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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쏭 Aug 01. 2024

다시 만난 애자일

함께 자라기를 읽고

Prologue

"애자일이 뭐야?"

내 인생에서 애자일란 말을 처음 들었던 때를 떠올려 보았다. 혁신을 위해 늘 새로운 방법을 찾고 도입을 하던 회사의 당시 키워드는 '애자일'이었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간 사일로가 생기고 비효율이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혜성처럼 떠오른 개념이었다. 모든 소프트웨어 개발조직은 애자일 방식으로 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애자일을 코칭하는 사무국도 생겼다. 당시의 나는 애자일이 개발하는 방식의 하나라고 생각했고 이 방식이면 조직이 빠르고 변화에 기민하게 움직여서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고 이해했다. 몇 년간 이 애자일 돌풍은 계속되었지만 조직에 큰 변화를 만들지는 못 했다. 


"핵심이 빠졌어요."

C-Lab에서 스타트업의 성장 지원을 위해서 고민을 하던 나는 한 애자일 컨설턴트를 발견했다. 스타트업은 모두 애자일로 일하니까 이 부분을 지원해 준다면 그들이 성장을 하는데 도움을 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전문가를 만나기로 했다. 두명의 동료과 방문하기로 하고 미팅을 잡았는데 하필 그날 나는 급한 보고일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되었다. (언제나 미팅이 있을 때 급한 보고가 생겼다.) 아쉽지만 다른 두 동료가 그 전문가를 만나고 와서 소감을 전해줬다. "크레쏭 도인을 만난 것 같아요. 그런데 함께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도인이라니? '도'와는 거리가 먼 개발전문가 아닌가? 애자일 컨설팅으로 '도'라는 걸 터득할 수 있단 말인가?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지만, 당시 그분이 우리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한 말은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애자일은 기술이 아닙니다. 문화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조직이 그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당시에는 그 말을 100%  이해하지 못 했다. 애자일이 방법론이나 기술이 아니라 문화라고? 무슨 말이야?? 그렇게 그 도인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은 채 또 몇 년이 흘러갔다.


다시 만난 도사

나는 지금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스타트업 사무실에 앉아있다. 우리는 매주 목요일 함께 읽는 독서모임을 한다. 같이 책을 읽는 이유도 우리가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한 배움을 얻기 위해서다. 이번 달 선정된 책은 '함께 자라기, 애자일로 가는 길'이다. 책 제목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이 책은 대표가 환경 변화에 강한 애자일 문화를 도입해야 한다고 하면서 추천한 책이다. 그런데 왜 제목이 함께 자라기일까? 애자일인데 왜 자라는 게 나오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저자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앗! 바로 그 도인이다."


함께 자라기 김창준

함께 자라기는 몇 년 전 내가 급한 보고로 만나지 못한 도인이 쓴 그 책이었다. (알고 보니 이 분은 정말 업계에서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분이었다.)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반가운 마음에 마음속으로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내적 친밀감 때문이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 텍스트를 읽는 게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애자일이 왜 문화여야 하는지, 단순히 방법론만 적용한다면 망하는지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왜? 나는 이미 그 안에 있으니까..


야생에서 자라기

이 책은 자라기, 함께, 애자일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원래는 중요한 순서대로 글이 전개되는 게 맞는데 그 반대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애자일에서의 핵심이 '자라기' 이기 때문이다. 조직은 자라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회사의 성장은 결국 조직을 구성하는 개개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성장해야 하고, 또 그 개인들이 함께 조화롭게 자라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매일매일이 되어야 한다. 왜? 멈추면 죽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다닐 때는 자란다는 개념과 지금의 개념이 다르다. 큰 조직에서 자란다는 직급이 올라간다는 의미가 더 컸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더 범위가 넓은 일을 하는 게 자라는 것의 의미다. 스타트업에서 자란다는 다른 의미이다. 진짜 내가 자라나야 한다. 내가 지금 마주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대부분 처음 보는 것이고, 난이도도 어렵기 때문에 어제의 나보다 자라지 않으면 해결하는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자라기는 위치 변경이 아닌 생존을 위한 진화 수준이다. 


