할 가족이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고, 직장에서도 더 이상 주니어가 아닐 것이다. 어떤 일 하나를 단독으로 맡아서 성과를 내야 하는 중간 관리자 이상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현재 가지고 있는 나의 패를 보고 솎아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틈을 만들 수 있다. 나는 그걸 나와 가장 익숙하지만 대체 가능한 것들을 먼저 솎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래야 하냐면, 나의 시간과 능력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시간과 능력을 에너지라고 정의하겠다. 이 유한한 에너지를 나누어서 새로운 일을 하려면 기존에 하던 것을 그대로 유지하면 원하는 퍼포먼스가 나지 않을 것이다. 옛 말이 틀린 것이 하나 없다. 내 것을 내어 주어야 다른 것을 취할 수 있다. 


그렇다고 거창하게 그래! 모든 것을 버리겠어와 같이 비장한 각오를 할 필요는 없다. 이것도 쉬워야 한다. 잊지 말자! 변화가 어렵고 부담스러우면 하기 싫어질 것이다. 이미 우리의 몸과 마음은 많이 무겁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 버리기


그동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익숙함 들을 버리거나 바꾸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퇴근'이라는 개념이 일을 마치면 가는 게 아니라 시간이 되면 가는 개념으로 바꿔봤다. 아주 오랜 시간 조직에 충성을 하던 나는 일이 끝나지 않으면 집에 가는 게 이상했다. 오늘의 일은 목표한 바 (내가 만족할 만큼)를 이뤄야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의 퇴근 시간은 늘 +N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정해지면 하던 일을 멈추고 나가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 단위로 일을 관리하고 효율이 더 나기 시작했다. 데드라인이 있다고 생각하니 납기를 맞추려고 노력하고 만성적인 야근도 사라졌다. 


퇴근 후의 시간까지 동료 또는 상사와 회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면, 회식은 아주 특별한 날에만 하고 그렇게 확보된 시간은 나를 위해 썼다. 운동을 하거나 아이와의 놀이 시간으로 활용했다. 그 효과를 건강도 얻게 되고 몸이 피곤하지 않으니 마음도 더 평안해졌다. 아이와도 더 친밀감을 느끼고 관계도 좋아졌다. 9-6로 같이 일 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성과를 만들면 되지 꼭 나의 밤도 같이 보낼 필요는 없다.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고 걱정할 수 있지만, 이별을 하려면 이들과도 헤어진 다는 걸 생각하자. 그리고 관계는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더 건강해진다.


회사 안에서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시기에 밖에서 배우는 '딴짓'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사이드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나는 그때 스타트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거 같다.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의 주제로 따로 이야기하겠다. 


먼저 이직한 후배들과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이나 모임들을 기웃거렸다. 그래서 내가 모르는 그 미지의 세계 사람들은 어떤 문제들을 고민을 하고 있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가는지 직접 보게 된 거 같다. 틈 들이 하나씩 만들어졌다. 


그 틈들이 모여서 내가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데 기회를 만들어줬다. 자 이제 무언가를 새롭게 하려 한다면, 먼저 나와 익숙한 것과 헤어지자!


언제? 바로 지금이다.


 아참, 이제 나 슬랙 잘한다.




이전 06화 1km 달리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