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아이가 뜬금없이 이야기했다.
아이 : 엄마 나 2학기 회장 선거 나갈까?
나 : 어? 너 안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아이 : 응 그랬는데 마음이 좀 바뀌었어!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나 : 그래? 그럼 어떤 회장이 되고 싶은데?
아이: 음 그건 모르겠고 먼저 공약을 생각했어!
나 : 공약을 생각했어? 그게 뭔데?
아이 : 전 여러분의 불을 끄는 소방관이 되고 싶습니다. 어때?
나 : 불을 꺼? 무슨 불?
아이 : 불만족, 불평등, 불친절, 불화합 이런 것들 그런 걸 없애는 회장이 되겠다! 봐 불을 없애면 좋은 단어들이 되잖아. 종이에 쓰고 앞에 불을 하나씩 없애는 퍼포먼스도 하는 거 어때?
나 : 하하하하 오! 좋은데? 우리 잊지 않게 적어두고 2학기에 도전해 보자!
단어를 가지고 이런 메시지를 만들 수 있다니! 신선한 아이의 아이디어에 내가 신이 났다. 2학기 임원 선거날이 기다려졌다. 개학을 했다. 우리가 기다리던 선거날이 돌아왔다. 아이는 자신이 이야기할 공약을 타이핑했다. 타이핑을 해야 외워진다면서 사뭇 진지하게 본인의 선거 공약문을 노트북으로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본인이 글을 써보고 엄마와 아빠의 의견을 물었다. 우리 부부는 신이 나서 조언을 해줬다. 이건 마치 대선을 준비하는 선거캠프 같았다.
"이렇게 말하면 애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궁금함을 유발할 수 있게 질문으로 시작하며 어때?" 등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방안까지 생각하면서 준비를 했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시계를 보니 새벽 1시였다.
다음날 아침, 누가 깨우지 않았는데 아이는 7시에 일어나서 목욕 재계하고 가장 단정해 보이는 하얀색 셔츠를 입고 마지막 리허설을 마쳤다. 그리고 평소보다 일찍 학교를 갔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 정도 공약 내용이면 당연히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2번의 반장선거 경력을 지닌 나도 내가 출마할 때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다. 역시 자식 일은 이런건가? 오전에 선거를 하니까 점심시간에 연락을 주려나, 학교를 마치면 바로 연락을 주겠지? 일을 하면서 신경은 온통 휴대폰에 가 있었다.
그런데 하교시간이 다 되고 학원에서 출석 알람이 왔는데 아이에게 기쁜 소식은 오질 않았다. 가족 채팅방에 쓴 카톡은 읽씹 당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설마 내 딸이 선출이 되지 않았단 말인가? 퇴근을 하고 집에 왔다. 내가 전해 들은 결과는 '실패'였다. 아이가 받는 표는 3표다. 한껏 풀이 죽은 아이는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서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괜찮다고는 하지만 누가 봐도 괜찮지 않았다.
나 : 괜찮아! 선거에 나가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했고 후회 없이 이야기했으면 그것도 좋은 경험이야.
아이 : 아 그래? 근데 4학년때는 한표 차이로 이겨서 회장을 했는데... 왜 이번에는 3표밖에 받지 못했을까?
나 :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상황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어. 이번에 회장이 안되었다고 해서 네가 실력이 없거나 잘못한 건 아니야! 때가 맞지 않았을 수도 있고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상대가 더 강력했을 수도 있어!
아이 : 그래 뭐 괜찮아! 난 신경 안 써....
나 : 도대체 어떤 공약을 낸 애가 회장이 된 거야? (분노 숨기지 못 함)
아이 : 뜨개질 가르쳐 준다고 한 애
나 : 뭐????? (충격)
아이 : 몰라! 난 괜찮아 그냥 신경 안 쓸래!
나 : 근데 그거 알지? 넌 영원한 우리의 회장이야~
아이 : 엄마 나 괜찮아! 이런 건 빨리 잊고 숙제해야지!
Still, we must move forward
실패는 아프다. 쓰라리다.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실패한 기분에 머물러서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벌써 엄청난 진리를 알고 있다니! 정말 너는 다 알고 있구나! 실패하지 않으면 배울 수가 없다. 그래서 누구보다 빨리 효과적으로 실패해 보는게 필요하다.
아이가 숙제를 하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뱅뱅 맴돈다.
아이 : 나 어제 늦게 자서 오늘은 일찍 잘래!