이 책에서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많은 방법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개념은 이 책의 첫 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야생학습'이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학습이 현실에서는 효과가 없는 경우를 많이 만난다.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더 그렇다. 불확실성이 높은 환경에서는 지금 필요한걸 빨리 배워야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학교학습 vs 야생학습 p12

야생 학습은 대부분 협력적이다.

야생 학습은 대부분 비순차적이다

야생 학습은 대부분 자료에 한정이 없다.

야생 학습은 대부분 명확한 평가가 없다.

야생 학습은 대부분 정답이 없다.

야생 학습은 대부분 목표가 불분명하고 바뀌기도 한다.


경력 아닌 실력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 <짝패 대사 중>


저자는 경력이 가지는 의미를 3가지 나누어 이야기한다. p16

1. 경력 연차라는 것으로부터 이 사람이 초급인지 아닌지 정도의 정보만 기대할 수 있다.

2. 초급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는 경력 연차가 오히려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잘못된 정보를 작용할 수 있다.

3. 고로 경력 연차로 채용 여부나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판단 편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이며 결과적으로 조직에 손해를 줄 수 있는 방식이다.


나도 연차가 적은 편이 아니라서 이런 이야기하는 게 누워서 침 뱉기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차와 실력은 비례하지 않음을 많이 느낀다. 어쩌면 스타트업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개념일지 모른다. 대기업에서 연차는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이 조직에서 단계를 밟아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게 나의 실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행이건 거기서는 잘 드러나지가 않는다. 그러나 스타트업에서는 단 1분도 버티지 못한다. 여기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못 하는 것의 민낯이 너무나도 잘 보인다. 왜? 사람도 얼마 없고 내가 안 하면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자라고 있어야 한다. 


함께 매일매일 

협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우리는 진짜 협력을 하고 있을까? 저자의 말에 100% 공감했던 내용은 우리가 생각하는 협력에 대한 프레임이 잘못되었다는 점이다. 협력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일을 정확하게 자르고 세밀하게 선을 긋는다. 그리고 각자 일을 하다가 나중에 만나서 맞춰본다. 그 과정에 협력은 없다.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신뢰성이 높은 조직을 만들고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한다. 결국 소프트스킬이다. 즉 전문가들만 모여있다고 해서 성과를 낼 수도 없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p166

1. 전문가들 모아서 팀 만든다고 잘하는 것 아니고

2. 오히려 성과가 떨어질 수 있고

3. 정보 공유하고 협력을 잘하기 위한 명시적인 도움이 필요하며

4. 소셜 스킬 등이 뛰어난 제너럴리스트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


다시 애자일

그래서 애자일이 무엇인가?


p194

좁은 정의는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이다. 1990년대 기존의 개발 방식의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맞지 않아 소개되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발견한 애자일의 개념은 울타이에 가두어 보지 않고 일하는 한 가지 스타일, 혹은 더 넘어서서 삶은 사는 방식이다. 이런 정의가 가능한 이유는 불확실성이 단순히 소프트웨어 개발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일, 비즈니스, 삶 전체에 불확실성은 존재한다.


p217

도요타에서 1년간 구현되는 개선 아이디어 개수는 1백만 개라고 한다. 제안되는 아이디어 개수가 아님에 주의하자. 하루에 3,000개의 개선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된다. 동종 업계의 10배에서 1,000배 수준이라고 한다. 도요타가 도요타일 수 있었던 것은 칸반 같은 개별 베스트 프랙티스가 아니라 그런 실천법들이 생겨날 수 있는 문화적 풍토와 생성 과정 때문이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칸반 이면의 칸반이 나올 수 있었던 구조와 문화이다.


Epilogue

결국 사람과 문화

다시 만난 애자일의 핵심은 방법이 아닌 사람이라는 걸 알려줬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또는 성장을 위해 많은 방법론을 조직에 도입한다. 물론 이 시도들이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새로운걸 도입하는 또는 적용할 사람에 집중해야한다. 사람들이 변화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방법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변화하면 그게 문화가 된다. 지금의 나, 내가 함께 하는 동료, 그리고 우리 조직의 문화가 탁월한 성과를 내기 위해 적합한지 돌아보고 아니라면 방법이 아닌 생각부터 맞춰나가는 일부터 해봐야겠다. 


이제 나도 애자일의 'ㅇ'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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