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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쏭 Jul 04. 2024

사이드 프로젝트

Person Market Fit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후,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전 직장 동료, 후배, 선배들이다. 이직과 커리어 전환 등을 고민할 때 내가 떠오르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들은 내가 다른 세상에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이 동경하는 세상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고민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두 가지 이유로 궁금해한다. “회사 밖에서도 정말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송미영은 죽지 않고 잘 살고 있나?”

나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나는 늘 같은 이야기를 한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세요.


PMF (Person Market Fit)


스타트업에서 가장 많이 듣고 쓰는 용어 중 하나는 PMF(Product Market Fit)다. 스타트업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개념이다. 시장의 문제를 확인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솔루션을 마련한 후, 이 솔루션이 시장과 궁합이 맞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회사만이 다음 단계의 제이 커브 성장을 그릴 수 있다. 물론 PMF를 찾았다고 해서 모두 그 단계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 

그러나 이 PMF는 스타트업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도 새로운 곳으로 가고자 할 때 그곳(시장)과 내가 맞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내가 하고자 하는 변화가 나와 얼마나 맞는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그 변화를 통해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을지를 철저하게 확인해야 한다. 나는 그걸 ‘Person Market Fit’이라고 부른다. 변화를 시도하기 전에 꼭 나랑 변화가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중년 이직 준비자)는 앞만 보고 무턱대고 달리기엔 마음과 몸의 무게가 꽤 나가기 때문이다. 그냥 달리면 부상만 입는다.


나를 찾는 테스트


Person Market Fit 테스트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정의하는 것이다. ‘내가 혼자서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 회사의 그늘이 아니어도 내 이름 석자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 답은 변화를 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상상만으로는 검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찾는 최적의 방법'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추천하고 싶다.


막연하게 느껴지는가?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해보는 거다. 분명한 건 이 테스트를 통과하면 진짜 변화를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어차피 여기서 떠날 텐데 왜 테스트가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막상 더 나은 커리어나 미래를 위해 지금의 회사와 이별 도장을 찍을 때는 많이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의 테스트로 나의 가능성을 검증하고 진짜 나를 찾은 사람은 자신감을 갖게 된다. 반대로 내가 생각한 밖의 생활이 생각보다 덜 매력적일 수도 있고 내가 잘 해낼 수 없는 영역이라면 방향을 바꾸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나는 생각보다 변화에 약할 수 있고 내가 그리는 변화의 방향과 내가 맞지 않을 수 있다. 특히 10년 차 이상의 직장 생활로 몸도 마음도 무거워진 경우의 커리어 변화는 조금 더 보수적일 필요가 있다. 물론 베팅을 크게 해서 큰 수확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던 사이드 프로젝트를 좀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가장 조심해야 할 건 사이드 프로젝트는 부업이 아니다. 명확한 목적과 유한한 일정이 있는 프로젝트여야 한다. 글을 쓰기도 하고, 무료 봉사를 해도 좋고, 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해 봐도 좋다. 그래서 그 프로젝트로 내가 배움을 얻고 내 미래의 삶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참고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 바로 나타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지금의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을 준다.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의 경우도 그랬다. 그래서 좀 더 건강한 직장 생활을 하는 에너지를 찾을 수 있었다.


'크레쏭'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크레쏭’이라는 닉네임을 거의 12년째 사용 중이다. 창의적인 일을 하는 송이라는 의미로 (Creative + Song) 만들었다. 가끔 크로와상을 좋아해서 만들었냐는 재미있는 오해도 받지만, 나는 이 이름이 참 좋다. 왜냐하면 이 이름을 만들면서 나의 사이드 프로젝트도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인들에게 일을 벌이는 사람으로 각인되어 있다. 회사 업무 외에 늘 무언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물론 주어진 조직의 일도 열심히 한다. 남들보다 빨리, 효율적으로 시간 안에 일을 마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get shit done’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들보다 지능이 뛰어나거나 능력이 월등하지도 않기 때문에 나는 그냥 잠을 한 시간 정도 줄였다. (너무 무식한가?)


직장을 떠나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의 키워드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었고, 그것이 세상의 정의로는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관심사인 ‘교육’과 아이를 좀 더 제대로 키우고 싶은 마음이 보태어져서 매년 하나씩 교육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진행해 보았다. 


가장 먼저 시도했던 사이드 프로젝트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키즈 DJ를 섭외해서 Baby DJ School을 론칭해 보았다. 힙한 콘셉트와 영어교육을 할 수 있다는 엄마들의 욕망에 Fit한 이 프로젝트의 고객 반응은 좋았다. 물론 나도 이런 일을 기획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러나 까다로운 아티스트를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걸 발견하고 내가 회사 밖으로 나오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아이가 학교를 가기 전까지, 정확히 코로나 전까지는 마음이 통하는 회사의 동료들과 주말 공동육아 프로젝트를 2년간 진행했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아이들을 함께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해 보니 의미와 재미 모두를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육아 사이드 프로젝트는 조금 더 진화했다. 작년에는 한 독서 관련 스타트업과 토론 전문가와 함께 패밀리 독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와디즈에 론칭도 해 보았다. 고객과 시장에게 직접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였고, 짧은 시간 안에 서로의 능력치를 합쳐서 결과를 만들어 본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퇴사하기 바로 전에는 내가 이 연차에 스타트업에서 일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일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당시 업무로 알게 된 회사 대표들의 고민을 듣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벌려보았다. 각 회사의 니즈에 따라 고객 조사, 마케팅 지원, 아이디어 기획하는 일에 팀원으로 참여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았다. 이 일들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내가 생각보다 쓸모가 많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었고, 반면 모르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동안 익숙했던 일하는 방식, 의사결정의 기준들과 너무나도 달랐다. Notion, Slack, A/B test, Cohort, Funnel 등 알 수 없는 솔루션들과 용어를 사용하면서 외계인들의 선진화된 업무를 보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시의 나는 스타트업에서 일하기 위해 셀프 온보딩을 한 셈이다.


사이드 무한론


그럼 사이드 프로젝트는 한번 이직하고 나면 필요가 없어질까?

아니다. 인생의 사이드는 계속되어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이드 프로젝트는 단순한 부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너무 거창할지 모르지만, 내 존재의 이유를 밝히는 행위 같은 역할을 한다. 회사에서 충족되지 않는 나에 대한 욕구를 사이드로 할 수 도 있고, 또 다른 나의 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용도로 기획될 수도 있다. 그 어떤 이유든 조금 더 건강한 직장 생활을 위해서 나는 강추하는 방법론이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특별히 부지런하거나 특별히 능력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하는 게 절대 아니다. 나를 위한 작은 테스트라고 생각하면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배움을 찾으면 된다. 매일 책 읽기가 될 수도 있고 운동 모임이 될 수도 있으며, 맛집 투어 등 취미 생활이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작게 시작해서 점점 나의 커리어와 관련된 또는 가고 싶은 분야의 일로 확장하면 된다.

우리는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아무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에 물어볼 수도 없다. 내가 길을 찾아야 한다. 길을 잃었을 때는 길 안이 아닌 위에서 보면 어디로 길이 나가 있는지 잘 볼 수 있다. 그래서 사이드가 중요하다. 경로에서 조금 벗어난 옆 길, 사이드에서 나의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지금 변화를 준비하는 모든 이들이 사이드 프로젝트로 자신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발견하고 자신의 PMF를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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