나 : 그래! 얼른 자자! 근데 엄마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아이 : 음... 딱히~
나 : 그래? 오늘 임원선거 결과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
아이 : 아니 이제 괜찮아. 생각이 안 나!
나 : 어떻게 생각이 안 나?
아이 : 그냥 애들하고 열심히 놀다 보니까 다 잊히던데? 근데 공기놀이 하는데 공기가 자꾸 터져서 짜증 났어.
나 : 아 그래! 공기 터지면 짜증 나지.
Growing from failure
아이는 이 실패 경험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을까? 사실 나는 이게 가장 궁금했다. 아이의 마음이 조금 정리가 된 거 같아서 물어봤다.
나 : 임원선거에서 진 게 00이가 잘 못해서 그럴까? 다른 친구 탓일까?
아이 : 아니~ 누구 잘못도 아니야! 그냥 안 맞은 거지.
나 : 맞아. 너는 열심히 준비했는데 예상보다 상대 후보가 강했을 수 있고, 친구들이 네 공약을 이해하는 게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럼 너는 이번 일로 뭘 배운 것 같아?
아이 : 음... 배운 거? 공약을 말할 때 목소리를 좀 더 크게 하고 또렷하게 말해야 한다는 거!
나 : 오! 그걸 깨달았어! 그걸 다음엔 보완해 보자! 그걸 배운 게 가장 큰 소득이야. 학교는 그런 걸 배우기 위해 다니는 거야. 이번 출마는 너에게 하나를 가르쳐 준거지!
아이 : 응!
그래 아이의 마음은 오늘 이 실패로 1cm 이상 자랐고 단단해졌다.
나는 아이가 자라면서 가능한 많은 실패를 빨리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많은걸 배우길 바란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의 실패에 대한 면역력이 올라갈 것이다. 아프게 배운 건 아이의 인생에 꽤 강력한 무기가 될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회복이 빠른 어릴 때 이 면역력을 키워줘야 한다.
The meaning of failure
일도 똑같다. 여기도 실패가 성공보다 더 많다. 우리가 머리로 생각한 것들을 실행하지 않으면 절대 결과를 확인할 수 없고 그걸 실행하면 99%가 실패한다. 그래서 누구나 겪는 이 실패를 누가 더 빨리 똑똑하게 하느냐가 성공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실패한 감정에만 사로잡혀서 헤어나지 못하면 실패로만 끝나지만 거기서 얻은 배움을 내일 해야 할 일로 만들면 그건 곧 성장이 된다.
직장생활 내내 나는 그동안 내가 하는 일을 실패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오만가지 술수를 부렸다. 실패할 일은 시작도 하지 않거나, 실패라고 보여질 수 있는 지수들을 살짝 변형하거나, 성공으로 보이는 한 부분만 보고를 하거나 하는 등의 전술들 말이다. 이게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전술들을 펼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실수나 실패는 곧 죽음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제로투원에서 피터틸이 이런 말을 했다. 대기업에서 일을 잘하는 방법은 '오늘도 아무 일 없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에 200% 이상 공감한다.
Growth Mindset
그러나 스타트업의 실패는 다르다. 이 곳의 실패는 조금 더 당연고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누구보다 빠르게 실패하고 똑똑하게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 시스템은 어떤 유형의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안정감과 마인드셋이다. 심리적 안정감은 무조건 실패를 많이 해도 아무렇지 받아들여진다는 뜻은 아니다. 실패를 해도 무조건 괜찮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패는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그 위에 뭉개고 있으면 안 된다는 의미다. 실패는 우리가 어떤 준비를 했는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는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대처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즉 성장 마인드셋을 가져야 한다.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들은 능력의 지속적인 향상을 믿기 때문에 실패를 단순한 결과물이 아닌 배움과 학습의 중요한 ‘과정’으로 여긴다고 한다.
실패에 강한 팀이 되려면, 성장 마인드셋으로 무장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도전적인 과제에 도전하고 있고 실패하더라도 대안을 빠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이를 혼자가 아닌 팀으로 할 수 있다는 신뢰가 가득한 팀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팀의 리더가 마인드셋을 먼저 가지고 그 방향으로 디렉션을 줘야 한다. 몇 개의 의사결정 기준만 보여주면 팀은 바로 이해한다.
그래서 결론은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내가 잘해야 한다.
p.s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불을 끄는 소방관 공약문을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