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비 상사편
상사라는 사람
상사 그들은 누구인가?
상사(上司)는 자기보다 벼슬이나 지위가 위인 사람을 뜻한다.
상사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마다 떠오르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또는 과거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같은 존재를 떠오른다. 회사를 들어가는 첫 날 만나는 생애 처음 보는 존재다. 상사에 대해서 좋게 말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상사들은 대체로 이런 '놈' 중 하나다. 처음 보는 놈, 이상한 놈, 안 맞는 놈. 나의 첫 상사는 그 세 명이 한 몸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도 너무나 강렬해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저는 00기 송미영입니다."
"어! 너구나? (위아래로 훑어본다.) 내일은 거래선과 중요한 미팅이 있으니 예쁜 정장을 입고 오세요."
'예쁜 정장을 입어라!' 내가 회사에서 첫 번째 받은 임무였다. 그 외에는 출근 첫날 내가 한 일은 전화 당겨 받기와 점심 장소 고르기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나는 내가 보유하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을 골라서 입고 나왔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그 상사의 고함 소리였다.
"송미영씨 이리 와보세요! 그게 정장인가요? 내가 정장 입으라고 했잖아!"
"저 정장 입었는데요."
"아니 그게 무슨 정장이야? 바지가 여자 정장인가요?"
"네 바지도 여자 정장 맞습니다."
"내가 조선시대 복식연구가한테 물어볼까? 여자 정장은 검은색 투피스에 진주 목걸이? 뭐 그런 걸 해야지!"
"전 투피스와 진주 목걸이가 없습니다."
"뭐야! 지금 너 나한테 대드는 거야?????"
내 얼굴을 벌겋게 상기되었고 이미 머릿속은 화산폭발 중이었다. 출근 2일 차 이 웃지도 울지도 못할 해프닝을 시작으로 나의 직장생활은 먹구름이 자욱했다. 그리고 그 상사라는 사람과 보낸 시간들은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아! 회사란 이런 것이구나!'를 깨달아야 했던 시기라서 그럴까? 다행인 건 그와의 시간도 시한부라는 점이다. 대기업은 조직개편이란 게 있기 때문에 그와의 허락된 시간은 6개월뿐이었다.
그렇게 첫 상사와의 강렬한 만남과 헤어짐 이후에 수 없이 많은 상사들을 만났다. 어떤 이는 그 첫 상사만큼 힘들었고 어떤 이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었다. 분명한 건 그 들을 만나면서 나는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고, 구르고 대들면서 나름의 '성장' 이란걸 했다.
그리고 나름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01. 세상에 영원한 상사도 없고, 같은 상사도 없다.
02. 나에게 맞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0%다.
03. 대부분의 상사는 존경할 인물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살면서 한 번은 만난다.
상사 말고 선배
그리던 어느 날 나는 결심 같은 걸 했다. 상사 말고 선배가 먼저 되어야겠다. 그런데 상사와 선배가 무엇이 다른가? 상사는 나에 대한 평가권을 가지고 있고 업무 지시를 할 수 있는 사람, 선배는 나 보다 이 조직 생활을 더 먼저 한 사람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선배라는 의미는 내가 모르는 걸 도와주는 사람, 후배를 성장시키는 사람이다. 나는 누군가 나를 기억할 때 그냥 위에서 일만 시키던 상사가 아니라 그들의 성장을 지원해 주는 선배가 먼저 되고 싶었다.
모든 상사가 나쁘지 않다. 상사라는 위치에 있어도 구성원들을 이끌어주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상사 전에 선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꼭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회사 규모가 너무 커서 나에게 상사가 될 기회가 그렇게 쉽게 오지 않았다. 당시에 한 5년 이상은 더 기다려야겠기에 아쉽지만 이루지 못했다. 기회가 주어졌다면 참 잘할 수 있었는데....ㅋ
동료만 있는 나라
직장생활 20년 가까이하는 동안 상사와 선배라는 말을 익숙한 단어였다. 조직안에서는 사람들을 분류할 때 서 있는 위치로 했던 것 같다. 내 위에 있는 사람은 상사나 선배, 나랑 같은 위치에 있는 동기, 내 아래 있는 후배라고 말이다. 이렇게 위치별로 사람을 분류하는 개념이 익숙했다.
2024년 현재 스타트업 이민 4년 차인 나에게는 '상사', '선배'는 잊혀진 개념이 되었다. '언제 그런 존재들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의 나는 '동료' 하고만 일 하고 있다. 물론 이 동료들은 살아온 배경도 현재의 나이, 회사를 들어온 시기도 모두 다르다.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는 어린 사람들이 더 많다. 심지어 내가 국민학교 입학할 때 태어난 사람, 대학생이 되던 해에 태어난 사람까지 다양하다. 가끔 그 동료들의 나이를 발견할 때면 나랑 말 섞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물론 하는 일과 책임의 범위도 다르지만 적어도 같은 목표를 나누고 달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왜냐하면 그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내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 좋다. 뭐가 좋냐고?
사람을 위치로 구분하지 않아도 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동지들과 함께 일 한다는 사실
그래서 결론은, 참 일 할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